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학교과서에서 ‘시조새’가 삭제되는 일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진화론의 가치를 중시하는 과학계와 진화론을 창조론으로 대체하려는 일부 기독교계가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기독교 언론 ‘뉴스앤조이’가 논란에 대한 공개 좌담회를 열었다.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증에 뉴스앤조이 좌담회장을 찾았다.
'창조, 과학과 대화를 나누다' 공개 좌담회 모습
지난 8월 14일 저녁 성공회대 미카엘관에서 열린 공개 좌담회에서는 ‘창조, 과학과 대화를 나누다’를 주제로 김기석 성공회대 신학부 교수와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의견을 나눴다.
“힉스 입자는 창조의 한 방식”
좌장을 맡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박희주 교수는 먼저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추정 입자 발견에 대한 두 교수의 의견을 물으며 좌담의 물꼬를 텄다.
우 교수(왼쪽 사진)는 “힉스 입자는 표준모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최초의 입자로, 최근의 연구발표는 힉스 입자와 같은 질량과 성질을 가진 입자를 발견하고 그것이 힉스 입자라 ‘추정’하는 것”이라며 힉스 입자에 대해 정리했다.
이어 “힉스 입자는 표준모델 이론을 공고히 할 뿐 그것으로 우주의 비밀이 풀리지는 않는다”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힉스 입자의 발견이 신앙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하지만 과학(힉스 입자)은 신이 세상을 창조한 한 방식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 역시 “힉스 입자를 통해 신이 얼마나 정밀하게 세상을 만들었는지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고, 힉스 관련 이론은 최종이론으로 가는 여정”이라며 우 교수와 의견을 같이 했다.
‘과학’과 ‘과학의 해석’, 해석은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빅뱅(우주 대폭발 이론)을 유신론으로 볼 수 있는가, 빅뱅에 대해 종교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물음에도 두 패널 모두 ‘과학의 유신론적 해석은 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김 교수는 “빅뱅이론의 이미지는 창세기 첫 구절과 맞아떨어진다. 우주에 시작과 끝이 있다는 빅뱅이론의 가설은 신학자가 믿는 창조론과 유사”함을 전제한 뒤 “하지만 빅뱅이론이 신의 창조 자체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며 젊은지구론 추종자 등 종교적 색채에 따라 신학적 해석은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우 교수 역시 “과학에는 ‘How(어떻게)’의 문제를 다루는 ‘과학’과 ‘과학의 해석’ 두 개의 층이 있다. 과학 자체는 유신과 무신을 떠나있지만 그 해석은 유신·무신론자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과학을 유신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형이상학적 관점에서는 더 풍성할 수 있다”고 말해 과학을 종교적 유신론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화론 삭제가 신앙에 ‘승리’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주제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가 제기한 ‘교과서 진화론 삭제’의 문제로 넘어갔다. 두 패널은 진화론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김 교수(오른쪽 사진)는 “시조새나 말(馬)의 진화 등 과학적 맹점이 있는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여지는 있지만 과학 밖의 영역에서 진화론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진화론 삭제가 신앙에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우 교수는 “교과서 논란의 본질적인 문제는 진화론의 폐기를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불순한 동기’를 가진 집단이라 여겨지는 교진추가 제기한 문제가 받아들여져서 사회적인 역풍을 맞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학적으로 틀렸다면 교과서에서 빼면 되고 확실하다면 계속 실으면 된다. 문제제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과 신앙은 대립의 대상이 아니다”
우 교수는 과학과 신앙의 대립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과학으로 설명되면 신의 창조가 아니다’라는 전근대적이고 닫혀있는 세계관 때문에 신앙이 과학에 날을 세우고 있지만 신은 여전히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창조하고 있다”며 “과학은 틀렸고 창조론이 맞다는 초기 한국 교회의 분위기가 이어져와 극복하기 어려운 정설(定說)처럼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연과 과학을 통해 신이 세상을 창조한 역사와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창조론을 비판하는 실증주의자에 대해 논하며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과학이론으로 형이상학적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리처드 도킨스와 같이 실증으로써 더 높은 차원에 있는 대상(신)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제국주의이며 과학만능주의, 나아가 물질적 환원주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도킨스가 부정하는 신은 오래된, 구시대의 신으로 잘못된 과녁에 화살을 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진화론 인정하지만 신의 직접적 개입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패널 모두 유신론적 진화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유신론적 진화론에 지적설계론, 불가지론이 혼합되어 있는 상태”라며 “진화론을 받아들이지만 신의 설계나 이끌림 없이 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 교수 역시 “진화는 부정할 수 없지만 진화에는 창조주의 직접적인 개입이 있다고 믿는다”고 밝히며 “형이상학적으로 지적설계자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지적 설계에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는 일부 지적설계론자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맹목적의 신앙에는 선을 그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개신교의 75%와 천주교 42%가 창조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앙의 논리가 진화론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이날 공개 좌담회의 패널들은 과학적인 접근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기독교인에게 있어 창조의 본질은 ‘주체’이며 그 과정에 대해서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