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켄뽀 아왕상뽀

(북인도 둑 다르마까라 승가대학 교수사/ 서울 성북구 캄따시링 센터장)

번역 및 정리 : 자홍스님 (캄따시링 법회 통역)

교정 : 캄따시링 역경원(지성남, 김지아)

아상가 논사의 탱화
 

자성 등의

여섯 가지 의미로 요약되니

계(界)는 3가지 경우로

3가지 명칭으로써 설해졌다. [1.48]

།ངོ་བོ་ཉིད་ལ་སོགས་པའི་དོན། །འདི་དྲུག་གིས་ནི་བསྡུས་པ་ཡི།

།ཁམས་ནི་གནས་སྐབས་གསུམ་དག་ཏུ། །མིང་གསུམ་གྱིས་ནི་བསྟན་པ་ཡིན།

"자성 등의 여섯 가지 의미로 요약되니"라고 하였다. '자성 등의 의미 여섯 가지 의미'는 이때까지 설명한 ①자성(自性, Tib. ngo bo nyid, Skt. svabhāva) ②인(因, Tib. rgyu, Skt. hetu) ③과(果, Tib. 'bras bu, Skt. phala) ④작용(業, Tib. las, Skt. karma) ⑤갖춤(相應, Tib. ldan pa, Skt. yoga) ⑥행입(行入, Tib. 'jugs pa, Skt. vṛtti)의 6상(六相)을 가리킨다. 『보성론』에 따르면 여래장에 대한 설명은 이상의 6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계(界)는 3가지 경우로 3가지 명칭으로써 설해졌다."라고 하였다. 양태에 따라 혹은 시간적으로 계(界)를 구분한다면 다시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1.47과 같이 ①부정(不淨) ②부정하면서 청정함 ③실로 청정함으로 나눌 수 있다. 다시 설명하자면, 부정은 범부의 심상속에 존재하는 여래장으로, 번뇌장과 소지장이 모두 청정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부정하면서 청정함은 보살의 마음에 있는 여래장을 가리킨다. 무명과 윤회의 뿌리는 단멸했기에 청정하지만 소지장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부정이다. 마지막으로 실로 청정함은 부처의 심상속에 있는 여래장·법계(法界)·법신(法身)이며, 번뇌장뿐만 아니라 소지장까지도 모두 제거하였기 때문에 실로 청정하다고 한다.

한 아이를 성장 단계에 따라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구분하듯, 여래장을 얼마나 정화했느냐의 상태도 이와 같이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객진의 염오가 전혀 정화되지 않았을 때는 부정으로 간주하고, 일부는 정화되었으며 일부는 그렇지 못한 경우에 일부는 부정이면서 일부는 청정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완전히 정화된 경우에는 실로 청정하다고 한다. 우리 범부는 현재 부정의 상태에 있지만, 도(道)를 익히고 수행을 하면, 부정하면서 청정한 상태가 된다. 마침내 심상속에 있는 여래장에서 객진의 염오가 완전히 제거되면, 비로소 실로 청정하게 된다.

세속유(世俗有)의 측면에서 본다면 진정한 평등(平等)은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물론 현대에는 다양한 사회 제도를 통해 과거 사회의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차별은 발생한다. 어째서인가? 세속이란 인간과 인간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성(法性)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 모든 유정(有情)에게는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다면 심자성(心自性)도 함께 내재한다. 마음이 있고 심자성이 내재한다는 점에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동등하다. 또한 심자성을 발현하기 위해 도(道)를 수행할 권한도 모두에게 동등하게 있다. 신분의 고하, 재물의 많고 적음, 재능의 좋고 나쁨은 상관이 없다. 누구라도 도를 닦는다면 마침내 성불할 수 있다. 능취(能取)와 소취(所取), 즉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분별이 모두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머문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다. 심자성(心自性)을 각자 스스로 탐색하고, 심자성 안에 머물러 진정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있다.

마치 무분별의 자성인

허공이 모든 곳에 두루하듯

마음의 자성인 무구의 영역은

마찬가지로 모든 곳에 두루하다. [1.49]

།ཇི་ལྟར་རྟོག་མེད་བདག་ཉིད་ཅན། །ནམ་མཁའ་ཀུན་ཏུ་རྗེས་སོང་ལྟར།

།སེམས་ཀྱི་རང་བཞིན་དྲི་མེད་དབྱིངས། །དེ་བཞིན་ཀུན་ཏུ་འགྲོ་བ་ཉིད།

1.49는 계(界)의 10상 중에 여덟 번째인 편재성(遍在性, Tib. kun tu 'gro ba'i don, Skt. sarvagatva)에 대해 설명한다. "마치 무분별의 자성인 허공이 모든 곳에 두루하듯"이라고 하였다. 허공은 차별도 분별도 없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 곳에 편재(遍在)한다. "마음의 자성인 무구의 영역은 마찬가지로 모든 곳에 두루하다."라고 하였다. '마음의 자성(心自性)인 무구(無垢)의 영역(Tib. sems kyi rang bzhin dri med dbyings)'이라는 표현은, 심자성(心自性)이 염오가 없는 무구(無垢)의 영역임을 의미한다.

사물이 있는 모든 곳에 허공이 편재하듯, 염오가 없는 무구한 심자성은 모든 유정에게 두루 존재한다. 특정 장소에서 그 안에 세워져 있던 건축물과 각종 사물을 모두 제거한다면 남은 자리에는 허공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허공이 모든 사물에 편재한다고 한다. 허공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속성을 지닌 모든 사물들, 특히 일체 유정(有情)의 심상속(心相續)에는 무구한 법계가 편재(遍在)하고 있다. 무구한 법계가 두루 존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왜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 객진(客塵)의 염오(染汚)가 장애하기 때문이다. 객진의 염오를 제거한다면, 마침내 이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객진의 염오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보성론』에서는 앞서 4가지 장애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 4가지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법에 대한 믿음, 지혜, 삼매, 연민을 제시했다.

그것의 공상(共相)은, 허물과

덕과 궁극에 편재하며,

색상(色相)의 하(下)와

중(中)과 최상(最上)에 있어서의 허공과 같다. [1.50]

།དེ་སྤྱིའི་མཚན་ཉིད་ཉེས་པ་དང་། །ཡོན་ཏན་མཐར་ཐུག་ཁྱབ་པ་སྟེ།

།གཟུགས་ཀྱི་རྣམ་པ་དམན་པ་དང་། །བར་མ་མཆོག་ལ་ནམ་མཁའ་བཞིན།

"그것의 공상(共相)은"이라고 하였다. 법계(法界)•법성(法性)은 모든 법의 '공통되는 상(共相, Tib. spyi mtshan, Skt. sāmānya-lakṣaṇa)'이고 성(性, Tib. ngo bo, Skt. bhāva)이다. "허물과 덕과 궁극에 편재하며,"라고 하였다. 범부유정은 허물이 있으므로 계(界)가 없다든가, 보살과 부처는 덕이 많으므로 계(界)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객진(客塵)의 허물에 가려져 있는 유정에게도, 많은 덕(德)을 갖춘 보살에게도, 그리고 부처를 가리키는 '궁극(Tib. mthar thug)'에게도, 이 계(界)는 차별 없이 두루 존재한다.

지금 우리 법회에서는 매주 『보성론』을 모든 참가자들에게 동등하게 강설한다. 청중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다. 그러나 참여자들 중에는 이 기회를 포착하여 자신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고 경론 공부에 매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귀찮다고 여기며 별로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시간 낭비라고 여기며 아예 무관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달되는 내용은 동일하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주체의 측면에서는 차별이 생겨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래장(如來藏) 자체로는 어떠한 차별도 없고 편재하다. 그러나 여래장이 편재하는 그 존재들에게는 그들이 여래장을 인식할 수 있는가 활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차별이 발생한다.

"색상(色相)의 하(下)와 중(中)과 최상(最上)에 있어서의 허공과 같다."라고 하였다. 색법(色法)의 예로, 쇠그릇과 놋그릇과 금그릇이라는 3종류의 그릇이 있다고 하자. 쇠와 놋과 금의 3종류의 그릇 내부에 있는 허공에는 차별이 없다. 3종류의 그릇에 허공은 차별 없이 동등하게 존재한다. 쇠그릇 안의 허공, 놋그릇 안의 허공, 금그릇 안의 허공은 모두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중생, 보살, 부처 모두에게 있는 계(界)는 차별이 없다. 계는 그들 모두에 편재한다.

허물이 객진(客塵)과 함께하고

덕(德)은 자성(自性)으로 존재하기에

전과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불변(不變)하는 법성이다. [1.51]

།ཉེས་པ་གློ་བུར་དང་ལྡན་དང་། །ཡོན་ཏན་རང་བཞིན་ཉིད་ལྡན་ཕྱིར།

།ཇི་ལྟར་སྔར་བཞིན་ཕྱིས་དེ་བཞིན། །འགྱུར་བ་མེད་པའི་ཆོས་ཉིད་དོ།

심자성(心自性)·계(界)·여래장(如來藏)은 불변(不變)이다. 만약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자성(自性)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변화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인 확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성은 시간·공간적으로 결코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세속법의 전도된 환상(幻相)이 모두 사라지면 승의(勝義)의 법성이 드러난다. 사물의 법성(法性)과 우리 자신의 자성(自性)은 별개의 것이 아니므로, 불변의 자성을 깨닫고 그것을 발현하면, 우리도 불변의 존재가 된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범부 중생일 때의 여래장은 부정(不淨)한 것이다. 보살일 때는 부정하면서 청정하다. 부처일 때는 완전히 실로 청정하다. 부정, 부정이면서 청정, 실로 청정한 것으로 변화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불변일 수 있겠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변이 1.51이다.

"허물이 객진(客塵)과 함께하고"라고 하였다. 허물(Tib. nyes pa)이란 객진(客塵)의 번뇌와 업을 가리킨다. 번뇌와 업은 모두 객진이므로 시시때때로 생하고 멸한다. "덕(德)은 자성(自性)으로 존재하기에"라고 하였다. 객진의 허물이 모두 제거되면 덕(德)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덕들도 없던 것이 새롭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덕들은 본래부터 자성(自性)으로 존재하던 것이며, 다만 이전에는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허공 중에 태양이 빛나고 있더라도, 구름과 안개가 가리면 태양의 빛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객진의 구름과 안개가 사라지면, 비로소 태양의 찬란함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객진의 구름과 안개에 덮여있을 시점의 태양과,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난 뒤의 태양 간에는 어떠한 차이도 변화도 없다. 다만 가리는 주체인 구름과 안개가 있고 없음의 차별이 있을 뿐, 본래 있던 태양의 빛과 밝음에는 어떠한 차별도 생겨난 바가 없다. 그러므로 "전과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불변(不變)의 법성이다."라고 하였다. 법성(法性)은 이전에 범부였을 때 존재하던 그대로, 부처가 된 후에도 그대로 변함없이 존재한다.

마치 허공이 편재(遍在)하고

미세하기에 허물에 오염됨이 없듯이

마찬가지로 일체유정에게

머무는 이것은 허물에 오염됨이 없다. [1.52]

།ཇི་ལྟར་ནམ་མཁའ་ཀུན་སོང་བ། །ཕྲ་ཕྱིར་ཉེ་བར་གོས་པ་མེད།

།དེ་བཞིན་སེམས་ཅན་ཐམས་ཅད་ལ། །གནས་འདི་ཉེ་བར་གོས་པ་མེད།

"마치 허공이 편재(遍在)하고 미세하기에 허물에 오염됨이 없듯이"라고 하였다. 허공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편재한다. 허공은 지극히 미세하므로, 조대(粗大)한 사물들의 생멸은 허공에 일말의 영향도 주지 못한다. 사물이 무수하게 생겨나고 소멸한들, 편재하는 미세한 허공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일체유정에게 머무는 이것은 허물에 오염됨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여래장을 의미한다. 심자성은 허공이 일체 사물에 그러하듯 일체 유정에게 편재한데, 유정에게 있는 객진의 탐진치 등의 번뇌와 업의 허물은 이 심자성(心自性)을 조금도 오염시키지 못한다.

마치 일체세간(一切世間)이

허공에서 생겨나고 멸하듯

마찬가지로 무위(無爲)의 계(界)에서

근(根)들이 생멸한다. [1.53]

།ཇི་ལྟར་འཇིག་རྟེན་ཐམས་ཅད་དུ། །ནམ་མཁའ་ལ་ནི་སྐྱེ་ཞིང་འཇིག

།དེ་བཞིན་འདུས་མ་བྱས་དབྱིངས་ལ། །དབང་པོ་རྣམས་ནི་སྐྱེ་ཞིང་འཇིག

"마치 일체세간(一切世間)이 허공에서 생겨나고 멸하듯"이이라고 하였다. 텅 빈 허공에서 이 세상과 그 안의 생명체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는지 예로부터 다양한 학설이 있어왔다. 고대 종교에는 창조주가 있어서 신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또 어떤 특별한 근원적인 힘이 있어서 그 에너지에서 모든 것이 나왔다고도 한다. 현대에도 과학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이 세상에서 돌아다니는 온갖 동물들, 초목들, 사람 등의 유정세간(有情世間)과 그들이 거주하는 여러 기세간(器世間)의 영역들, 이 모두는 텅 빈 허공의 영역 안에서 생겨나고 유지되다가 다시 텅 빈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이러한 생성과 유지와 소멸이 유정세간과 기세간의 양상이다. "마찬가지로 무위(無爲)의 계(界)에서 근(根)들이 생멸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마찬가지로'라고 한 것은, 내면에서 마음이 생멸하는 양상도 기세간과 유정세간이 허공에서 생멸하는 양태와 유사하다는 의미이다. '무위(無爲)의 계(界)'는 심자성(心自性)·여래장을 가리킨다. '근(根)'은 갖가지 인식의 작용을 의미한다. 허공에서 일체세간이 생겨나고 머무르고 소멸되듯, 심자성으로부터 식(識)과 근(根)의 여러 양상이 생겨나며, 식과 근 등이 소멸할 때도 다시 심자성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심자성(心自性)이 청정하고 어떠한 염오도 본래 없는 것이라면, 그 안에서 객진의 여러 마음 작용과 착란상(錯亂相)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여기에 대한 불교의 설명은 일견 난해하다. 교리 일반에서는 다만 마음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면 전도(轉倒)되며, 전도되면 윤회가 생겨난다. 그리고 마음의 본성을 모르면 윤회이고, 마음의 본성을 알면 열반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혹자는 다시 물을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과 끝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마음의 시작이고 무엇이 그 끝인가? 시작이 없다면, 이 마음은 최초에 어떻게 전도된 것인가?' 불교 교리에서는 답한다. 마음에는 시작이 없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음에 이 마음이 전도되었는지에 관해서는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온갖 감정, 생각, 경험이 이 마음속에서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마음으로 이 마음을 꾸준히 관찰하면, 온갖 감정, 생각, 경험의 분별은 모두 마음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질 따름이다.

어떤 이들은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야만 마음의 본성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고, 종교적인 믿음은 너무 막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변적인 분석만으로는 마음의 본성을 상상하여 장황하게 설명할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아무리 복잡한 설명을 한들 그 설명이 불완전할 뿐이다. 많은 경론을 오랫동안 공부하여 현밀(顯密)의 온갖 학과(學科)에 해박하더라도, 심자성(心自性)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설명을 한들 그 설명은 '맛이 없는' 말라붙은 설명일 뿐이다. 반면에 마하무드라(Tib. phyag rgya chen po, Skt. mahāmudrā, 大手印)나 족첸(Tib. rdzogs chen, Skt. Mahāsaṅdhi, 大圓滿)을 오랫동안 닦아온 수행자들은, 심자성에 대한 그들의 설명이 정교하고 복잡하지는 않을지언정, 가르침을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다. 희론(戱論)을 떠난 자성을 깨닫는 방법은 무엇인가? 마음 자신이 희론을 떠나야 한다. 마음의 분별들이 모두 심자성 속으로 흡수되면 마음과 자성(自性)이 하나가 되고, 마음이 희론을 떠나면, 곧 법계(法界)를 깨닫는다.

본성을 알고자 한다면, 마하무드라와 족첸 등에서 가르치듯 강력한 확신과 헌신이 있어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마음을 닦아야 한다. 법(法)의 전통을 향한 헌신과 공경이 있으며 청정관(淸淨觀, Tib. dag snang)을 닦는 이는, 마음에 어떠한 난관이 닥쳐오더라도 헌신과 확신, 스승을 향한 기도의 힘에 의지할 수 있다. 마침내 헌신과 공경, 청정관 등의 힘을 통해 마음속에 발생한 조대(粗大)한 온갖 분별이 가라앉아 사라지면, 이제 마음이 미세한 영역에 머물게 된다. 미세한 영역에 머무른 다음에야 비로소 마음속에서 실제로 체험하여 제대로 알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관하기에 앞서, 만약 불법(佛法), 스승, 마음의 본성에 대한 열의와 헌신을 갖추지 못한다면, 마음으로 마음을 관(觀)하는 일 자체도 그다지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설사 관(觀)하더라도 큰 위력을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질문 : 심류학(心類學, Tib. blo rig, 티베트불교학에서의 심리철학)의 개념들과 마하무드라의 가르침을 연관시켜도 괜찮을까요?

켄뽀 : 심류학의 개념들과 마하무드라 수행을 연관해 본다면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접근이 가능하다. 마하무드라의 가르침에서는 '평범한 인식(Tib. tha mal pa'i shes pa)을 지(智, Tib. yes shes)로 드러낸다.'라고 하였다. 티베트불교의 교과 과정에서 심류학은 기초적인 분야로 간주되지만, 심류학에서 제시하는 주요 개념인 무분별(無分別, Tib. rtog med), 자증(自證, Tib, rang rig) 같은 식(識)의 평범한 양상과 개념들도, 심화한다면 마하무드라 수행의 가르침 속에서 더욱 깊은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

허공이 화염들에 의해

이전에 결코 불탄 적이 없듯

마찬가지로 이것은 죽음과

아픔과 늙음의 불에 타지 않는다. [1.54]

།ཇི་ལྟར་ནམ་མཁའ་མེ་རྣམས་ཀྱིས། །སྔོན་ཆད་ནམ་ཡང་ཚིག་པ་མེད།

།དེ་བཞིན་འདི་ནི་འཆི་བ་དང་། །ན་དང་རྒ་བའི་མེས་མི་འཚིག

"허공이 화염들에 의해 이전에 결코 불탄 적이 없듯"이라고 하였다. 이 세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아비다르마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 허공이 있고 허공에 풍(風)이 생성되었다. 그다음 풍 위에 비가 내리며, 비가 바람으로 인해 응결되어 지(地)를 형성한다. 대지 위로, 천상으로부터 중생들이 내려와 순차적으로 생겨난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 세간이 소멸할 때는 어떻게 되는가? 칠화(七火, Tib. me bdun)와 일수(一水, Tib. chu gcig)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풍(風)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한다. 먼저 지금 우리가 보는 태양의 열기의 7배에 달하는 불길이 일어나고 그 열기가 모든 사물을 불태운다. 모든 것이 불타서 먼지가 되면, 그 위로 엄청난 비가 내려서 그 모든 먼지를 씻어낸다. 그리고 나머지도 모두 풍(風)에 의해 제거되어 최종적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세간이 의지하고 있는 허공은 이 세간이 생겨나고 유지되고 소멸되는 와중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멸망의 불이 엄청난들 허공에는 조금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죽음과 아픔과 늙음의 불에 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중생에게는 죽음, 아픔, 늙음의 불길과도 같은 고통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본성에는 조금의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이 마음이 만들어낸 온갖 법(法)들은 생겨나고 머무르고 소멸한다. 그러나 심자성(心自性)에는 생겨남도 머무름도 소멸함도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