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산 봉국사(3)

                                                    수원사람  김성채

맞배집으로 지을 리가 .

대광명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맞배지붕 집입니다. 주심포 형식으로, 두 개의 익공은 끄트머리가 모두 하늘로 향했습니다. 대광명전은 지붕이 커서 장중해 보이는데, 이는 창방 위쪽(익공부터 용마루까지)이 창방 아래쪽보다 춤이 길어 보이고 또 익공을 짜면서 기둥 밖으로 출목도리를 놓아 실제로도 지붕이 깊어졌습니다. 

풍판이 귀포를 가리고 있습니다.

주심포 형식에 이익공이 짜였고, 측면에 빼도리와 장혀가 나왔습니다.

특이한 점은 맞배집 익공은 새 부리 모양이든 소의 혀 모양이든 정면을 향해 뻗치는데, 모서리 귓기둥에 팔작지붕이나 우진각지붕 집처럼 귀포를 짰고, 45도 각도에도 익공(한대)을 짰습니다. 모서리 기둥에 올리는 귀포는 익공과 첨차를 엮기가 훨씬 어렵고, 측면에 매달린 풍판에 의해 가려지는데도 귀포를 짰습니다.

한옥, 특히 팔작지붕이나 우진각지붕 집을 아름답게 하는 첫 번째는 추녀를 살짝 들어 올려서 생겨난 처마 곡선이고, 두 번째는 그 추녀 밑에 짜 넣은 귀포입니다. 추녀가 없는 맞배집에 귀포가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맞배집은 측면에 지붕을 만들지 않아서 짓기가 쉽고, 그래서 건축비가 상당히 절약되는 집입니다. 왕실에서 원찰을 지으면서 굳이 맞배집을 지으라고 명하지는 않았을 테고, 또 집 모양과 어울리지 않는 귀포를 짰다는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 포벽에는 화반을 그렸고, 화반 양옆에는 결가부좌로 좌정하신 부처님을 그렸습니다.

언제쯤 길들은 흰 소가 되려나

사찰 단청은 순도 높은 채색과 갖가지 문양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대광명전은 단청한 지가 오래된 탓에 색상이 바랬고 또 벗겨져 남루해졌습니다. 측벽과 후벽에 십우도를 그렸는데, 열 장의 그림 중에 달아났던 소를 찾아서 끌어당기는 그림(牧牛)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뒷벽이라 비바람에 덜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집 나간 소를 찾았으니, 집으로 끌고 가야 합니다. 온 세상을 거침없이 노닐었던 소가 쉽게 집으로 끌려갈 까닭이 없습니다. 집을 뛰쳐나가서 보낸 기간이 길수록, 끌고 가기가 어렵습니다. 힘들게 찾아낸 소를 놓치면 더 멀리 도망칠 것이고, 다시 찾아내기는 훨씬 어려울 겁니다. 목동이 눈썹을 곤두세우고 입을 앙다문 채, 온 힘을 다해 고삐를 당깁니다.

고삐를 틀어잡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빠른 시간에 길들일수록 좋습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세속에서 찌들어,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어진 때를 벗겨내는 과정입니다. 길들은 정도에 따라 소 색깔은 흰색으로 바뀌는데, 소의 색깔은 아직 검은색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코뚜레를 꿰었기 때문에 소는 목동에게 쉽게 굴복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의 마음에는 꼬뚜레를 꿰지 않았고 청개구리만 웅크리고 있어서,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려 든다면 반발심만 더 커집니다. 누군가에게 끌려가지 않고 ‘더러워진 때를 스스로 씻어 흰색 소가 되어야 한다’면서 벽화를 보았는데, 곰곰이 살펴도 내 마음의 색깔이 어느 정도인지 짚이지 않았습니다.

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설산동자가 몸을 던지듯

법당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지 않도록 우물천장과 빗반자를 달았고, 반자틀로 만들어진 칸칸(반자널)에는 상서로운 길조와 꽃으로 가득합니다. 단청이 오래되어 그림이 칙칙해졌어도 화려했던 옛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서쪽에 아미타여래가 설법하고 계신 극락세계가 있는데, 그 국토에는 밤낮으로 공작과 앵무새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하늘에서 만다라화 꽃비가 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당 천장을 우물천장으로 꾸미는 이유는 경전에 쓰인 장엄을 그려놓아, 중생들에게 극락세계를 보여주려 함입니다.

대광명전에 들어서면 충량과 마족연을 볼 수 있습니다. 마족연은 추녀가 있는 지붕, 즉 팔작지붕이나 우진각지붕 집을 지을 때 사용됩니다. 천장 반자로 마족연이 가려지기는 했지만 천장의 네 귀퉁이에 마족연 형태의 반자틀이 걸렸습니다.

대들보에서 변두리기둥에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모양의 “충량”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불도를 깨치고 성불하길 바라는 마음을, 뛰어오르는 물고기로 나타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충량은 팔작지붕이나 우진각지붕을 지을 때, 측면 쪽이 받는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킬 목적으로 한쪽은 대들보에, 한쪽은 기둥에 거는 들보입니다. 측면에 지붕이 없는 맞배집에서는 당연히 필요가 없는 건축 부재입니다.

물고기가 위로 튀어 오르는 모양의 들보가 충량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대들보에는 머리를, 기둥에는 꼬리를 올려놓은 모양입니다.

많은 대웅전의 대들보 위에 용머리가 조각된 충량이 걸쳐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외부에 짜 놓은 귀포, 내부에 사용된 충량과 마족연을 보면서, 대광명전은 애초에 팔작지붕으로 지었음을 추측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측면에 달린 지붕을 이뤘던 부재가 낡거나 전쟁 등으로 훼손되었는데, 원형 복원이 해결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훌륭한 대목장을 만나지 못했든지 또는 마땅한 부재를 찾기가 어려웠거나, 중수 불사를 위한 재물 보시가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훼손되었는데 원형을 복원할 수 없어서, 찾아낸 가장 적합한 방법이 측면의 지붕을 잘라내는 것이었습니다. 팔작지붕의 좌우측 지붕을 떼어내면 맞배지붕이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산동자였던 전생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설산동자가 설산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간절히 수행하다가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니, 태어나 죽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네(諸行無常 是生滅法)’라는 게송을 듣고 귀가 솔깃해집니다. 

이어져야 할 중요한 다음 구절은 들리지 않고, 나찰귀가 나타나 ‘지금 배가 고프다. 고기를 주면 나머지를 들려주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설산동자는 망설임 없이 ‘방금 들려준 게송의 뒷부분을 들려주면 내 몸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나찰귀는 ‘나고 죽는 그 일마저 사라져 버리면 거기에 고요한 즐거움이 있네(生滅滅已 寂滅爲樂)’라고 읊은 후, ‘이제 너의 몸을 나에게 받쳐라’라고 말합니다.

설산동자는 불교의 중심사상인 이 게송을 바위에 새긴 후, 나찰귀에게 몸을 던집니다.

설산동자가 중생들에게 삼법인을 전해주기 위해 자기 몸을 던졌듯, 부처님을 길이 모시기 위해 ‘대광명전이 자신의 측면지붕을 떼어냈다’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은 어디에서 

주존불은 아미타여래로, 봉안한 불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9호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입니다.

불모(佛母)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한나절 만에 불상을 조각해 낼 수 없고, 상당히 오랫동안 지극한 정성을 들여야 한 좌(座)의 불상이 탄생합니다. 불모는 ‘내가 어떤 불상을 조각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품고, 그 부처님의 상호를 어떻게 표현할까? 또는 법당의 규모에 어울리는 불상의 크기 등을 헤아리며 때를 기다립니다. 조각할 부처님에 대한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첫 단계는 불상이 될 나무둥치를 만나는 때입니다. 불모가 나무를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나는 부처님이 될 거야’라는 꿈을 키운 나무가 불모를 만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350년 전, 불모가 어떤 큰 나무의 둥치를 보는 순간에 단순한 나무둥치가 아니라 “부처님”으로 보였을 겁니다. 불모가 깨끗한 마음에 지극한 정성을 들여 깎고 빚는 동안, 많은 스님들의 기도와 축원이 모여 완성되었고 대광명전에 봉안되었습니다. 

그 옛날 목조아미타불좌상을 봉안할 때 주지스님은 불상 제작의 순조로운 진행을 감사하고 축하하면서, 복장에 경전과 진언을 넣었고 중생들에게 큰 가피가 내려지기를 기원했을 겁니다. 목조 불상이기에 우려되는 화마 그리고 전쟁의 위험에서도 잘 보존된 것은 불자들의 끊임없는 예배와 공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5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많은 분의 기도와 축원, 예배와 공경은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기간 동안, 많은 불자의 크고 작은 소원이 아미타불좌상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법당 안에 쌓인 소원 성취의 힘이, 법당에 들어선 다른 불자의 어깨며 팔뚝에 들러붙었을 겁니다.

관무량수불경에는 부처님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계신다고 쓰여있지만, 관세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협시보살로 봉안되었습니다. 뒷벽 후불탱(아미타불회도)에는 관경에 쓰인 그대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그려졌고, 지장보살은 대세지보살 옆쪽에 육환장을 들고 서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삼존불을 봉안해 모신 것은 현종이 요절한 두 딸이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빌고, 어려움에 빠진 중생의 부름에 관세음보살께서 자비롭게 도와주시길 바라고, 지옥도에 떨어지더라도 지장보살의 구제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법회 참석자들은 누구인가? 

불단 후벽에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아미타불회도가 걸렸습니다. 아미타불회도는 아미타부처님께서 법회를 하실 때, 법회에 참석한 제자와 보살 그리고 신중을 그린 그림입니다.

당연히 중앙에는 아미타불이, 상단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의 화염문, 부처님의 좌측 상단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코끼리왕(야차), 우측에는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자왕(건달바)이 그려졌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께서 법회를 하실 때면 천룡팔부로 일컬어지는 용, 천, 야차, 건달바 등 여덟 신들이 참석하여 설법을 듣는데, 그들의 대표로 그려졌습니다. 

그 아래 좌측에는 법회가 열렸을 때 자리가 부족해지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자신의 자리 반쪽을 내주었다는 마하가섭이, 오른쪽에는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은 아난존자가 그려졌습니다. 그 아래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한 여섯 분의 보살이 그려졌습니다. 탱화의 하단에는 비파며 탑 등 자신의 지물을 든 사천왕이 그려졌습니다.

안내판에 아미타불회도가 ‘고종 10년(1873년)에 제작되어 봉국사에 모셔졌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이는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을 모신 상단의 후벽에 아미타불회도를 걸게 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엄과 장엄을 더 높이고 요절한 공주들의 극락왕생을 기원을 의도한 것입니다. 

이때는 고종이 내시를 보내서 공주들의 제사를 지낸 때로부터도 6년 이후로, 봉국사가 오랫동안 왕실의 비호를 받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미타삼존불을 모신 상단 위에 화려한 궁전(닫집)이 보입니다. 궁전은 우리가 들어서 있는 불국토의 가장 높은 곳, 부처님이 계신 집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아미타 부처님이 계신 극락 국토는 일곱 겹의 방호막으로 에워싸였고, 사방의 계단 위 누각은 칠보로 꾸며져 공덕과 장엄을 이루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솜씨 좋은 소목장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궁전을 보여주기 위해, 갖고 있는 재주를 한껏 뽐냈습니다. 

기둥을 세우고, 평방 위에 화반을 놓고, 첨차와 살미를 거듭해 짜맞춘 섬세한 일솜씨가 기막힙니다. 평범한 공포의 짜임도 놀라운데, 닫집이 아자형(亞字形)이어서 연이어 접어낸 귀포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켜켜이 쌓은 공포로 처마가 깊어졌어도 짧다 싶었는지, 서까래와 덧서까래로 기와지붕을 삼십삼천까지 들어 올렸습니다. 떠 있는 기둥 아래에는 연꽃이 피어났고, 그 사이에 오색구름이 떠다닙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닦고, 끝없는 선행을 베풀고, 아미타부처님 뵙기를 염원해야 갈 수 있는 곳이 극락 국토입니다. 아름다운 극락 국토를 보여줌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층 더 공부하게 해주신 분께 감사드리면서 법당을 나왔습니다.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과 어간 디딤돌에 놓인 스님의 털신이 정겹습니다. 어간으로 오르는 계단의 맨 아랫단에는 뭔가를 새긴 엄지기둥이 세워졌는데, 읽지 못했습니다.

대광명전을 나와서 뒤돌아보니 단청이 퇴색된 것과 마찬가지로 주련에 쓰인 글자도 흐릿해졌습니다. 사실은 글자가 희미한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어내기가 어려웠고, 읽어내기는 했는데 도저히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해저니우함월주  海底泥牛含月珠  

암전석호포아면  巖前石虎抱兒眠  

철사찬입금강안  鐵蛇鑽入金剛眼  

곤륜기상로사견  崑崙騎象鷺鷥牽  

바다 밑에 진흙 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고

바위 앞의 돌 호랑이 새끼를 안고 졸고 있네.

쇠로 된 뱀이 금강의 눈을 뚫고 들어가는데

코끼리를 탄 곤륜을 해오라기가 끌고 가는구나.

담긴 뜻을 도저히 알 수 없고, 담긴 뜻이 어느 정도 깊이인지 궁금했습니다. 눈이 밝지 못하니, 맑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수면 가깝게 다가온 듯하다 사라진 물고기가 붕어인지, 금빛 잉어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르는 강아지가 호랑이에게 대들듯, 알음알이를 했습니다. 

진흙탕에서 질척거리는 중생에게 진리를 찾으라 했더니, 바다에 비친 달을 보고 뛰어들고.

마음속에 있는 부처를 찾으라 했더니,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자기 닮은 새끼만 껴안고 있네.

하찮은 알음알이만 믿고 부처님의 진리를 알았다고 하네.

큰 깨우침을 이루어 코끼리를 타면 속박도 장애도 모두 없어진다네.

봉국사는 큰 도시의 복판에 훤히 열려있는 사찰입니다. 통행 차량이 많은 도로와 인접해 있지만,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절 마당에 오르면 막돌 기단과 계단이 품고 있는 여유로움과 느긋함을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북적대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부처님과 가깝게 지내라고 도시 시민들의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 찾아가시더라도 포대화상이 반갑게 맞아주실 것이라고 장담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