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술자리. 남자 몇이 모이면 늘 그렇듯 슬슬 군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나 때는 말이지…”로 시작한 군대 이야기가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가운데 미운오리새끼마냥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공익’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 말로 공익근무요원, 옛날에는 ‘방위’로 불렸을, 그.

<친구>, <태풍> 등 굵직한 영화를 선보이며 한 끗발 날렸던 영화감독 곽경택(법명 무계無界)의 새로운 영화가 8월 30일 개봉했다. 작년 연기자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만난 배우 지망생들로 구성된 배우진에, 본인의 방위 시절 이야기를 입혀낸 <미운오리새끼>가 그것이다.

곽 감독의 신작에는 이전 영화 <친구>의 긴장감 넘치는 한국식 느와르 느낌도, <태풍>의 거대하고 화려한 블록버스터 느낌도 쫙, 빠졌다. 대신 동네 아저씨가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어깨에 힘을 뺀 1980년대 이야기가 친근하게 관객을 맞이한다.

스크린 속 ‘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하는 군중과 그 속에서 짐짓 심각하게 구호를 따라하는 동네 미친 여자를 보고 있자면 아주 자연스럽게 1980년대 격랑의 시대로 빨려 들어간다. 얼마지 않아 포커스는 주인공 ‘낙만(김준구 분)’에게 옮겨간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 줄을 놓은 아버지와 미국으로 떠나버린 어머니 덕분에 신체건강하고도 방위가 된 낙만. 세상이야 어찌됐든 무심하게 부대로 출근했다가 잡초제거, 변기 청소, 사진촬영 등 부대의 온갖 잡다한 일을 다 해결하고 저녁 6시 ‘칼퇴근’하는 일명 육방위, 즉 6개월 방위는 다름 아닌 곽 감독의 소싯적 모습이다(실제 곽 감독은 18개월 방위였다).

얼결에 헌병과 같이 영창근무를 서게 된 낙만은 영창에 들어오는 수많은 수감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 도드라지는 인물이 있으니, 우락부락한 조폭 같은 행색이지만 마음은 구도의 의지로 가득한 ‘행자(문원주 분)’이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영창에 오기까지의 업을 반성하며 절대 앉지 않는 수행을 하는 행자 이야기는 곽 감독의 실제 경험담이다.

곽 감독(사진 왼쪽)은 “변소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을 할 때, 나는 저 멀리 서서 막대기로 걷어내는 이물질을 행자는 손으로 척척 걷어냈다”며 “더럽지 않냐는 질문에 담담하게 ‘다 하고 손을 씻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행자의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곽 감독은 이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스크린에 담았다. 소집해제를 명받은 낙만이 영창에 남은 행자에게 “꼭 좋은 스님이 되십시오”라 말하며 합장하는 모습에 곽 감독의 젊은 날이 오버랩 된다.

행자 역을 맡은 문원주 씨(사진 오른 쪽)는 8월 22일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가진 언론시사회에서 기자를 만나 자신을 포함한 온 가족이 불자라고 말했다. 문 씨는 “어려서부터 불교를 접해와 ‘행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행자 역에 눈이 갔다. 영화에 들어가면서는 나름대로 경전 공부도 했다”며 불자로서 행자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어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이들에게는 웃기는 옛날이야기가 된 영화 <미운오리새끼>를 내놓은 곽 감독. 그는 그 때 그 시절, 죽어라고 부대 잡일을 하던 방위가 훗날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고 꿈이나 꿨을까? 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곽 감독에게 연기를 평가받던 연기자 지망생들이 꼭 1년 후 곽 감독 영화의 주·조연을 차지해 스크린 데뷔를 할지 어느 누가 알았을까?

멋 부리지 않은 이야기로 멋을 더한 영화 <미운오리새끼>. 돌아온 곽 감독은 영화를 통해 시종일관 말한다. “나중에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미운 오리새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