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화계사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세미나가 지난 1월 1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려 화계사의 불교사적 가치와 역사, 가람의 특성 및 제작불화의 미술사적 의미, 숭산 선사 등 화계사에 주석했던 고승들의 사상과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했다.
화계사지(華溪寺誌) 발간을 위해 처음으로 열린 학술세미나에는 오경후 동국대 연구교수, 한상길 동국대 연구교수, 신규탁 연세대 교수, 김성도 문화재청 시설사무관, 지미령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등 관계 학자 및 전문가들이 5개의 주제로 발제를 하고, 손성필 한국고전번역워 연구원, 김광식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 차차석 동방대학원대 교수, 홍병화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관, 유근자 동국대 강사 등이 토론에 나섰다.
오경후 교수는 ‘조선후기 왕실과 화계사의 불교사적 가치’라는 논문에서 조선시대 화계사의 동향을 시기적 추이를 통해 검토하면서 ▲왕실신앙과 지원 ▲조선시대 불교계의 동향에 따른 변화 ▲조선후기 진경문화와의 관련성 등을 정리했다.
오 교수는 “불교탄압이 한창 진행 중이던 조선시대의 화계사는 서평군과 덕흥군, 그리고 조선후기 흥선대원군과 왕실비빈들의 발원과 재정적 지원에 의해 점차 그 사세를 확장해 나갔으며 본격적인 중창이 이루어졌던 세도정치 시기에는 김정희와 흥선대원군의 사제관계에서 비롯된 추사학파의 교류와 그들의 묵향을 엿볼 수 있는 진경문화의 흔적들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화계사의 전후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화계사약지>가 편린을 모아 화계사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며 “화계사의 불교문화사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현대적 계승을 위해서는 관련자료의 광범위한 수집과 함께 현대불교문화와의 접목을 통한 계승과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1월 1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화계사 역사문화 조명 세미나 장면.
이어 한상길 교수는 ‘화계사의 근대사’를 주제로 발표한 논문에서 개화운동의 최일선에서 조선의 근대화에 헌신했던 이동인과 무불, 차홍식 등이 화계사 출신이라는 데 주목했다. 한 교수는 또 “근대불교 최초의 종단조직이었던 불교연구회를 주도한 홍월초와 김월해 역시 화계사가 배출한 고승임”을 언급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해 근대시기 화계사의 위상과 사격을 살폈다. 한 교수는 “하계사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선구적’, ‘진보적’이라는 느낌이 든다”며 “화계사의 근대시기 선구적 역할은 절의 사격을 한층 더 높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범패를 중심으로 불교의례를 계승, 보급하여 전통문화도량으로서의 위상을 일궈나갔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한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토론에 나선 김광식 교수는 한 교수가 제시한 이동인, 무불, 차흥식 등의 화계사 출신 등의 연고 주장에 대하여 보다 명확한 근거와 자료, 문헌, 증언 등이 부족하다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세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신규탁 교수는 ‘숭산행원 선사의 선사상’을 주로 고찰했다. 신 교수는 이 논문에서 숭산 선사의 선종 역사에 대한 역사의식과 선종의 사상에 대한 철학적 견해를 살폈다. 신 교수는 숭산 선사의 선종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련, 불교교학 전면에 흐르는 수행체계를 ‘점수선’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반면에 남종선에서 이어오는 수행을 ‘돈오선’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조사선을 여래선의 우위에 놓는 전통에 대해 선사는 동의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도 밝혀냈다.
중국과 한국의 선종역사에 대한 숭산 선사의 인식에 대해 신 교수는 “태고보우가 출현하여 제종을 아울러 임제계의 선사상을 이 땅에 부흥시켰다는 입장, 조선말에 경허 선사가 출현하여 선맥을 유지해왔고 그 후 일제강점기에는 대처식육 등의 허용으로 선종의 맥이 위태했으나, 경허 문하에 만공, 한암 등의 선사들이 나와 오늘에 그 맥을 전해주었다는 것이 숭산 선사의 입장이었다고 고찰했다.
신 교수는 특히 “숭산 선사는 지계와 수선을 같은 반열에 올려 놓을 정도로 계율을 강조하고 있으며, 계를 ‘부처의 생명’에 견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신 교수는 “계에 대한 선사의 중시는 ‘3귀의계’-‘3취정계’-‘10중금계’의 16조계로 정리되어 이른바 ‘신문(信門)’-‘서원문(誓願門)’-‘행문(行門)’으로 짝을 지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했으며, 이런 3문 사상은 숭산 선사의 특유의 사상으로 또한 새로운 선 사상의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의 논문에 대해 논평에 나선 차차석 교수는 “신 교수의 논문은 숭산 스님의 선사상의 연원과 입장에 대한 고찰에 머문 한계가 있다”며 아쉬움을 밝히고 “선사의 선사상이 지니는 현대적 의의, 관음선종의 출현과 전개 등에 대한 후속 연구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김성도 문화재청 시설사무관은 ‘화계사 가람의 특성과 역사성’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김 사무관은 삼각산 화계사 약지와 고종 연간에 건립되어 현존하는 대방(보화루), 대웅전·명부전 등 옛 건축물에 대한 분석 및 조선 말 사찰에 대해 밝혀진 학술성과로부터 조선시대 화계사 가람의 특성과 변천과정 및 역사성 등을 종합 고찰했다.
김 사무관은 “화계사는 고려시대 탄문대사(법인국사)에 의해 창건되어 법등을 이어온 것으로 전하는 보덕암을 화계동의 현재 자리로 이건하여 중종 17년(1522) 법당 3채와 요사 50간 규모로 시작하였고, 광해 10년(1618) 화재로 소실되어 덕흥대군 도움을 받아 다음해인 광해 11년(1619) 같은 모습으로 재건되었으며, 고종 3년(1866)에 흥선 대원군의 지원으로 염불 수행 대방이 건립되기 전까지 선종의 법맥을 이어온 선(禪) 도량이었다고 밝혔다. 화계사는 또 유림의 배척으로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포교방법으로 염불, 범패, 승무 등을 적극 활용하게 되었는데, 염불 이외에도 영험이 있다고 전하는 시왕상을 강서사로부터 갖고 오는 등 다양한 노력으로 사찰중흥을 도모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염불쇠퇴와 함께 초창 당시대로 선종 중심의 사찰이 되었다고 밝혔다.
마지막 발제에 나선 지미령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이 ‘화계사 제작 불화의 미술사적 의미’를 고찰했다. 김 위원은 현재 화계사가 소장하고 있는 유품을 소개하고 선행 연구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화계사가 제작한 19세기 불화들의 특성과 미술사적 의미를 살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