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의 비유
(삽화 정윤경)
칠엽굴에는 도마뱀과 박쥐들이 살았다. 박쥐들은 해가 뜨면 동굴 안쪽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낮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도마뱀들은 박쥐와 달리 햇살이 비칠 때가 되면 동굴 입구 쪽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햇볕에 축축한 몸을 말리기 위해서 그랬다. 아난다가 서 있는 곳의 동굴 천정에도 도마뱀 두세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아난다는 도마뱀이 머리 위 천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기원정사에 있을 때 같으면 놀라서 자리를 피했을 것이었다. 그런 아난다의 마음을 마하깟사빠는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애숭이 아난다가 이제 장로가 된 것이 분명하군.’
마하깟사빠는 여전히 아난다를 ‘애숭이’로 보았다. 마하깟사빠는 기원정사에 있을 때부터 초보자를 ‘애숭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마하깟사빠는 예전 같이 아난다를 보지는 않았다. 기원정사에서 함께 살 때는 아난다가 수다원의 흐름에 있었지만 지금은 아난다 역시 아라한, 즉 장로 중에 한 사람이었다. 마하깟사빠가 아난다를 지금도 애숭이라고 부른 것은 ‘초보 아라한’이라는 말이었다.
아난다는 분명 아라한의 경지에 들어 있었다. 동굴 천정에 붙어 있던 도마뱀이 아난다의 경지를 증명했다. 아난다의 입을 주시하던 5백 명 장로들 중에 일부가 술렁였다. 도마뱀 한 마리가 아난다의 머리에 떨어진 것이었다. 도마뱀은 아난다의 정수리에서 한참 동안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다가 아난다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를 다시 말할 때쯤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도마뱀은 정수리에서 오른쪽 귀로 다가갔다가 목덜미를 타고 어깨로 가서 쉬었다. 수부띠는 아난다의 어깨에 있는 도마뱀을 보면서 아난다의 입을 주시했다.
<어째서 그런가? 수부띠여,
이들 구도자인 보살들에게는 자아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존재한다는 생각도, 영혼이라는 생각도,
개아(個我)라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부띠는 아! 하고 감탄을 했다. 붓다의 말이 지금 아난다에게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난다는 지금 자아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존재한다는 생각도, 개체라는 생각도, 개인이라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도마뱀이 저러고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도마뱀이 자신의 몸에 붙어 기어 다니는데도 가만히 있기란 불가능할 것이었다. 도마뱀 역시 아난다에게 어떤 생각이 일어났다면 이미 도망쳐 버렸을 터였다. 아무리 힘없는 미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어떤 생각을 품고 있다면 살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도망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난다는 언젠가 스승 붓다가 수닷따 장자에게 설한 ‘자아’를 기억했다. 붓다는 기원정사에서 수닷따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중생들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거기에 없다.’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고 착각하게 하는 오온만 있을 뿐이니까. 어찌 오온을 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온을 고정된 나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나 역시 공(空)일뿐이다.”
아난다는 또 언젠가 스승 붓다가 수닷따 장자에게 설한 ‘존재’를 기억했다. 붓다는 기원정사에서 수닷따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중생들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자신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사람으로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어린아이일 때나 청년이 된 지금이나 노인이 되는 먼 훗날이나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존재는 매 순간 변하므로 매 순간 다르다고 보아야 옳다. 나는 매순간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같은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변하는데 어찌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어제 보았던 강물이 오늘 본 강물과 같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강물은 영원히 같은 강물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난다는 또 언젠가 스승 붓다가 수닷따 장자에게 설한 ‘영혼’을 기억했다. 붓다는 기원정사에서 수닷따 장자에게 이렇게 설했던 것이다.
“중생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가 있고, 그 자아 안에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초월적인 자아, 즉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영혼을 참나(眞我)라고도 한다. 그러나 자아 안에 어떤 힘을 발휘하는 영혼이 있을까? 없다. 거기에는 무(無)가 있을 뿐이다.”
아난다는 또 언젠가 스승 붓다가 수닷따 장자에게 설한 ‘개아’를 기억했다. 붓다는 기원정사에서 수닷따 장자에게 이렇게 설했던 것이다.
“개아란 바라문이 말하는 아트만이니라. 그들은 아트만을 최고아(最高我)로 보니라. 윤회를 하면서 전전하는 영원한 실체가 바로 아트만이라고 보는 것이다. 여래는 그것을 개아(個我)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래는 윤회 속에서 개아는 없다고 본다. 자아도 없다. 영혼도 없다. 존재도 없다. 오직 공성(空性)만 있을 뿐이니라.”
아난다는 도마뱀을 의식하지 않고 계속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를 암송했다.
<또 수부띠여, 이들 구도자인 보살들에게는
‘물건이라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마찬가지로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수부띠여, 그들에게는 생각한다는 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가? 수부띠여,
이들 구도자인 보살들에게 ‘물건이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면
그들에게는 그 자아에 대한 집착이 있을 것이며,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 개체에 대한 집착,
개인에 대한 집착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면,
그들에게는 그 자아에 대한 집착이 있을 것이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 개체에 대한 집착,
개인에 대한 집착이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가? 또한 수부띠여,
구도자인 보살들은 법이라는 인식이 없으며,
법 아닌 것이라는 인식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이와 같은 뜻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뗏목의 비유를 아는 자는
법조차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법 아닌 것에 있어서랴.’ >
뗏목의 비유를 아는 자란 5백 장로들 모두를 뜻했다. 적어도 그들은 붓다가 설한 뗏목의 비유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아난다도 모르지 않았다. 기원정사 간다꾸띠에서 똑똑히 들었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소유하여 가질 목적이 아닌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인 뗏목에 비유한 가르침을 그대들에게 설하겠다. 어떤 사람이 긴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크고 깊고 넓은 강물을 만났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있는 쪽은 두렵고 위험한 반면 건너편 언덕은 안전하고 위험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저 쪽으로 건너는 다리도 배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편 언덕은 안전하다. 그런데 건널 다리도 배도 없다. 그러니 갈대, 나무 막대기, 나뭇가지, 나뭇잎들을 모아 뗏목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의 힘으로 저쪽 언덕으로 안전하게 건너가면 어떨까?’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하여 강을 건널 것이다. 강을 건너 저쪽 언덕에 도착하여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의 힘으로 저쪽 언덕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러니 이제 나는 이 뗏목을 머리에 이든지 어깨에 짊어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어떨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그가 취하여야 할 뗏목에 대한 바른 태도인가?
‘아닙니다. 스승님.’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 뗏목에 대한 바른 태도인가? 강을 건너 저쪽 언덕에 도착한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의 힘으로 저쪽 언덕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이제 이 뗏목을 마른땅으로 끌어올려 두든지 아니면 물속에 침수시키고 내 갈 길을 가면 어떨까?’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해야 할 뗏목에 대한 바른 태도이니라.
나는 그대들에게 소유하여 가질 목적이 아닌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인 뗏목에 비유한 가르침을 설하였다. 가르침이 뗏목과 비슷함을 안다면, 좋은 것(법)에 집착하는 것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나쁜 것(비법)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니라.”>
아난다가 ‘법조차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법 아닌 것에 있어서랴.’를 말하고 난 뒤에야 도마뱀은 동굴 바닥으로 내려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