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불교학술원 원장과 학술원 실무팀장 등 학술원 구성원들과의 갈등이 점점 감정적 다툼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이성적이고 지성적이어야 할 상아탑에서, 그것도 불교학을 연구하는 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협화음은 일단 볼썽사납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그저 다투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식의 비판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죽하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는가를 생각한다면 싸잡아 비판하거나 어느 한편을 두둔하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타당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번 사태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우선 이런 갈등을 불러일으킨 학술원장의 책임이 커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새 학술원장이 부임하기 이전에는 이 정도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새 학술원장의 처신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설사 이전의 불교학술원 운영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적법한 절차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거나 태부족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번 문제는 복잡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매우 간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한 마디로 신임 학술원장에 부임하면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나, 아니면 자신이 볼 때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채용하거나 일을 시키기 위해서 구성원의 물갈이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과 충돌이 일어났을 것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서로의 견해에 차이가 있는 내용은 공개적으로 검증하면 될 일이다. 내가 옳으니, 네가 틀렸니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검증으로 잘잘못을 가려서 객관적인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불교학술원이 시끄럽다. 문제는 갈등이 발전을 위한 진통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다툼이라는 데 있다. 사진은 불교학술원 홈페이지 초기화면  


먼저 실무팀장이 일본에 출장을 가서 복사해온 문건이 동국대 중앙도서관에도 거의 다 있는 자료라는 신임 학술원장의 주장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동국대 중앙도서관에 있는 자료와 일본에서 복사해온 자료가 동일한 판본(필사본)인지를 공개해 비교해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단 이를 가려낼 검증단을 공정하게 제3의 학자들로 구성해야 한다.

둘째 신임원장이 채용한 새 직원들의 채용절차에 대한 시시비비 문제이다. 이분들이 학술원장의 측근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분들이 채용되는 과정이 공정했는가의 문제이다. 문제는 두 사람의 채용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따르는 것이 옳다. 채용이 결정된 두 사람도 자신들의 채용에 시시비비가 일고 있다는 점이 개운치 않을 것이다. 공정하게, 누가 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절차를 거쳐 선발이 되어야 스스로 당당하고, 앞으로 일도 자신감 있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두 사람도 흔쾌히 동의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재 선발하는 것만이 잡음으로 소지를 없애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새 원장이 새로이 역주 전문가로 위촉한 일부 학자들의 적절성에 대한 시시비비 부문이다. 이 분들이 한문으로 된 문헌을 적정한 수준으로 번역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에 번역자로 지목된 분들 가운데 몇몇은 한문 실력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그 근거로 이 분들이 그동안 해온 번역 사료를 구체적으로 거론한다.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문제 제기 역시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진 학자라면, 피할 일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검증단에 의해 기존의 성과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그들의 번역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면 번역을 의뢰한 것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고, 문제가 없다고 판명되면 그대로 진행하면 될 일이다.

불교학술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불교관련 문헌들을 번역해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을 가장 잘, 그리고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탄탄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 일을 해야 하고, 가장 공정한 방법과 절차에 의해 채용과 번역 의뢰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한국사회는 분노하고 있다.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경기에 대한 채점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 러시아로 귀화해 이번 쇼트트랙 경기를 석권한 빅토르 안(안현수) 선수가 공정하지 못한 절차로 인해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해 대한민국 국적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등으로 국민적 분노가 일었고, 대표선발에 공정한 절차와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분출되고 있는 중이다.

K-POP스타 경연이나 모창 경연 등과 같은 각종 공개 오디션에 많은 국민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 경쟁이 오직 ‘현재의 실력’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기준에 의거해 매우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 부실복원 시비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문화재청의 신임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를 지정할 때, ‘나가수’처럼 공개 심사로 선발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나 청장에 따르면, ‘인간문화재’ 지정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잡음이 나는 이유는 적은 인원이 비공개로 심사하다 보니, 공정성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나 청장은 “심사위원의 수를 늘리고, 폭을 넓혀 다양한 심사위원 풀을 구성하며, ‘나가수’ 방식의 투명한 공개경쟁을 도입하겠다. 판소리를 예로 들면, 전공자와 연구자 그룹이 심사를 진행하면서 일반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고, ‘나가수’처럼 방청석에서도 평점을 매겨 10% 정도 심사 결과에 반영하면, 대중의 호응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불교학술원의 구성원 채용이나 번역 의뢰에도 이와 같은 공정한 룰이 필요해 보인다. 더구나 불교학술원이 추진하는 사업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것인 만큼 더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신중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동국대학교에 촉구한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불교학술원의 직원 채용이나 번역사업 의뢰에 ‘나가수’ 식의 공정 경쟁 제도를 도입하라. 지금까지 불거진 모든 문제를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의해 다시 진행하라.

동국대가 이 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불교학의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 동국대가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