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5월 25일 아침 조계사 대웅전에서 교구본사 주지들과 함께 ‘108 참회’ 정진 후 밝힌 ‘6월 초 공표 예정 종단 쇄신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이번만큼은 그럴듯한 수사와 전시 행정적 퍼포먼스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자승 스님의 종단 쇄신안에 교계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날 자승 스님이 언급한 “이미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는 사고방식으로는 한국불교의 미래를 열어나갈 수 없다. 지금 이 고통의 시간을 미래를 향한 성장의 아픔으로 삼아 역사적 노고를 함께 이루어나기를 기원 한다”는 내용으로 볼 때 일단 지금까지 이른바 자정과 쇄신 결사추진위원회에서 발표해온 숱한 쇄신안과는 차별성이 있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공감대 형성 실패 총무원, 혁신적 쇄신안 발표할 수 있을까?

‘승려도박 사건’ 발생 후 극도로 말을 자제해온 총무원장이 장고(長考) 끝에 내놓은 ‘종단 쇄신안’ 카드 내용에 대해 현재 교계에는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내놓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쇄신에 전념하겠다는 자승 스님의 발언에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분위기 속에서 발표될 쇄신안의 강도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승 스님은 교구본사주지들과의 참회정진을 마친 25일 오후에 열린 중앙종무기관 확대 종무 간담회에서“그동안 있어 왔던 정치적 관계나 종회와 계파의 이익에 따른 요구를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쇄신 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계파정치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으로 일단 연합정권의 종막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총무원장의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교계 안팎에서는 총무원의 ‘종단 쇄신안’에 대해 아직은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다. 승려도박 동영상이 공개된 5월 4일 이후 세간의 시선이 따가운 가운데 2주 만에 내놓은 쇄신안이 고작 원로회의 의원 3명, 교구본사 주지 3명, 중앙종회의원 3명 등을 위원으로 위촉해 ‘승가공동체 쇄신위원회’를 발족하는 것이었으니 시큰둥한 반응이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후에도 조계종 집행부는 사태 진화를 위해 이런저런 움직임을 보였지만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내어놓는 대안은 공감대 확산에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세상의 흐름, 즉 종단을 향한 미덥지 못한 여론을 반영하지 못한 채 겉돌던 조계종 집행부 행보는 수경 스님 등 10명의 구참 수좌들의 강도 높은 성명이 나온 후에야 제 궤도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좌들이 5월 22일 발표한 성명서에는 △수임기구 구성 △사찰 재정 공개 △사찰운영위원회 활성화 등의 쇄신 방향과 함께 자승 스님을 향해 △연주암 포기를 통해 진정한 자성과 쇄신을 실천할 것 △종단 정상화 후 퇴진할 것이라는 압박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오후 문경 봉암사에서 열린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자문위원회 회의에서는 중앙종회 종책모임(계파) 해산을 공식 결의했다. 이런 정도의 결의가 나온 것은 물론 수좌 스님들의 성명서 발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자승 스님이 획기적인 ‘종단 쇄신안’ 라는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자승 스님의 쇄신안 내용에 따라 조계종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는 수습이냐, 사태 지속이냐의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공’은 총무원장에게 넘어간 형국이다.

그렇다면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내놓을 쇄신안 카드가 일반국민의 납득과 불자대중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내용을 담아야 할까. 일단 집약되고 있는 교계의 여론은 △사찰 재정 투명화 △비구 중심의 사찰 운영 탈피(사부대중 공동체 구성) △승풍 감찰기능 강화 등으로 집약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쇄신 방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총무원의 ‘종단 쇄신안’ 제시에 대해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 의장 만초 스님은 “스님들이 재정에서 손을 떼게 하겠다고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교구본사, 총무원, 종회의원 등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종단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찰재정 투명화이며, 사부대중이 함께 운영하는 사찰공동체 방안이 쇄신안에 담겨야한다는 주장이다.

만초 스님은 “오늘 오전 총무원장 스님 발언 후 몇 몇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님들은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재임에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말 뿐이지 특별한 결정이 나온 것이 아니지 않나?’고 반문했다. 그런 말들은 취임 후 언제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불신의 깊이가 깊다는 뜻이다”라고 전했다.

5월 24일 장충동 만해NGO센터에서 개최된 '청정성 회복과 정법구현을 위한 사부대중 연대회의' 기자간담회 모습. 연대회의는 조계종 집행부에 근본적인 혁신을 단행할 것을 촉구했다.

만초 스님은 자성과 쇄신결사추진본부에 대해서도 입장을 전했다. “결사추진본부가 제대로 굴러갔으면 이번 사태도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제한 만초 스님은 “고우 스님, 용타 스님, 조성택, 성태용 교수 등 불교계를 대표하는 스님과 재가 불자들이 결사본부에 참여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출범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결사추진본부로는 모두가 만족할 쇄신안 마련이 어렵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참회만 하고 개혁없는 조계종, 이젠 변해야 한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우 교수는 “참회는 하지만 개선은 없는 것이 조계종”이라며 “이번 기회에 사부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다양한 쇄신안을 한꺼번에 수용할 순 없지만 종단에서 타임 스케줄을 잡아 종단 쇄신을 전개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종단, 스님, 불자, 국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이 나와야한다”며 “사찰 재정이 투명화 돼야 이른바 ‘계파 나눠먹기’가 근절될 것이고, 제도가 투명하면 계파에 목숨을 걸고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우 교수는 또 “이번 도박사건으로 수행이 상징인 불교의 정체성이 무너졌다”며 “도박 폭로 등에 대해 ‘너는 문제가 없나’라는 식의 대응은 적절치 못하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종단의 수장으로 재가불자들이 다반사로 행하고 있는 ‘108참회’를 선택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구참 수좌들, 정의평화불교연대 등이 성명을 통해 대안을 제시했지만 총무원에서는 결사추진본부 자문위원회에서 제시한 내용이 종단 쇄신안의 뼈대가 될 것 같다”며 “출가자는 수행과 교화, 재가자는 운영과 신행을 담당하는 체계를 수립하는 등 종헌종법에 입각해 사부대중 공동체 체계 확립을 골자로 한 쇄신안이 제시되면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조계종 전체를 흔들어버린 ‘승려도박 사건’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참회만 있고, 개혁은 하지 않아온 조계종이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할지, 또 다시 시늉만 하고 구태에 머물 지 불자는 물론 국민들이 형형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는 공멸’이라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전제로 한 쇄신안이 도출되지 않으면 사태 해결은 고사하고 ‘출범 50주년’을 맞은 ‘정화 종단’ 조계종의 미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쇄신안 발표를 앞둔 조계종을 바라보는 교계 안팎의 여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