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왕켄뽀의 보성론 강의(015)//

강의 : 켄뽀 아왕상뽀

(북인도 둑 다르마까라 승가대학 교수사/ 서울 성북구 캄따시링 센터장)

번역 및 정리 : 자홍스님 (캄따시링 법회 통역)

교정 : 캄따시링 역경원(지성남, 김지아)

아상가 논사의 탱화

업과 번뇌의 물(水) 등으로써는

이것은 실로 성립하지 않으니

죽음과 병과 늙음의 불이

꺼지지 않더라도 태우지 못한다. [1.64]

།ལས་དང་ཉོན་མོངས་ཆུ་སོགས་ཀྱིས། །འདི་ནི་མངོན་པར་འགྲུབ་མིན་ཏེ།

།འཆི་དང་ན་དང་རྒ་བའི་མེ། །མི་བཟད་པས་ཀྱང་འཚིག་མི་འགྱུར།

계(界)의 10상(十相) 중에 9번째인 상주불변의 덕(不變徳, Tib. rtag tu mi 'gyur yon tan, Skt. sadāvikāritva-guṇa)의 덕에는 3가지가 있는데, 이 3가지는 앞에서 10상 중에 7번째인 '단계(時差別, Tib. gnas skabs, Skt. avasthā)'에서 부정, 부정하면서 청정함, 실로 청정함의 3가지를 제시했는데, 이 3단계와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즉, 범부일 때의 불변, 성자일 때의 불변, 부처일 때의 불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범부일 때의 불변은 무엇인가? 범부의 업과 번뇌에 의해 성립하는 온, 처, 계는 변화하는 것이지만, 심자성은 불변이다.

이제 1.64를 살펴보자. "업과 번뇌의 물(水) 등으로써는"라고 하였다. 업(業)은 신, 구, 의의 행위이다. 번뇌는 신, 구, 의의 행위의 동기가 되는, 탐, 진, 치, 만, 의 등이다. 업과 번뇌에 의해 윤회와 윤회하는 중생이 생겨난다. 윤회하는 중생의 신체와 그들이 향유하는 것들도 모두 업과 번뇌로부터 발생한다. 업과 번뇌는 물과 같다. "이것은 실로 성립하지 않으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것'은 심자성(心自性)을 가리킨다. 여래장은 업과 번뇌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과 병과 늙음의 불이 꺼지지 않더라도 태우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업과 번뇌에 의해 성립된 것은 무엇이든, 죽음과 병과 늙음의 괴로움을 반드시 겪는다. 지수화풍(地水火風)에 의해 성립한 사물은 불에 타면 소멸한다. 마찬가지로 업과 번뇌에 의해 성립한 것은 무엇이든 죽음, 병, 늙음에 의해 소멸한다. 그러나 심자성은 업과 번뇌에 의해 성립한 것이 아니므로, 죽음, 병, 늙음이 소멸시킬 수 없다.

겁화(劫火), 지옥불, 보통의 불의

3가지 불. 죽음과 질병과

늙음의 3가지 불은 순서대로

그것들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1.65]

།དུས་མཐའ་དམྱལ་བ་ཐ་མལ་པའི། །མེ་གསུམ་འཆི་དང་ན་བ་དང་།

།རྒ་བའི་མེ་གསུམ་རིམ་བཞིན་དུ། །དེ་དག་འདྲ་བར་ཤེས་པར་བྱ།

"겁화(劫火), 지옥불, 보통의 불의 3가지 불."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먼저 3가지 종류의 불을 언급한다. 겁화, 지옥불, 보통의 불이다. "죽음과 질병과 늙음의 3가지 불은 순서대로 그것들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겁화는 죽음과 같고, 지옥불은 질병과 같으며 보통의 불은 늙음과 같다. 이것은 그 위력에 따라 배분된 것이다.

겁화(劫火, Tib. dus mtha' me, Skt. yugānte agni)란 무엇인가? 이 세계는 성겁(成劫), 주겁(住劫), 괴겁(壞劫), 공겁(空劫)의 4단계를 거친다. 세간이 성립하고, 머물다가 최후에는 붕괴하게 된다. 이때 7화(七火)와 일수(一水), 그리고 마지막에는 풍(風)에 의해서 부서진다고 하였다. 7화(七火, Tib. me bdun)는 일곱 개의 태양이 타올라 온 대지가 불타고 모든 바다가 말라버리는 재앙을 의미한다. 엄청난 고온의 화염이 모든 것을 소각하여 온 세상이 먼지가 되어버린다. 지옥불은 팔열지옥(八熱地獄) 등에서 지옥 중생의 몸을 불태운다. 이는 일반적인 불의 70배가 넘는 위력이라고 한다. 보통의 불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나무나 종이를 태우는 불을 의미한다.

바깥 세계인 기세간(器世間)은 겁화, 지옥불, 보통의 불로 인해 소각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유정세간(有情世間)은 죽음과 질병, 늙음에 의해 쇠멸한다.

생, 죽음, 병, 늙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이것의 자성을 여실히 증득하여

생(生) 등의 곤경에서 벗어났음에도, 그 원인으로 인해

지자(智者)는 중생에 대한 비심(悲心)을 일으키므로 나타낸다. [1.66]

།སྐྱེ་འཆི་ན་དང་རྒ་བ་ལས་གྲོལ་བ། །འདི་ཡི་རང་བཞིན་ཇི་བཞིན་ཉིད་རྟོགས་ཏེ།

།སྐྱེ་སོགས་ཕོངས་དང་བྲལ་ཡང་དེ་ཡི་རྒྱུས། །བློ་ལྡན་འགྲོ་ལ་སྙིང་རྗེ་བསྐྱེད་ཕྱིར་བསྟེན།

"생, 죽음, 병, 늙음으로부터 자유로운"이라고 하였다. 성자(聖者)는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롭다. 어째서 자유로운가? 생로병사의 원인인 업과 번뇌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의 자성을 여실히 증득하여"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것의 자성'은 심자성을 가리킨다. 성자는 심자성을 여실(如實)히, 즉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깨달았다.

"생(生) 등의 곤경에서 벗어났음에도"라고 하였다. 곤경(Tib. phongs, Skt. vyasana)이란 괴로움, 번민을 의미한다. 성자인 보살에게는 생, 죽음, 병과 같은 괴로움과 번민은 이미 없어졌다. "그 원인으로 인해, 지자(智者)는 중생에 대한 비심(悲心)을 일으키므로 나타낸다."라고 하였다. 성자인 보살 자신에게는 더 이상 그러한 괴로움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자성을 깨달은 것을 원인으로 하여, 지혜로운 보살은 자성을 깨닫지 못한 모든 범부 중생에게 자비심을 일으키고, 그들을 위해 생(生) 등을 나타낸다. 잠곤꽁뚤 주석에서는, 다른 이들을 위해 발원(發願)을 일으켜서 그 위력으로 윤회계에 태어나고, 범부들의 상변(常邊)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중생들에게 죽음과 병듦, 늙음 등 부정(不淨)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성자는 죽음과 병듦과

늙음의 고통을 완전히 제거했으니

업과 번뇌의 힘에 의해 생겨나지만

그에게는 이것이 없으니 다시는 그것이 없다. [1.67]

འཕགས་པས་འཆི་དང་ན་བ་དང་། །རྒ་བའི་སྡུག་བསྔལ་རྩད་ནས་སྤངས།

།ལས་དང་ཉོན་མོངས་དབང་གིས་སྐྱེ། །དེ་ལ་དེ་མེད་ཕྱིས་དེ་མེད།

켄뽀 : 성자의 반대는 무엇인가?

학생 : 범부입니다.

켄뽀 : 성자와 범부의 차이는 무엇인가?

학생 : 깨달음입니다.

켄뽀 : 무아(無我)·공성(空性)을 직접적으로 깨달으면 성자라고 하고, 직접적으로 깨닫지 못했으면 범부라고 한다.

학생 : 번뇌장(煩惱障)을 제거했으면 성자라고 정의하면 안 될까요?

켄뽀 : 그렇게 정의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어째서인가? 여기에 답을 할 수 있다면 불교 교학의 기초가 잘 닦인 사람이다. 소승(小乘) 견도자(見道者)는 무아(無我)를 직접적으로 깨달았지만 번뇌장은 아직 제대로 제거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번뇌장을 완전히 제거했으면 아라한과를 이룬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라한과 이하의 소승 성자는 번뇌장을 아직 완전히 다 제거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보성론』 1.67에서의 성자는 대승의 성자를 의미한다. "성자는 죽음과 병듦과 늙음의 고통을 완전히 제거했으니"라고 하였다. '죽음'이란 자신의 온(蘊)의 상속(相續)이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자에게는 이것이 없다. 늙음과 병이란 자신의 온(蘊)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자에게는 이것이 없다. 성자는 이러한 죽음, 늙음, 병의 고통을 완전히 제거하였다.

"업과 번뇌의 힘에 의해 생겨나지만"이라고 하였다. 윤회계에 태어나는 것도 업과 번뇌에 의한 것이고, 윤회계에 태어나 죽음, 늙음, 병을 겪는 것도 업과 번뇌에 의한 것이다. "그에게는 이것이 없으니"라고 하였다. 성자에게는 업과 번뇌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는 그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다시는 업과 번뇌에 의해서 윤회계에 태어남이 없다는 의미이다.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보기 때문에

생(生) 등에서 벗어났지만

비심(悲心)의 자성(自性)이기에, 생(生),

죽음, 늙음, 병듦을 나타낸다. [1.68]

།ཇི་བཞིན་ཡང་དག་མཐོང་བའི་ཕྱིར། །སྐྱེ་སོགས་རྣམས་ལས་འདས་གྱུར་ཀྱང་།

།སྙིང་རྗེའི་བདག་ཉིད་སྐྱེ་བ་དང་། །འཆི་དང་རྒ་དང་ན་བར་སྟོན།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보기 때문에 생(生) 등에서 벗어났지만"이라고 하였다. 성자는 생로병사라는 아픔이 완전히 치료된 존재이다. 성자에게는 생로병사가 없다. 그런데도 성자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생하여 늙고 병들어 입멸하신 모습을 우리가 보지 않았던가? 1.68은 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승과 대승 간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소승 교학에서는 부처는 그 마음은 성불했을지언정 그 온(蘊)은 여전히 부처가 되기 전의 범부의 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온을 버리기 전까지는 여전히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범부가 성자가 되면, 그 순간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죽음의 사이(死移, Tib. bsam gyis mi khyab pa'i 'chi 'pho)를 겪는다고 한다. 마음이 변화할 때 신체도 강력한 변화를 겪는다. 조대(粗大)한 신체는 멸하고 미세한 신체가 성립한다.

"비심(悲心)의 자성(自性)이기에"라고 하였다. 보살은 그 성품이 자비롭다. "생(生), 죽음, 늙음, 병듦을 나타낸다."라고 하였다. 보살은 자비심으로 인해, 자신에게는 생로병사가 없음에도 마치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학생 : 티베트불교에서는 고승들이 환생을 하며 중생을 구제한다고 합니다. 고승이라고 하면 이미 성자일 텐데, 왜 그분들은 아프고 병이 듭니까?

켄뽀 : 1.68의 내용이 그에 대한 답일 수 있겠다. 보살은 생로병사가 없음에도 마치 있는 것처럼 중생에게 나타낸다.

학생 : 성자라면 누구나 자비심이 있습니까?

켄뽀 : 성자에는 크게 소승의 성자와 대승의 성자가 있다. 대승의 성자라면 모두 자비심을 갖고 있다. 대승의 성자는 초발심(初發心)부터 자비심과 보리심을 일으켜 대승의 수행을 시작한 이들이다. 어떤 성자가 나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에게 자비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마하깔라존(大黑天, Tib. nag po chen po, Skt. Mahākāla)의 경우 분노존(忿怒尊)의 모습이므로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무자비하다. 그러나 마하깔라존은 자비심으로 가득 찬 존재이다. 다만 그저 온화하고 평화로운 모습만으로는 중생을 구제할 수 없기에, 거칠고 험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 : 앞서 1.57에서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는 마음의 청정함에 실로 머문다."라고 하였는데, 이제 다시 마음의 자성은 생겨나거나 머물거나 멸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순이 아닌지요?

켄뽀 : 마음의 청정함에 머문다고 했지만, 어떠한 실체적이고 단단한 머묾의 토대가 있어서 그것에 의지하고 기대어서 머물러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허공에 온갖 사물이 의지하여 머문다고 하지만, 이것은 허공 중에서 온갖 사물이 생겨났다는 의미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심자성(心自性) 속에서 비여리작의와 업과 번뇌들이 생겨나므로 그것에 의지하여 머문다고 하는 것일 뿐, 실제로 머무는 실체적인 별개의 토대가 있고 그것에 머무는 별개의 주체가 있어서 의탁해서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성을 깨닫는다고 할 때, 깨닫는 대상과 깨닫는 주체가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인식주체인 능(能)과 인식대상인 소(所)가 따로 있지 않다. 마음 자신이 모든 희론(戱論)에서 벗어나고 본성(本性) 속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심자성(心自性)을 깨닫는 것이다.

법왕자(法王子)가 불변의 이 법성(法性)을

증득했으면서, 무명(無明)에 눈이 먼 자들에게

생(生) 등으로

보이는 것, 이것은 희유하다! [1.69]

།རྒྱལ་སྲས་འགྱུར་མེད་ཆོས་ཉིད་འདི། །རྟོགས་ནས་མ་རིག་ལྡོངས་རྣམས་ཀྱིས།

།སྐྱེ་བ་ལ་སོགས་དག་ཏུ་ནི། །མཐོང་བ་གང་ཡིན་དེ་སྨད་དོ།

1.69의 티베트어본(데게판) 4행에는 smad라고 되어 있는데(D4024, 123-57b, 5행), 이것은 rmad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잠곤꽁뚤 주석에도 역시 rmad로 되어 있다. 티베트어로 smad는 '하열하다, 낮다.'는 의미이고, rmad는 '경이롭다, 대단하다.'는 의미이다.

"법왕자(法王子)가 불변의 이 법성(法性)을 증득했으면서"라고 하였다. 여기서 법왕자는 보살을 의미한다. 보살은 불변의 법성을 깨달은 존재들이다. "무명(無明)에 눈이 먼 자들에게"라고 하였다. 무명에 의해 업과 번뇌에 짓눌려 지혜가 없는 중생들을 의미한다. 이 중생들에게는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있다.

"생(生) 등으로 보이는 것, 이것은 희유하다!"라고 하였다. 보살에게는 생로병사가 없음에도, 중생에게는 마치 보살에게 생로병사가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것은 희유한 일이다. 희유(稀有, Tib. rmad)하다는 것은 그렇지 않음에도 그렇게 보이는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라는 것이다.

성자의 영역을 성취한 자,

그가 범부의 영역에서 나타나니

그러하므로, 중생의

친우(親友)의 방편과 비심(悲心)은 으뜸이다. [1.70]

།འཕགས་པའི་སྤྱོད་ཡུལ་ཐོབ་པ་གང་། །བྱིས་པའི་སྤྱོད་ཡུལ་དུ་སྟོན་ཏེ།

།དེ་ཉིད་ཕྱིར་ན་འགྲོ་བ་ཡི། །གཉེན་གྱི་ཐབས་དང་སྙིང་རྗེ་མཆོག

"성자의 영역을 성취한 자"라고 하였다. 성자의 영역을 성취했다는 것은 성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초지(初地)부터를 의미한다. "그가 범부의 영역에서 나타나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속에서의 모습은 마치 범부중생과도 같이 나타난다. "그러하므로, 중생의 친우(親友)의 방편과 비심(悲心)은 으뜸이다."라고 하였다. 보살이 성자임에도 범부의 영역에서 생 등을 보이므로, 그들은 중생의 친구이며 그 비심(悲心)은 으뜸이다.

보살의 행은 본성을 그대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이 법의 실상이니 당장에 이렇게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급박하게 강요하지 않는다. 보살은 중생에게 맞추어 알맞은 때에 알맞은 방식으로 필요한 것을 보여준다. 오직 중생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에 따라, 법을 설하고 몸과 말의 행위를 한다. 보살은 때로는 매우 빈곤한 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성(性)을 파는 사람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는 짐승을 잡는 수렵꾼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보살의 행에는 자비, 방편과 지혜 3가지가 갖추어져야 한다.

학생 : 자비와 공성(空性)을 깨닫는 지혜, 이 두 가지의 선후차례는 어떠합니까?

켄뽀 : 도(道)에 입문하여 성불(成佛)할 때까지, 그것이 현저하게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않느냐의 차별만 있을 뿐, 자비와 지혜는 늘 함께 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신 것이 무엇 때문인가? 성불(成佛)하셨고 자비심이 있으셨기에 법을 설하신 것이다. 곡식이 완전히 익어 성숙해야 섭취할 수 있듯, 자비심이 있어야지만 부처님의 법이 중생에게 이익되는 것이다. 자비는 처음에는 종자와 같고, 중간에는 싹트게 하고 생장하게 하는 물과 같으며, 마지막에는 완전히 익은 과실과 같다. 자비는 도의 시작과 중간과 끝에 모두 중요하다.

학생 : 보살의 자비심 수행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려면 무엇을 공부하면 좋을까요?

켄뽀 : 까담 전통의 『수심칠요』(修心七要, blo sbyong don bdun ma), 람림(道次第, Tib. lam rim), 감뽀빠 대사의 『해탈장엄론』(dwaga po thar rgyan)과 같은 책을 공부하는 것을 추천한다. 『수심칠요』는 우리 캄따시링에서도 이전에 강의를 진행한 바가 있다.

학생 : 자비는 본래 없던 것을 완전히 새롭게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 마음속에 본래 내재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까?

켄뽀 : 지금의 우리와 같은 범부의 마음속의 자비는,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낸 자비이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있는 자비는 심자성(心自性)에 내재하는 덕(德)이 현현한 것이다. 자비와 지혜는 본래 심자성에 내재한다. 그리고 심자성을 깨달아 증득하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중생을 향해 자비심이 일어난다고 한다.

심자성을 직접적으로 깨달으면 성자이고 직접적으로 깨닫지 못하면 범부이다. 마음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삼매왕경』(三昧王經, Tib. ting nge 'dzin gyi rgyal po'i mdo, Skt. samādhi-rāja-sūtra)에서는 "청정함(Tib. dag pa), 밝음(Tib. dang ba), 빛남/ 부동(不動), 무위(無爲)는/ 보살의 영역이다."라고 하였다. ("dag pa dang ba 'od gsal ba /mi 'khrugs 'dus ma byas pa ni/ byang chub sems dpa'i spyod yul lo/", D127, 55-46a, 3) 또 "실로 고요하고 적정(寂靜)하며/ 번뇌가 없으며 열반이며/ 희론이 없으니 실로 무분별(無分別)이며/ 희론으로부터 실로 벗어났다." (rab tu zhi zhing nye bar zhi/ nyon mongs med cing mya ngan bral/ spros med rnam par ma spros pa/ spros pa dag las shin tu 'das/, D127, 55-46a, 3-4.) 이것은 법계(法界)에 대한 설명이기도 한다.

심자성을 깨달으면 마음은 더 이상 착란되지 않는다. 다만 자기 마음으로써 자기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 다른 깨닫는 방법은 없다. 업장을 버려야 하고 복덕을 쌓는 것이 기본적인 수행이지만, 마음의 자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버릴 바와 쌓을 바를 모두 떠난 곳에 머물러야 한다. 버릴 바와 쌓을 바를 모두 떠나면 마침내 마음의 자성을 볼 수 있다. 설사 심자성을 직접적으로 온전하게 깨닫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마음이 심자성과 가까워질수록 이 마음은 착란에서 멀어지며, 더욱 고요하고 편안하고 평화로워진다. 이러한 마음에 머무르며 행을 한다면, 세속의 범상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