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교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자현스님이 ‘인문학과 고전학이 스미고 퍼지는 인문학 계간지’를 표방하는 <문학|사학|철학>지(2012겨울·2013봄호)에 흥미로운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을 통해 본 한국문화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국내를 넘어서 세계 속으로 거침없는 화염을 뿜어내고 있는 한국 가요시장에 대해 살피고 있다. 자현 스님은 특히 동남아와 중국 등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시작된 한류 초기의 현상과는 달리 일본을 넘어 미국이나 유럽 등 우리보다 경제력이 강한 나라에까지 한류가 진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자현 스님은 문화력은 필수적으로 경제력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문화가 전파된다는 것은 분명 문화사에 있어 기현상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스님은 이 논문에서 jyp의 원더걸스나 SM의 소녀시대가 쌓은 기반이 있었지만, 이와는 급을 달리하는 초메가톤급 허리케인으로 우뚝 선 싸이에 대해 세밀하게 조명했다. 스님은 '대마초'와 ‘두 번의 군 입대’라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묻히기 좋은 코드를 가지고 있는 싸이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를 극복한 것은 조선시대 이래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대주의 인식이라고 진단한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간 우리의 사대주의는 영어 열풍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통역없이 오바마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것이 9시 뉴스에서 자랑스럽게 보도되거나, 백남준과 같이 국적을 버린 사람, 미셀 위와 같이 한국말을 못하는 한국사람 등이 미국에서 인정받으면 얼마든지 한국사회에서 일방통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꼬집었다. 즉 싸이가 미국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점은, 싸이의 병역문제에 면죄부가 내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자현 스님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대히트는 싸이가 잘한 것도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적인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8만여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싸이의 '강남스타일' 공연 장면. 사진=미디어붓다 자료사진
자현 스님은 또 우리나라가 전통과 단절된 나라라는 어쩌면 아프고 부끄러울 수도 있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스스로 평가하지만, 일제침략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파생된 외래적인 가치의 강력한 유입으로 인하여 우리의 전통과 문화정신은 커다란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또 한국전쟁과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그나마 존재하던 유형적인 가치들도 상당수 파괴되면서 우리나라는 거의 신생국가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갑자기 단행된 한글전용은 문맹퇴치 등에서 많은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동시에 문자적인 단절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자현 스님은 한강의 기적으로 평가되는 자본주의 성공과 대기업의 형성과 안착, 또 기독교의 비약적인 약진도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자현 스님은 이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민족대이동을 겪었으며, 이는 원하지는 않았지만 민족적인 잡종 상황을 맞이하게 하였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능적으로 진일보하고 체질의 변화가 단시일내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에는 이런 잡종화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유교적 영향 등으로 획일화된 사회가 한계를 노출하면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방향으로 좌충우돌하게 되었으며 이런 경향은 부모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자식들의 고학력과 외국생활의 경험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력 속에서도 활화산과 같은 한류를 꽃피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현 스님은 현재 우리나라는 실크로드 시대의 중앙아시아와 같이, 문명의 잡종양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며, 그래서 첨단전자체품과 게임 및 영화 등의 세계성공 가능성 타진과 관련해서 한국시장이 시험장이자 척도가 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싸이 역시 잡종의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싸이의 경우 한국적인 혼란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다 주체적인 의지를 통해서 환경을 승화하여 자기화의 완성을 꾀하였다는 점에서 보다 두드러진 특징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싸이로 대변되는 한류라는 한국문화의 활화산은 바로 이와 같은 잡종이 피어낸 꽃이라는 결론이다.
현대 우리문화의 힘은 잡종에 있으며, 이 점이 경제력을 넘어서 우리문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분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전제한 자현 스님은 흑연이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은 높은 압력을 견뎠기 때문이며, 험난한 근현대를 거쳤다고 해서 모든 민족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결정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 민족은 작지만 위대한 민족이며 꺾이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민족이라고 평가했다.
풍수지리적으로 음택에 해당되는 강남, 즉 버려진 땅이었던 강남이 새로운 가능성을 담아내는 신천지가 된 것은 농경의 전원문화를 간직하고 있어 대규모 개발과 계획도시로서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며, 토착민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잡종적인 특징이 가장 잘 융합된 곳이 될 수 있었고, 결국 90년대 후반에 이르면, ‘강남의 이효리’와 ‘강북의 장나라’나, ‘강남의 비’와 ‘강북의 세븐’이라는 대립적 구도 속에서 강남의 압도적인 문화력이 드러나게 됐다는 것이다. 즉 강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최고의 문화력이 확보되었고, 싸이 역시 이런 강남 문화를 말하고 있다고 자현 스님은 설명했다.
자현 스님은 또 싸이가 스스로의 놀이를 육갑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이 주장이야말로 예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예술이 인간의 정신을 순화시킨다는 주장은 동양의 공자나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인 반면 싸이는 예술은 즐거움과 미침(狂)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것이 싸이의 육갑정신이라고 단정한 자현 스님은 “놀이라는 것의 본질은 즐거움일 뿐이라는 점에서, 싸이의 주장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보다 높은 타당성을 확보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인간의 본질 자체를 긍정하는 인욕긍정의 가치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자현 스님은 특히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유교와 무속의 이중구조적인 전개 속에서, 이를 모속적인 혼연일체의 망아경으로 귀류귀착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인화된 잡종문화의 용광로인 강남을 배경으로, ‘아름다워 사랑스러워’라는 사랑을 통해서, 결국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라는 혼돈으로 끝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싸이는 코스모스와 카오스의 이중성 속에서 카오스를 지향한다고 지적한 자현 스님(오른쪽 사진)은 “우리는 일반적으로 카오스는 코스모스보다 하열한 가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편견의 판단일 수 있으며, 코스모스가 정당하다는 관점을 버릴 경우 우리는 코스모스와 카오스라는 양자의 정당성과 유용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모든 현상의 총체성을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규정한다”고 밝힌 자현 스님은 “잘 정리된 도시계획, 번쩍번쩍하는 외관 등 눈에 보이는 강남의 규정성들은, 사실 카오스의 또 다른 존재양태일 뿐이라고 싸이는 고발하고 있다. 코스모스와 카오스의 이중성에서 승자는 싸이에게 있어 카오스이며 이것이 바로 강남스타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자현 스님은 또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동물이며 이는 결국 즐거움을 우선하는 가치를 파생한다”며 “그러므로 즐거움의 탐닉은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실존을 내포하는 인류문명의 시작과 끝이라고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