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를 듯한
커다란 바위산이 사방에서 짓이기며
완전히 둘러싸듯
늙음과 죽음은 중생을 덮칩니다.
왕족과 바라문과 평민과
노예와 천민과 청소부…,
누구도 예외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립니다.
코끼리 부대도
전차 부대도 보병 부대도 어쩔 수 없고
또한 전략으로, 재력으로 싸우더라도
승리는 없습니다.
하여 지혜롭고 현명한 이는
스스로를 위한 일을 살핍니다.
슬기롭기에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에
믿음을 심습니다.
신체와 언어와 정신으로
여법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칭찬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장명확)
부처님의 시의 주제 가운데 늙음과 죽음에 대한 것이 아주 많은 편이다. 염세적이어서가 아니라 늙음과 죽음이 그만큼 사람에게 비중이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늙음과 죽음의 문제는 얼핏 노년층에게만 해당되는 주제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늙음과 죽음은 매우 중요한 당면 과제이기에 그렇다.
사회가 복잡해지는 것과 비례해 예전에는 없었던 갖가지 사고들이 간단없이 일어나면서 언제 어느 때 죽음을 맞게 될지 모른다. 죽음이 반드시 늙음 다음차례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늙음의 문제 또한 남녀노소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이다. 젊은 층에서 늙지 않으려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 늙음을 늦추려 온갖 시도를 다하는 것을 보면 늙음의 문제가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오늘날 이른바 ‘안티-에이징’ 산업이 성황을 누리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고 할 것이다.
늙음과 죽음의 문제는 인류 역사에서 해결되지 않는 과제였다. 진시황이 늙지 않기 위해 불로초를 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한 바가지 떠먹을 때마다 젊어지는 샘물을 발견한 사람이 젊어지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어린 아기가 되었다는 전설은 젊음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쌍윳따니까야> 3:25 ‘산에 대한 비유의 경(Pabbatūpama Sutta)’에 등장한다. 이 경에서 부처님과 상가의 큰 지지자였던 빠쎄나디 국왕이 나눈 문답의 주제가 늙음과 죽음이었다.
[부처님] “대왕이여, 늙음과 죽음이 당신을 덮치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늙음과 죽음이 당신을 덮치고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빠쎄나디] “세존이시여, 늙음과 죽음이 덮치는데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로지 여법하게 살고 올바로 살고 착한 일을 하고 공덕을 쌓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어 빠쎄나디 왕은 권력의 도취에 몰두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전념하고, 나라에서 안정된 지배를 확보하고,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여 통치하는 왕족 출신의 왕에게는 코끼리 부대가 있더라도, 기마 부대가 있더라도, 전차 전투부대가 있더라고, 보병 전투부대가 있더라도, 뛰어난 책략이 있더라도, 막대한 재물이 있더라도 아무런 방도나 대책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빠쎄나디 왕의 독백과 같은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 연민의 마음으로 이 시를 읊으신 것이다.
- 시구 ‘늙음과 죽음은 중생을 덮칩니다.’에서 부처님은 ‘덮치는’ 모습을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바위산에 사방을 둘러싸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바위산이 마치 몸을 짓이기겠다는 듯 성큼성큼 밀려드는 것을 들으셨다. 선가에 은산철벽(銀山鐵壁)이라는 말이 있다. 은으로 만든 산, 철로 만든 벽으로, 앞길을 가로막혀 위로 날아갈 수도, 밑으로 땅을 파서 통과할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는 화두에 대한 의정이 빈틈없이 이어져 한 발자국도 옮겨갈 수 없는 절박하고 막막한 상태를 말한다. 은산철벽이 앞뒤좌우 사방을 가로막고 있으니 생각의 길이 철저하게 차단된 상태이고, 이 벽을 뚫고 나가야만 비로소 대자유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어 ‘덮치는’은 사방을 가로막은 바위산이 몸을 짓이길 듯 성큼성큼 틈을 줄여오는 두려움의 표현이다. 중생에게 늙음과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의미이다.
- 시구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에 믿음을 심습니다.’는 슬기로운 이가 믿고 의지할 귀의처는 삼보, 즉 부처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상가)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귀의의 대상은 불법승 삼보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시구 ‘신체와 언어와 정신으로 여법한 삶을 사는 사람’은 삼업, 즉 신구의(身口意)가 여법하다는 것은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마음으로 짓는 업이 청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신구의 삼업을 불교에서는 십악업(十惡業)이라 하고, 이와 반대되는 것을 십선업(十善業)이라고 한다.
- 시구 ‘이 세상에서 칭찬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기쁨을 누립니다.’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인간 세상에서는 칭찬을 받고, 죽어서는 그 공덕으로 하늘나라[천상계]에 태어나 큰 기쁨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천상계의 행복이라도 결국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을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