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산 봉국사(1)

                                     수원사람  김성채

보이는 것 모두가 변했거나 바뀌는 것 

아파트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숫자의 반을 넘어선 지금, 아파트단지 근처의 사찰과 선원을 보면 세월이 바뀌었음을 느낍니다. 사찰 환경이 ‘주변에 건축된 현대식 건물과 어울리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대도시 도심에 있는 전통 사찰을 보면서도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납니다. 깊은 산속 고요함에 머무르던 사찰이 고층 건물과 아파트로 둘러싸여, 세속과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찰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세속과 동행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가 마가다왕국 수도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며, 출가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머무르며 법답게 도를 행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주문. “영장산 봉국사”라고 쓰인 현판이 걸렸습니다.

일주문

시내버스가 지나다니는 큰 길가에 세워진 일주문 현판에 “영장산 봉국사”가 쓰였습니다. 일주문은 부처님이 계신 불국토와 속계를 가르는 곳에 세운 문입니다. 불국토에 들어서기에 앞서, 속계에서 찌든 때를 깨끗하게 씻고 한마음으로 불법의 진리를 생각하며 들어오라는 뜻이 담겼습니다. 담장에 붙어 있는 기둥이라면 기다란 담장의 힘에 서 있으련만, 일주문은 자신의 두 기둥만의 힘으로 버텨야 하니 어지간히 굵은 기둥으로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거나 버텨내는 힘은 한마음(一心)에서 나오니, 일주문은 생김새도 그렇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단단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깊은 계곡에 있는 산사 방문은 외길 끝에 세워진 일주문에 도달할 때까지 걸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그간 알게 모르게 저지른 악행을 참회하고, 다시는 그러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일주문이 도심에, 그리고 큰 길가에 있어서 사찰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는 편안함은 있으나, 진리를 찾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려는 마음을 낼 겨를이 없어 아쉬움도 일어납니다.

현판에 쓰인 “영장산”이란 이름은 언제 지어졌을까요? 조선의 18대 왕 현종은 1673년 둘째 딸을 잃고, 100일도 지나지 않아 첫째 딸까지 잃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전염병인 두창(천연두)은 세계가 두려워한 병으로 왕족이라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 딸은 혼인 날짜를 정해 놓고 죽었고, 둘째 딸은 부마가 될 집에서 왕실로 혼인을 청하는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 죽은 때문에 현종의 애통함은 매우 컸습니다. 지금의 봉국사 뒤편에 있는 산자락 어딘가를 능 터로 삼았습니다. 이 산의 본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하나, 처음 이름을 지을 때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린다’는 뜻을 가진 영장산(靈長山)으로 짓지는 않았을 겁니다. 왕실은 본래부터 불렀던 산 이름을 제치고, 두 공주의 영혼이 오래가도록 평안하기를 바라면서 영장산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했을 겁니다. 그렇게 상(喪)을 치른 이듬해, 현종은 두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능 인근에 있는 절을 중창하고 “봉국사”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고려시대에 광주목(廣州牧)에 파견된 절도사를 “광주 봉국군절도사(奉國軍節度使)”라 하였고, 조선의 옛 지도에도 “광주 회안남한한산 봉국군”이라 표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광주목 절도사를 “봉국군절도사”라 부른 것은 삼국시대부터 남한산성 지역이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요충지인 때문입니다. 봉국사라는 이름도 그렇게 중요한 곳에 세운 절이라는 의미를 담았을 것입니다.

천왕문은 일주문 옆에 세워졌습니다. 바로 앞 도로에는 시내버스가 다닙니다.
 

천왕문을 짓는 마음

일주문 옆에 천왕문이 있습니다. 봉국사가 전통 사찰이지만 일주문과 천왕문의 건물 형색을 보면 근래에 지어진 것임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경전에 ‘사천왕이 사는 사왕천(四王天)은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우러져 매우 보기 좋고, 모두가 금ㆍ은ㆍ유리ㆍ파리ㆍ적주ㆍ차거ㆍ마노의 칠보로 잘 꾸며져 있다’고 쓰여있습니다. 사찰 입구에 천왕문을 지어 아름다운 색깔로 단청한 것은 봉국사 입구를 사왕천처럼 꾸며놓아, 부처님과 불교를 지켜주는 사천왕을 머물게 하려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사천왕이 불법에 귀의할 때, ‘너희들은 4부 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을 부지런히 보호하여 좋지 못한 것은 없애주고 편안케 해주어야 한다.’고 부처님께서 당부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큰 길가에 세워진 일주문과 천왕문이 문짝이 없는 채로 항상 열려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렵다’라는 생각도 털어내고, 쉽게 들어서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법당을 오르는 계단과 누각. 무량광전.

모든 사찰 터는 죽림정사 터와 같아

천왕문을 지나면 화강암 옹벽과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옹벽이 시야를 꽉 채웁니다. 영장산 산기슭에 봉국사를 짓기 위해서는 비탈진 기슭을 잘라내야 했고, 잘라낸 빗면의 유실을 막기 위해서는 옹벽을 둘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둘러친 옹벽 뒷부분은 흙으로 채워졌고, 성토로 평탄해진 땅은 법당의 앞마당이 되었습니다. 높은 옹벽의 한 부분에 법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놓았고, 계단 위 누각을 여섯 개의 굵은 돌기둥이 받쳐줍니다. 

법당 마당 아래는 무량광전입니다. 아래쪽에서는 지면에 건축한 법당이지만 계단을 올라가 위쪽에서 보면 마당 밑에 있는 반지하 집이 됩니다. 

무량광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광명이 가득하다’는 뜻을 가진 법당입니다. 이곳은 아미타 부처님이 설법하고 계신 극락세계를 옮겨온 곳으로, 법회를 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정토가 되었습니다.

빔비시라왕은 먼 곳에서 성(城)까지 오가시면서 불법을 펴시는 부처님이 피곤하신 것을 염려하여, 성읍과 가까운 곳에 계시면서 편하게 도를 행하시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습니다. 그리하여 죽림원 보시를 수락해 주시기를 요청하는데,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죽림을 보시하지 말고, 승가에 보시하기’를 허락하셨습니다. 부처님의 허락이 있자 사천왕은 파란빛 몸의 야차들에게 죽림에 가서 가시덤불이며 흙무더기 등을 깨끗이 청소하고, 움푹 파인 곳을 메워 평탄하게 만들고, 정결하게 할 것을 명합니다. 

죽림정사가 산비탈을 깎고 흙무더기를 걷어낸 자리에 터를 잡은 것처럼, 봉국사도 영장산 비탈을 자르고 깎고 고르게 폈고, 앞쪽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하는 가로지르는 길을 냈다고 추측하였습니다.

(왼쪽부터)삼층석탑. 봉국사 사적기실비.

석탑에 담겨있는 마음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대광명전과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대광명전은 현종 재위시에 건축된 것으로 확인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삼층석탑은 최근에 세워졌습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에 법당 앞에 위치하며, 부처님의 염원과 중생들의 받듦을 상징합니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부터 돌을 가공해 탑을 쌓아왔기 때문에 어느 폐사지든 법당은 볼 수 없어도, 탑이 남아있어서 그곳에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이 유교 이념으로 뭉친 탄탄한 나라였지만, 승가는 작은 절을 건립할 때도 가람을 배치하는 법도를 지켜 한 기의 탑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왕실에서 공주의 명복을 비는 원찰을 지으면서 탑을 세우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때 세운 탑이 언제인가 훼손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석탑 뒤에 세워진 “영장산 봉국사 사적기실비(事蹟記實碑)”에는 재(齋)를 올린 선남자와 선여인 두 분께서 1977년 태국에서 모셔 온 부처님 사리를 봉안할 석탑을 세웠다고 쓰였습니다. 탑을 향해 예를 올리는 것은 탑에 부처님의 사리를, 사리가 없으면 가르침인 경전을 봉안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탑은 부처님과 다름이 없고, 경전에도 불탑 조성은 부처님을 뵙게 하거나 진리를 배우게 하는 어마어마한 공덕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단단한 화강석을 매끈하게 갈아서 세운 석탑을 보면서 기계로 자르고 깎아낸 석공의 수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돌을 자르는 톱과 돌을 갈아내는 힘센 기계를 사용해 제작했더라도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아쉬워졌습니다. 현대의 석공이 단단한 돌을 쪼아내고 다듬어 냈지만, 그 정성과 불심이 옛 석공만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자기는 어느 것도 하지 못하면서 남을 낮추는 나쁜 마음입니다. 

컴퓨터가 그리고, 그 도면을 바탕으로 0.1센티미터의 빗나감 없이 완전함을 이루어 내는 기계를 인간은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정밀하게 제작된 현대의 석탑은 선과 형태가 직선이고 날카로워서 옛날에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자연적인 아름다움과는 너무 차이가 납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물건이라는 생각을 떼어낼 수 없고, 이렇게 만든 탑은 천 탑이 남았고 천 년이 지나도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탑돌이를 하면서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포대화상

온갖 소원을 들어주시는 포대화상

석탑 옆에 아이들을 양 무릎에 앉히고, 어깨에 올려놓고, 환한 웃음을 짓는 포대화상의 석상이 조성되었습니다. 입을 크게 벌려 윗니가 다 드러나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포대화상의 배를 쓰다듬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이런 때문에 여러 사찰에 조성된 포대화상의 복스럽게 둥그런 배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고 까매져 있습니다. 

봉국사는 포대화상의 배를 보호(?)하려 하였는지, 접근을 막는 돌난간을 둘렀습니다. 그 난간에 방문객들이 소원을 빈 헝겊 띠가 가득 걸렸습니다. 띠에 쓰인 소원은 학업을 이루고, 취업을 이루고, 결혼을 이루고, 승진하고,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하기를 바라는 내용입니다. 그 틈바구니에 연세 많은 분이 쓰셨을 듯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띠도 보였습니다.

사바세계에 살아가면서 바라는 소원은 누구든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절실한 기복 신앙의 마음으로 빌었든, 장난스럽게 쓴 것이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곁에 계시다는 믿음을 주는 것도 큰 자비심이 아닐까 합니다. 

심검당

포대화상 석상 왼편 심검당에 여섯 잎의 주련이 걸렸습니다. 지혜의 칼로 한순간에 어리석음을 베어낸 경지를 읊은 내용입니다.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明實性即佛性  幻化空身即法身  

法身覺了無一物  本源自性天眞佛  

절학무위한도인  부제망상불구진

무명실성즉불성  환화공신즉법신

법신각요무일물  본원자성천진불

배울 것을 끝내고 한가로워진 사람은

망상을 털어낼 일도, 참됨을 구할 일도 없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아낸 것이 불성이고

허깨비같이 텅 빈 몸이 곧 법신이야.

법신을 깨달으면 실체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본래부터 갖고 있는 성품 그대로가 참된 부처님이야.

심검당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로 시작하는 “증도가”의 일부분이라 알고 있을 뿐, 깊은 뜻을 알지 못합니다. 점점 늙어가면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고, 욕심만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엉뚱한 잡념만 늘리고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고, 스스로 제 잘난 멋에 빠져서 남을 업신여깁니다. 자기가 허깨비인 줄 알면 허깨비가 아닌데,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서 다음 생에서나 이루겠다며 살아갑니다. 어리석음을 날이 바짝 선 칼로 단숨에 잘라내고 싶어 하는 것은 겉마음뿐이고, 스스로를 진리의 등불로 삼으라는 말씀을 언제까지 흘려 버리며 살아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심검당은 ‘나 같은 중생들이 불도를 성취했으면’하고 지었으려니 합니다.

감실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셨고, 좌우 벽에는 호법 사천왕이 그려졌습니다.(사진=김성채)
 

심검당 주존불은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고통과 갈증을 덜어내 주시는 자비의 화신입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上求菩提 下化衆生)하시는 보살님이기에 원통전을 따로 짓지 않고 심검당에 모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을 살피시다가 중생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 고난을 해결해 주십니다. 들고 계신 정병에는 고난의 불을 끄고, 갈증을 해결하는 감로수가 담겼습니다. 

감실 뒷벽에는 십일면관음보살과 천수천안관음보살을 함께 나타낸 붉은색 탱화가 걸렸습니다. 천 개나 되는 손에는 정병을 위시해서 염주, 여의주, 거울 등을 들고 계십니다. 이 지물들은 중생들이 처한 고난에 맞춰, 번뇌를 없애고 일체 소원을 성취하여 줄 수 있는 특급 해결책입니다. 그러나 보살님의 지물은 자비심을 나타내는 작은 상징일 뿐, 그것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진 분이란 것을 모르는 불자는 없을 겁니다. 

탱화 하단에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남쪽의 여러 나라를 순회하고, 불도를 이룬 남순동자가 아주 조그맣게 그려졌습니다.(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