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적사 1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한눈에 육도를 보았습니다
남양주시 와부읍에서 가평 쪽으로 향한 지방도로를 벗어나 묘적사로 가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접어든 길 어귀에 많았던 작은 공장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 올라가고 내려오는 차가 서로 눈치껏 비켜주고 터주어야 다닐 수 있는 좁은 외길로 바뀌었습니다. 생뚱맞게 많은 길이 이런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먼저 가고 싶겠지만 통행 횟수가 늘어나면서 참을성이 많아져 양보하고, 베풀 줄 아는 마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드는 때여서 나뭇잎은 무성했고 숲도 깊어졌습니다. 도로와 붙어있는 계곡이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건너는 다리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다리를 건넌 쪽에는 산세 좋은 곳을 찾아 건축된 별장과 카페나 음식점이 들어섰습니다.
조선시대 소치 허련이 그린 「고사관폭도」
옛 조상님들이 계곡에서 더위를 피하고, 천렵을 즐기는 모습을 그려낸 수묵화가 많음을 보면, 계곡을 따라 즐비한 고깃집을 탓할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땀 흘리면서 일해야 생계유지를 하는 사람이 보이는가 하면 남부럽게 즐기면서 사는 사람도 보이고, 잠깐을 참으면 될 일을 서로 비키라며 싸우는 사람도 보이고, 숯불에 익어가는 고기 냄새가 풍기는 곳도 지나쳤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여기가 인간만 존재하는 인간세계가 아니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의 세계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집
초행길이지만 길을 가르쳐주는 목소리를 좇아서 묘적사에 도착하였습니다.
묘적사에는 일주문이 없습니다. 집을 나올 때 마음속에 묘적사만 담고 왔는데, 무슨 산에 있는 무슨 절이라는 문패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여기까지 올라오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추려냈고 (모두 지키지는 못하겠지만) 번뇌도 털어냈으니, ‘일주문을 굳이 세울 필요가 없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차장 바로 앞에 묘적사로 들어서는 곳임을 알려주는 무영루(無影樓)가 있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집이란 뜻입니다. 버젓하게 형태가 있는 집인데, 그림자가 없는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영루
1층이 일곱 칸, 2층은 다섯 칸씩이나 되는 커다란 집에 “무영루”라는 현판을 걸어놓은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는 자이며,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자이며, 사실과 어긋나지 않게 말하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입니다. 누각의 이름을 무영루라 지은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고, 옳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생각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무영루라는 이름은 붙인 이유로, 가끔 염송하는 반야심경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
퍼뜩 ‘원래부터 공(空)인 누각에서 그림자를 찾지 마라. 실체를 보아야 한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살 한 분께서 무영루 앞에서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계셨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집을 보고, 고양이를 보는 순간 경허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됐다 사라졌습니다.
‘고양이가 쥐 잡듯 항상 마음을 한 군데 두면 결국에는 필경 마음을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니, 부디 신심을 내어 공부할지니라.’
사천왕 탱화
무영루에 들어서 좌우에 걸린 탱화를 보고 무영루가 사천왕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탱화 화기(畵記)에는 천왕 탱화를 4점을 한 분의 금어(金魚)가 그렸고, 불심 깊은 시주의 보시로 불기 2555년(서기 2011년)에 봉안되었음이 쓰였습니다.
탱화로 봉안된 사천왕
이제까지 목조 또는 진흙으로 빚은 소조상을 보다가 탱화를 보니, 사천왕의 새로운 위신력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목조나 소조상으로 빚어진 사천왕과 탱화로 그려진 사천왕의 다른 점에 흥취가 돋아났습니다.
목조나 소조상의 경우 사천왕이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천신임에도 땅 위에 서거나 앉아서, 악귀를 밟아 제압하는 형태로 봉안되었습니다. 그런데 탱화에는 그와 다르게 허공에 떠서 천의를 날리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는 천왕이 하늘 위에서 세간의 선악을 살피는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것처럼 그린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조상이 상당히 큰 형태로 제작되어 천왕문에 들어선 불자를 부라린 눈으로 내려보며 악한 마음을 씻어내기를 강요(?) 한다면, 탱화의 사천왕은 자기가 맡고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눈동자가 위쪽을 향한 천왕을 보고 ‘북쪽의 불자를 보호해 주는 다문천왕이구나!’를 알 수 있고, 아래쪽을 보는 천왕을 보고는 ‘남쪽의 불법을 수호해 주는 증장천왕이구나!’를 외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묘적사 팔각다층석탑
무영루를 통과하니 절 마당 정면에 다층석탑, 왼쪽에는 임시 대웅전이 보였습니다. 1기의 탑을 두는 사찰은 문과 탑, 대웅전이 일직선에 놓이는 형식을 취하기에, 어떤 사유로 인해 탑 좌측에 임시 대웅전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석탑 뒤쪽은 대웅전 터가 맞았고, 대웅전을 짓기 위한 불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지반을 다진 터 위에 놓인 초석으로 기둥의 굵기를 짐작할 수 있고, 기둥 간격으로 대웅전 모양과 집의 크기를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언제 다시 방문하여 대웅전을 보면서 예전에 추측했던 것이 맞는가 보아야겠습니다.
대웅전을 조성하면서 발생하는 먼지와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석탑은 임시 구조물을 세웠는데, 앞면만 열어놓았습니다.
남양주 묘적사 팔각다층석탑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탑입니다. 전체 형태는 아무런 새김이 없는 평편한 지대석과 2층의 기단 그리고 7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기단부
지대석 바로 위쪽 기단(하대석)은 각 면에 두 개의 사각형 틀 안에 안상을 새겼습니다. “안상”은 코끼리를 정면에서 보았을 때의 눈 모양을 표현한 것이라거나 활짝 핀 연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코끼리와 연꽃은 불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길상입니다.
상대석 기단은 한 덩이의 큰 암석을 받침, 중석, 갑석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다듬어 냈습니다. 받침은 또다시 세 층으로 구분했는데 아래층엔 한 면에 두 개의 안상을, 중간층에는 세 개의 안상을, 그 위층에는 활짝 핀 연꽃잎 끝이 아래쪽을 향한 복련을 새겼습니다.
중석은 각 면이 만나는 모서리에 굵은 기둥(우주)을 세웠고, 각 면에는 안상을 크게 새겼습니다.
탑신을 받아주는 갑석에는 연꽃잎 끝이 위로 향한 모양(위로 받드는 모양)의 무늬를 새겨놓아 부처님을 존중하고 공경한다는 뜻을 나타냈고, 그 윗부분에 안상을 새겼습니다.
탑신부
탑신부는 7층으로 각층은 면석과 옥개석을 각각 한 덩이 암석으로 만들었습니다. 면석의 8개 모서리에는 우주를 돌출시켰고, 우주 사이의 각 면에는 상하 인방과 좌우 벽선을 새겨 밋밋함을 없앴습니다.
옥개석은 한옥 지붕을 나타내는 내림마루와 하늘로 치켜 올라간 곡선을 깎아냈고, 처마 아래를 3단으로 깎아내며 좁혀서 한옥의 평방과 창방을 표현하였습니다.
내림마루 아래쪽에 추녀를 새겼고, 추녀 좌우에는 한옥을 멋지게 꾸미려고 익공을 짜 올리듯 익공 두 개를 조각해서 보는 재미를 붙였습니다.
옥개석 추녀 끝자락에는 여섯 면을 가진 풍경을 걸었는데, 풍경은 최근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풍경을 걸 수 있는 구멍은 유형문화재인 사유로 최근에 뚫은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있었을 것입니다.
상륜부에 복발만 살짝 보이는데, 그 윗부분은 멸실되어 없어졌는가 봅니다.
탑 전체의 형태가 신라와 고려시대 탑보다 꾸밈이 적지만 단순함을 추구한 아름다운 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