‘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 논문으로 불거진 폐간 소동을 겪고 복간된 <불교평론> 봄호에서 정작 눈에 띤 기고는 ‘논단’의 ‘현행 승려복지, 승가정신에 합당한가’(이혜숙 박사/금강대 객원교수)와 ‘사색과 성찰’ 면에 게재된 ‘홈리스에서 템플리스로’(명법 스님/ 서울대 강사)였다.

두 글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조계종의 승가복지가 얼마나 허술하며 비합리적인가를 논리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고발한 매우 시의적절한 글이었다.

먼저 이혜숙 교수는 현행 승려복지의 실태를 분석한 예리한 글에서 승려복지의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공동체 정신’의 문제임을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는 ‘빈부격차가 노골화된 현 승가에서 과연 일미화합(一味和合)과 평등성을 내세울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14,500명 정도의 출가중(出家衆)으로 구성된 조계종단의 사찰 수는 3,070개소인데, 거칠게 계산해보면 한 절에 4~5명이 모여 살 수 있다는 통계가 나온다”며 “수십 명의 대중이 함께 살 수 있는 사찰도 적지 않으므로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된다’는 정신만 있으면 특별한 추가비용 없이 (모든 승가대중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럼에도, 젊어서나 늙어서나 스님들이 갈 곳이 없다고 말하게 되는 그 상황의 배경적 요인은 무엇이냐”고 따졌다. 이 교수는 “그 요인을 ‘승가의 수행공동체적인 규율의 하나인 승물과 대중공양의 원칙’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을 들었다.

이 교수는 특히 최근 조계종단이 승려복지기금 마련을 위해 ‘승보공양 동참’의 캠페인을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그것이 재가중이 출가중을 위해 일방적으로 공양하는 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재가중의 공양을 요청하기에 앞서) 스님들이 다른 스님들을 공양하고 돌보는 데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앞장서야 하며, 그것이 승가의 기본정신”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불교계가) 현대사회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폐해를 깨우쳐 불교를 포교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부처님의 교리를 이런저런 말씀으로 알리는 것보다도 승가 구성원들이 서로서로 염려하고 돌보며 제대로 불자답게 사는 모습을 그대로 이 시대의 모델로 보여주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이 스님을 우선 존중하고 무조건 돌보는 것이 출가승가의 원칙이요, 승보공양의 출발선’이라고 거듭 주장한 이 교수는 ▲사중에 스님이 4명도 되지 않는 사찰은 그 용도를 변경하거나 폐쇄해 그 사물을 부동산으로 처분하여 무진재로 삼아서 출가중의 수행생활 보장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 ▲승가가 노스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생로병사의 살아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공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명법 스님의 글은 한 비구니 스님이 겪은 승가내 거처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스님은 자신이 처한 황당한 경우를 시종 자조 섞인 글로 묘사해 눈길을 끌었다. 이 글은 사실 한국 승가의 ‘허술하다’는 표현조차 차라리 사치한 복지시스템을 적나라하고 실감나게 고발하고 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돌아와서는 모교인 서울대에 출강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출중한 실력을 갖춘 스님이 졸지에 템플리스가 되어 겪은 곤욕스러운 경험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총무원이 직영하는 도심 사찰의 소임을 맡았던 명법 스님은, 소임을 그만두는 날 당장 짐을 옮기라는 재촉을 듣고 갈 곳이 없어 망연자실하다가 가까스로 아는 비구니 스님이 쓰던 종로의 한 작은 방에서 추운 겨울을 났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출가 후 미국 유학시절 잠시 기숙사 생활을 한 것 외에는 절을 떠나 살아보지 않았던 스님에게 생활의 곤궁보다도 절 밖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낯설고 이상한,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명법 스님은 현재, 스님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몇몇 교수님들의 소개로 만해마을에 안착해 있다. 스님이 기고 말미에 적은 독백 같은 술회가 오래 동안 독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이제야 세상 물정을 알게 된 나도 어쩌면 제 토굴을 만들겠다고 주접을 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뿐만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홈리스가 되기를 선택했던(출가를 비유한 표현) 많은 젊은이들이, 특히 비구니 스님들이 템플리스(거처할 절이 없는 경우를 비유한 표현)가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하긴 원효 스님도 템플리스였다. 진정 법으로 법을 구하는 자라면 차라리 천가(千家)에 밥을 빌어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이불 삼아 자발적인 템플리스의 길을 갈 것을! 세상 어딘들 절 아닌 곳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