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의 입                          

(삽화 정윤경)

 아난다는 자신이 본 대로 붓다의 모습을 자신의 입으로 재현했다. 그림을 그리어 보여주듯 아주 자세하게 5백 명 장로들에게 전했다. 5백 명 장로들은 마치 붓다가 환생하여 앞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으므로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동굴에 공명한 아난다의 음성은 아난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천계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탁발에서 돌아와 공양을 마치신 다음

 스승께서는 발우와 상의를 정리하시고

 두 발을 씻으시고

 준비된 자리에 가부좌를 하고는

 몸을 곧게 펴고

 정신을 집중하고 앉으셨다.>

 아난다는 붓다의 행동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해주려고 했다. 붓다는 허투루 하는 행동이 단 한 가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날마다 반복하는 행동이라도 아무 의식 없이 행동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했다. 거룩한 대상을 대하듯 온 마음으로 움직였다. 그러한 붓다의 모습을 25년 동안 지켜본 아난다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붓다의 모습이라도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볼 때마다 신성하고 아름다웠다. 붓다의 언행에서는 백련 같은 향기가 났다.   

 발우에 든 음식물을 공양하는 모습도, 발우와 가사를 치우는 모습도, 흙 묻은 발을 씻는 모습도, 자리에서 가부좌를 트는 모습도, 몸을 곧추세우고 앞쪽에 주의를 집중하는 모습도 동작 하나하나가 아난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치 백련 한 송이가 서서히 꽃잎을 펴는 것과도 같았다. 아난다는 5백 명의 장로들에게 붓다의 말씀을 전해주기 전에 먼저 붓다의 향기를 전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처음부터 아난다가 붓다의 모습에서 진리의 향기를 맡은 것은 아니었다. 갓 출가했을 때, 수다원의 흐름에 들기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다. 붓다 안의 붓다를 보지 못했다. 붓다도 일상생활에서는 자신과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붓다는 무엇을 할 때 온 마음이 오롯이 거기에 있었지만 아난다는 그 반대였다. 공양은 때가 돼서 할 뿐이었고, 손은 발우를 들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었다. 몸과 마음은 따로따로였다. 가사를 입을 때도 벗을 때도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었다. 붓다는 왜 낡은 가사를 새것으로 바꾸지 않고 계속 입을까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붓다처럼 하나로 집중해 있을 때가 드물었다. 그러니 순간순간의 마음은 충만하지 못하고 허전했다. 

 아난다는 수다원의 흐름에 들어섰을 때에야 지나간 시간을 뉘우쳤다. 

 ‘아, 나는 나로 살겠다고 출가했지만 온전한 나로 살지 않았구나. 내 마음은 바람둥이처럼 이리저리 방황했고 나는 그 마음에 끌려 다녔구나. 가사를 입을 때나, 탁발을 할 때나, 공양을 할 때나, 스승의 설법을 들을 때나, 벗들과 얘기할 때나, 목욕을 할 때나, 잠을 잘 때나 무슨 행동을 하든 나는 내 마음과 함께 있어야만 나를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있었지 않을까?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에게 무례한 사람이었어. 붓다를 보라. 붓다는 가사를 입을 때 가사를 온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가. 공양할 때 공양물을 온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가. 설법할 때는 제자들을 온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가.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잠을 온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가. 그러니 붓다는 오롯이 온전한 붓다인 것이다.’ 

 아난다가 붓다를 10년쯤 시봉했을 때였다. 아난다는 처음으로 붓다가 잠자는 모습을 호기심이 솟구쳐 유심히 살펴보았던 것이다. 붓다는 밤새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한 자세에서 오른손은 오른뺨을 살짝 바치고 있고, 왼손은 엉덩이 위에 가볍게 얹어 놓았으며 두 다리를 가지런히 뻗은 채 두 발을 서로 나란히 포갠 모습이었다. 그 자세는 새벽 별이 빛날 때까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난다는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자는 아난다와 달리 붓다는 시종 같은 자세로 잤다. 아난다는 붓다의 잠자는 모습이 놀라웠다. 붓다는 처음 그 자세대로였다. 손과 등과 다리와 발의 위치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난다는 붓다의 마음이 자고 있는 당신의 몸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단 한 번이라도 뒤척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몸은 자고 있지만 마음이 깨어 있으므로 그런 자세가 가능할 것 같았다. 어느 날 아난다는 참지 못하고 붓다에게 물었다.

 “한밤중에 스승님의 주무시는 모습을 살피는 것이 무례한 일인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스승님의 모습이 신기해서 여러 번이나 살펴보았습니다. 스승님은 저에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밤새 단 한 번도 자세가 흐트러진 일이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아난다여, 나는 열반할 때까지도 그런 자세로 잠을 잘 것 같은데.”

 “평생 동안 어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아난다여, 붓다가 아니라도 보살이 되어 마음의 주인만 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저는 스승님께서 밤에 주무시는 것인지, 깨어 계시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붓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 마음은 항상 몸의 변화를 보고 있느니라. 잠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일 뿐이니라. 잠이 몸의 눈꺼풀에서 시작해서 머리로 가고 팔다리로 내려가는 것을 마음이 보고 있으니 어찌 마음으로 정한 자세가 흐트러지겠느냐. 숙면 중에도, 꿈꾸는 중에도 매순간 마음이 깨어 있는 보살이 된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니라. 붓다가 항상 깨어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니라.” 

 아난다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은 바람이 나뭇잎을 부드럽게 깨우는 것처럼 계속 이어졌다. 아난다의 입이 마술을 부리는 듯했다. 아난다의 입을 주시하고 있던 5백 명의 장로들은 주술에 걸린 듯 황홀한 표정들이었다. 이윽고 5백 명의 장로들은 아난다가 붓다께서 <금강경>을 설하게 된 인연의 서두를 끝내자, 모두가 합송으로 화답했다. 5백 명 장로들이 합송하는 소리가 동굴 안에서 라자가하 허공으로 우렁우렁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그때에 많은 수행승들이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까이 왔다.

 그들은 스승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존경을 표하고는

 스승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다음에

 한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1,250명의 비구들은 기러기 떼처럼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오면 붓다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뒤 붓다의 주변을 자연의 순리대로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다음에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붓다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며 붓다를 ‘찬탄하옵니다.’라는 예를 표했다. 물론 붓다는 그러한 예를 받고자 기대한 적이 없었고, 더구나 요청한 일도 없었다. 붓다는 사밧티의 거친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설법을 청해도 자애롭게 들어주어 왔을 뿐이었다.

 어쩌면 붓다에 대한 예의는 비구들이 자신을 위해 취하는 태도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경의를 표하고 나면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더 우러나오곤 했던 것이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자신의 머리를 낮추면서 드러내는 동안 자신의 마음이 백지처럼 순수해져 붓다가 설법한 바를 오롯이 다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