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대강백 무비 스님이 10년 결사를 시작했다. 한국불교 역사상 누구도 완성하지 못했던 <대방광불화엄경> 전체 강설에 나선 것이다. 대작불사 기간은 10년, 그 분량만 80권에 이른다. 80권본의 1차분 다섯 권을 출간한 무비 스님이 4월 8일 금정총림 범어사 화엄전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세속 나이로 일흔을 넘긴 노구는 더러 성치 않은 곳도 있지만 그 얼굴과 목소리만큼은 청년처럼 싱싱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흔히 <화엄경>으로 불리는 <대방광불화엄경>은 어떤 경전인지, 어떤 매력이 있기에 10년 결사를 결심했는지, 스님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스님을 둘러싼 근황은 어떠한지, 스님이 보는 이 세상은, 불교는, 또 종단은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넌지시 나왔다. 스님의 명료하고 개운한 대답을 또 한 번 축약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일뿐더러, 스님의 이야기를 육성에 가깝게 전달하고픈 욕심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10년 결사를 시작한 무비 스님. 스님의 뒤로 일타 스님이 쓴 반야심경이 보인다.
-<화엄경>의 특징은 무엇인가?
<화엄경>의 특징은 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을 성취한 내용을 조금도 중생의 수준이나 근기를 생각해서 방편으로 설하시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궁극적 내용을 적나라하게 다 소개해보인 것이다. 불교의 숱한 사상과 이론 중에서 최고의 경전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다른 경전과 비교해도 제일 수준도 높고 (그래서 내가) 심취하게 됐다.
-불자들이 왜 <화엄경>을 읽어야 하는가?
수박 겉만 핥을 것이 아니라 수박 속까지 핥고 영양분도 섭취하자는 뜻이다. 그 많은 팔만대장경 중에서 최고를 맛보지 못하면 불교 맛을 모르는 것이다. 그 좋은 보물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탐색해보자. 내 혼자 알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화엄경> 강설 80권 본의 1차분으로 다섯 권이 발간됐다. 첫 5권에 담긴 세주묘엄품은 어떤 경전인가?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7곳에서 9번에 걸쳐 법회를 여신 것을 39장에 담았다. 그중에 최초 제1장이 세주묘엄품이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세상의 주인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했다는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생명, 삼라만상 전체를 주인으로 보고 낱낱이 동참함으로 해서 이 세상이 아름답게 장엄돼있다고 보는 것이 세주묘엄품이다. 과거에 <화엄경> 책을 냈었어도 단순 번역이었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책 도입에서 독자 스스로가 깨달았다고 가정하고 읽으라 했다. 어떤 의미인가?
<화엄경>을 읽다보면 넘치는 마음이 생긴다. 건방이 생긴다고 할까, 내가 깨달은 게 아닌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렇게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사람도 아닌데 경전 분위기에 휩싸여서 착각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도취하다보니까 맛을 느끼게 되고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것을 해오(解悟)라고도 하고 초견성이라고도 한다.
나는 중생이라 수준이 안 맞다고 부정하고 있으면 <화엄경>을 못 읽는다. 재미가 없다. 깨달았다고 가정하고 거기에 편승해서 같이 간다면 최소한도 화엄삼매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다.
-<화엄경> 중 어떤 구절을 가장 좋아하는가?
굳이 꼽자면 <화엄경> 첫 구절에 보면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은 견고하여 금강소성이라'고 한다. 다이아몬드로 이뤄졌더라는 것이다. 나도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인도의 보리수나무에 가봤지만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척박한 모래자갈뿐이다. 왜 부처님이 거짓말을 했을까, 부처님이 이걸 모르셨을 리가 없는데… 의문을 가지게 됐다.
내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깨달은 사람의 정신세계란 그 어떤 것도 다이아몬드 아닌 것이 없다. 보리수의 장엄도 그렇고 금강보좌의 장엄도 그렇다. 금강보좌라는 것도 그냥 바위인데 어마어마한 장엄을 이야기 한다. 그런 장엄들이 어떻게 이렇게 표현될 수 있었는가, 그걸 내 나름대로 깊이 공부하다 보니까 나라도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겠다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됐다.
천분에 만분에 일의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주 총명하고 영리하고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비로소 눈을 뜨고 세상을 봤을 때 그 감동이 얼마나 했겠는가. 그런 비교를 통해서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것을 긍정하고 수긍하게 됐다.
-<화엄경>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한다. 추한 것도 과연 아름다운가?
우리가 사물을 보고 사람을 볼 때는 전부 자기 관점에서 판단한다. 아름답다 추하다도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완전히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에 완전히 그 입장이 돼서 보는 것이다. 밥은 밥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똥은 똥의 입장에서 이야기 한다. 똥은 똥으로써 아주 지독한 냄새를 풍겨야 똥으로써 아름다운 것이다. 벼가 있기 때문에 쌀이 있는 것이지 쌀이 무슨 공이 있느냐 이거다. 또 벼의 뿌리 입장에서는 뿌리가 없으면 열매가 어떻게 있겠나. 그 하나하나의 가치를 부처님의 안목으로 살리고 있다. 일체가 다 이세상의 주인이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에게로 펼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엄경>은 그런 것이다. 그걸 확연히 깨닫고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살면 이 세상에 인정 안 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내 개인의 인생이고, 그걸 펼쳐서 내 가족, 내 몸 담고 있는 사회로 펼쳐서 <화엄경>의 안목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표현하면 참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되겠다 하는 마음에서 많은 사람이 <화엄경>을 읽기를 학수고대한다.
-현대인들은 경전 읽기를 어려워한다. 스님의 <화엄경 강설> 집필은 어떠했는가?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표현하지만 그 표현이 한계가 있다. 사회인들이 잘 쓰고 사용하는 언어로 완전히 환골탈퇴해서 쓰면 좋겠는데, 늘 글을 쓰다 그 부분에 봉착해서 답답함을 느낀다. 경전은 끊임없이 번역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언어와 느낌 그대로 새롭게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늘 한다. 그러면서 좀 더 미래 사람들이 읽어도 이해가 빨리 되고 감동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를 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고전적이고 구태의연한 표현이더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여러분들도 좀 이해하려는 노력, 경전 읽는 것을 삼류소설처럼 읽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 페이지 읽고 한 구절만 이해하면 되지 않겠는가. 한 번에 한 줄을 이해하면 그 담에 두 줄 석 줄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려는 노력만 있으면 크게 문제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100% 이해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거다. 읽더라도 다 알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는 만큼만 봐도 건질 게 많다.
경전은 사람을 개조하는데 뜻이 있다. <화엄경>을 보다가 감동적인 구절을 보고 내 자신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나.

화엄전 앞에 선 무비 스님. 스님은 화엄사상이 '비정한 사회'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인불사상을 강조하는데…
불교의 경전 중에 인불사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법화경과 <화엄경>이다. 불교를 종합해서 간단하게 정리하면 인불사상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책이나 경전을 볼 때도 인불사상이 나온 구절은 꼭 드러내서 설명한다. <화엄경>은 더할 나위 없다. 인불사상은 백보양보해서 사람만 부처라는 것이지만 <화엄경>은 만유개불 사상이다. 모든 것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한 사회라고들 한다. <화엄경>이 난국을 해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사회나 개인의 인생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엄경>을 전문으로 공부한 사람으로서 머리가 비좁도록 떠오른다. 사회문제도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깨달음도 좋지만, 깊은 사유를 통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한 인간의 존엄성을 마음 깊이라도 담을 수 있다면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큰 힘이 돼서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사회가 되지 않겠나. 그것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것을 하던 결론은 늘 사람을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동료를 부처님처럼 여긴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기분 좋겠나. 존중 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기분 좋을 수가 있다. 한 가정에서 그렇게 한다면 그 가정은 정말 평화로운 가정이 될 것이다.
존중하고 찬탄하고 공양하고 공경하는 이 네 가지는 늘 따라다닌다. 인불사상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면 노사문제, 종교 갈등, 이념갈등도 해결될 수 있다.
-그에 비해 불교의 위상이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도 그렇게 본다. 불자들이 승속을 막론하고 불교를 수박겉핥기로 보고 진정한 불교의 맛을 못 느끼니까 이름만 불자고 간판만 불자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진정한 불자가 못 돼서 불자들이 하는 일들이 좀 바람직하지 못하고 온갖 부조리가 난무하고 그래서 사회의 지탄을 받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진정 불교를 이해하고 맛을 느끼면 제대로 행동을 하게 돼있다. 제대로 불교를 알면 그런 행동들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대의 불교인의 모델이 있다면 대만 자재공덕회의 증엄 스님을 생각한다. 그 스님은 불교정신으로, 철저히 보살정신으로 무장된 분이다. 그 분은 대만에서 자연재해로 한 마을이 다 떠내려갔을 때 교회를 두 개나 세워줬다. 그 분에게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중생이다. 부처님의 화두는 철저히 중생이지 그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중생뿐이다. 고통 받는 중생만 보일 뿐이다. 스님이 교회 두 곳을 지어줬다면 한국 불교인들의 상식으로는 놀랄 일 아닌가.
자재공덕회는 전 세계에 7~800만 명이 되는데 어디 일이 생겼다 하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게 그들이다. 가장 이상적인 불교, 꿈꾸는 불교인, 꿈꾸는 불교활동이 되려면 그 스님의 활동과 같이 해야 진정한 불교이다.
말인즉슨 대승대승 하지만 우리나라 불교는 지극히 소승적인 불교이다. 전 세계에서 대만불교가 최고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재가자들이 승행에 대해서 문제만 삼고 비판만 하지 관리감독 할 줄을 모른다. 대만은 한국 스님이 가도 관리를 받는다. 전 국민이 이렇게 스님을 대한다면 무슨 비리 비행이 생길 수 있겠나. 한국 불자들의 책임도 많다. 신도들이 지켜봐주고 관리감독을 잘 해주면 근본적으로 양심이 있는데 어찌 잘못된 행을 할 수 있겠나.

화엄전 앞마당 나무에 새순이 돋기 시작한다. 스님의 10년 결사도 이제 막 움트고 있다.
-하루 일과에서 집필 작업은 어느 정도를 차지하나?
하루에 자고 일어날 때마다 틈틈이 다섯 번쯤 한다. 허리 수술을 하면서 신경을 건드려 하반신이 50%정도 마비된 상태이다. 그 덕택에 <화엄경>에 몰두를 하게 됐다. '결핍이 자산'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재단 설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발기만 하고 진척이 없다. 재단을 세우려면 돈이든 시간이든 자기희생이 따라야 하는데 이를 감당 못하는 것 아니겠나. 말만 무성하고 진척이 없지만 내 혼자는 할 수 있는 것까지 하고 있다. 재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단이 하고자 하는 법공양 사업을 위해서이다. 지금도 공부하러 오는 스님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책자를 택배로 보내주기도 하고 공부하러 온 스님들이 한 권 두 권 집어가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불교영어책 1천권을 전국 강원에 보냈다.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고 원력이 있어야 하는데 소원하다. 그럴수록 박차를 가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 책도 전국 주요 사찰 30곳에 10질씩 법보시 했다.
-매달 열리는 화엄산림대법회에서 하는 이야기와 강설이 같은가?
화엄산림대법회는 견문은 하나로 두되 그때그때 안목에 따라서, 감정과 느낌, 시사적인 것을 곁들여서 한다. 매달 녹취해서 월간지로 50권까지 나왔다. 강설은 한문 번역 하나하나 내 손으로 하고 있다. 강의와 달리 글로 쓴다는 것은 간추려서 정의를 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필요한 내용만 쓰는 것이다.
-또 다른 집필 구상은?
<화엄경> 명시집을 내고 싶다. 구절구절이 좋고 한 글자가 다 명시이고 명언인데 어느 것 하나를 빼놓을 수 없어서 전체 다를 하고 있다. <화엄경> 강설은 이제 시작이지만 회향한 뒤의 계획도 잔뜩 가지고 있다.
-어떤 스님으로 남고 싶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 인류가 남긴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최정상에 있는 가르침을 세상에 안내해주는 안내자로 남고 싶다. 이 책도 부처님 법을 널리 편다는 사명감으로 집필하고 있다. 마침 인연이 맞아떨어진 사람은 탐독할 수 있을 것이고 새사람으로 개조될 수도 있고, 한사람이 그러면 차츰차츰 늘어나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샘물이 되고 물줄기가 되지 않겠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세주묘엄품, 1~5권)┃여천무비┃담앤북스┃각권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