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개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며, 해탈과 열반을 목표로 수행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그렇다면 불교인은 과연 현실의 일상을 탈피하여 초세간적 피안의 세계만을 추구해야 할까? 인간성 상실과 생태계 파괴 등 현대사회의 생명위기 상황에서 불교는 도대체 어떠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며, 불교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생사해탈을 추구하는 자아와 공동체의 정의를 지향하는 자아는 과연 대립하는가?
이러한 불교의 현실에 대한 딜레마를 학문적 과제로 삼아 40년 가까이 천착해 온 학자가 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부에 몸담고 있는 박경준 교수가 바로 그다. 박경준 교수에게 불교 공부는 ‘생사해탈을 꿈꾸는 실존적 자아와 공동체의 정의를 지향하는 사회적 자아의 갈등’ 속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두 자아의 갈등과 화해’를 추구해온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불교사회경제사상』(동국대출판부 간)은 그러한 궤적의 종착역에 밤늦게 다다른 저자가 이미 잠들어버린 뭇 영혼을 향해 울리는 생환의 기적소리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불교가 비사회적이라는 인식에 대한 원론적인 비판과 해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불교의 한 단면에만 시선을 고정해서는 안 되며, 시야를 넓혀 항상 전체적인 불교의 모습을 조망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를 하나의 단순한 종교사상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경제·문화 사상까지를 포함한, 유기적이고 역동적이며 총체적인 인생의 지혜 또는 삶의 예술로 파악해야 한다.”
불교가 오늘날 각종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만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며 대중적 삶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당연시해 왔던 일부 선가禪家의 시대착오적 풍토에도 그 원인이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개항 이후 급격한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불교인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상황의 요청에 부응하는 자신의 사회적ㆍ문화적 이념의 계발을 등한시해 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체적인 모습으로서의 불교 이해를 위해 그동안 잘못 인식돼 왔던 사회·경제적 측면에 대해 깊이 천착한다. 특히 사회사상 면에서 불교의 사회에 대한 인식, 이상사회 실현을 위한 실천적 종교로서의 사회참여사상에 대한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또한 경제사상 측면에서는 합리적인 생산·소유·분배에 관한 개념 및 직업과 노동관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넓혀 가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불교사회사상의 핵심적 개념으로 ‘공업(共業)설’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의 운명은 개인적인 업(業)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업(共業)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숙명론으로 비판받던 불교의 업설(業說)에 대한 발상의 일대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 근거로서 대승경전인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교진여품」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제시한다.
“일체중생이 현재에 4대(四大)와 시절(時節)과 토지(土地)와 인민(人民)들로 인하여 고통과 안락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일체중생이 모두 과거의 본업(本業)만을 인하여 고통과 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하느니라.”
4대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며, 시절은 시대상황이다. 토지는 생산의 근거지이며, 인민은 사회문화적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크게 자연과 사회 환경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일체중생이 과거의 본업, 즉 개개인의 지난 행위로 인하여 고통과 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 환경으로 인하여 고락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실천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업설은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바탕을 둔 주체적 자유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이러한 논의가 의미 있는 것은 불교의 이념을 화석화된 이론이 아닌 현실 속에 살아 있는 가르침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거듭될 때 격변하는 21세기에 신선한 생명력을 가진 종교로서 불교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기도 하다.
*저자 박경준 교수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인하대 강사 등을 거쳐 1995년부터 현재까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교학부장, 불교문화연구원장, 불교학연구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에코포럼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불교평론』 편집위원장과 『풍경소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역서
『불교사회경제사상』, 『다비와 사리』, 『민중불교의 탐구』(공저),『문화의 진보에 대한 철학적 성찰』(공저), 『지식기반사회와 불교생태학』(공저) 외 다수
『원시불교사상론』, 『근본불교와 대승불교』, 『아시아의 참여불교』,『지구를 구하는 경제학』, 『동남아시아의 불교 수용과 전개』, 『불교사회경제학』(공역)
*주요 논문
「원시불교의 사회ㆍ경제사상연구」「초기불교의 연기상의설 재검토」「대승경전관 정립을 위한 시론」「불교공업설의 사회학적 함의」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