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비구니이자 문인인 일엽 스님의 저서 <어느 수도인의 회상>이 스님의 입적 43년 만에 영문판 책자 〈Reflections of a Zen Buddhist Nun〉(하와이대출판사)으로 출간됐다. 책은 박진영 미국 아메리칸대학 교수가 번역하고 김일엽문화재단(이사장 월송 스님)이 후원했다.

영문판의 주요 저본이 된 <어느 수도인의 회상>은 일엽 스님이 불립문자를 주창한 스승 만공 선사의 뜻에 따라 절필한지 30년 만에 대중포교에 뜻을 두고 펴낸 책이다. 세간에 잘 알려진 <청춘을 불사르고>의 초간본이라 할 수 있어 일엽스님의 불교사상과 참선 세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수상록이기도 하다.

서문에서는 번역자인 박진영 교수가 '김일엽: 삶과 사상'을 주제로 일엽 스님의 삶과 문학, 신여성으로서의 활동, 종교관을 소개한다.

1부에는 <어느 수도인의 회상>에 실린 ▲인생 ▲불교와 문화 ▲만공대화상을 추모하며(15주기일에) ▲입산 25주년 새해를 맞으며 ▲방콕에서 주최되는 제 5회 불교도연맹대회에 보내는 제의서 ▲불교에서는 왜 정화운동을 일으켰나 ▲C선생에게 (C선생은 사학가로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함) ▲M친구의 편지를 읽고 ▲R씨에게 ▲B씨에게 ▲반환된 선물을 안고서 ▲노스님 원고를 베끼고 나서(월송 스님) 등이 번역됐다.

2부에는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 중에서 ▲공으로 돌아가라 ▲기도와 염불 ▲참선과 심득 ▲영생을 사는길: 언론인들에게가 발췌, 번역됐다.

일엽 스님의 손상좌인 경완 스님은 4월 15일 영문판 출간을 알리는 간담회에서 "일엽 스님께서 생전에 내 책이 영어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서원하셨다고 한다"며 "이 책은 불교의 심오한 사상을 일엽 스님의 관점으로 내재화해 표현할 뿐만 아니라 비구니로서의 삶을 불교적 맥락에서 서술하고 있어 미국학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성 불자와 여성 불교에 관한 논의에 공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엽 스님은?

일엽 스님(1896 -1971, 본명 김원주)은 근대문학 태동기의 문학도(文學徒), 개화기의 여성운동가, 사상가이자 종교인이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신학문을 수료하고 동경 유학을 다녀왔으며, 개화기 최초의 여류 문인으로서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으로 대표되는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했다.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라며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우는 스승 만공 선사의 뜻에 따라 절필하였으나 1960년대 초, 대중포교에 뜻을 두고 펴낸 <어느 수도인의 회상>, <청춘을 불사르고> 등은 출판되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71년 1월 28일 새벽, 세수 76세, 법랍 38세로 자신이 건립한 비구니 선원에서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