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저수지 옆 동도사(東度寺)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용인시 남쪽에 있는 이동저수지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망자가 묻히기에는 용인 땅이 ‘명당’이라는 뜻일 것인데, 지금은 살아가기에도 좋은지 거주 인구가 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도농복합시”라는 명칭을 가진 용인시는 그에 걸맞게 큰 저수지 “이동저수지”를 갖고 있습니다. 

넓은 이동저수지가 차지한 땅 대부분은 북쪽에서 흘러온 송정천과 동쪽에서 흘러온 진위천 상류가 만나는 “어비리”입니다. 흘러내리는 실개천이 합쳐지는 곳이기에 민물고기가 많이 모여들고, 모여든 고기는 살기 좋으니만큼 살이 쪘을 겁니다. 그리하여 ‘고기가 살찌는 동네’라는 뜻으로 어비리(魚肥里)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추측합니다.

이동저수지는 산과 어울려 시원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흘러드는 물에서 살찐 고기를 잡을 수 있고, 농사짓기도 부족함이 없어서 모여 살기도 좋은 곳이었을 겁니다. 그런 동네에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금단사(金丹寺)라는 절이 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면서 폐사되었습니다. 

저수지 길가에 세워진 “원어비동유적지영세불망비(元魚肥洞遺蹟地永世不忘碑)”에는 ‘왜군에 의해 유실 폐사된 이후 어비리 동리 주민들이 불상, 석탑, 석등을 수습하여 법당을 짓고 어비울절로 명명하여 대대손손 동리 사찰로 이어 왔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평화스러운 삶이 다시 시작된 시기는 정법과 상법시대를 지나, 사람들의 근기가 낮아져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자는 없고 가르침도 행해지지 않는다는 “말법(末法)의 시대”에 들어가는 때입니다. 그런 때에 불심 깊은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공양하는 마음이 담긴 유물을 갈무리했고, 이를 존경스러운 어비리 주민들이 오랫동안 곱게 유지해 온 듯합니다.

수몰을 앞두고 고향을 떠나는 어비리 주민들이 우애와 단결을 잊지 말자는 영세불망비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식량 자급을 위해 전국 곳곳에 저수지를 조성하였는데, 어비리는 큰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지형적인 이유로 수몰을 피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경기도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이동저수지가 됩니다.

절 입구에 세워진 차장업(車壯業) 거사 공덕비에는 ‘어비리사지(寺址)까지의 많은 땅이 수몰될 지경에 이르는데, 지역 주민 차장업 거사가 사재를 털어 불상과 석탑 석등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동도사를 개산 창건하였다’라고 쓰여있습니다. 

동도사는 이동저수지의 남쪽 가장자리인 지방도와 맞닿았고, 맞닿은 곳에서 시작한 계단은 누각까지 이어졌습니다. 

동도사 입구인 계단은 왕복 1차선 도로와 맞닿아 있습니다.
 

범종루

많은 절이 그렇듯 중층 누각을 통과해 경내에 들어서는데, 계단이 끝난 지점의 좌우에 사천왕상이 있어서 아래층은 천왕문이 되고, 위층은 불전사물을 안치한 범종루입니다. 

삼계중생들이 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목어, 운판, 범종, 법고
 

그중 하나인 목어는 통나무 하나로 물고기를 조각한 후, 몸통의 속을 파낸 타악기입니다. 소리를 내는 방법은 파낸 속을 짧은 막대 두 개로 이쪽저쪽 번갈아 치는 것인데, “따다닥 따다닥”하는 소리가 몸통에서 울려납니다. 목어는 낮고 짧은소리를 내고, 다른 악기보다 울림이 작아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지 않는 특성을 가졌습니다. 목어가 ‘물에서 살아가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동저수지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은 멀리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가까이에서 똑똑히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때문에 동도사는 이동저수지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에게 축생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는 으뜸가는 사찰이라 생각됩니다.

목어 뒤쪽 이동저수지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라’는 종송을 아침저녁으로 듣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5년간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끊임없이 법문을 설하셨는데, 많은 경전의 마지막에는 그때 그 장소에 모였던 수많은 대중이 짧은 법문 한 구절을 듣고서 수다원이 되고 사다함이 되고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쓰였습니다. 많은 불자가 부처님 생존 당시에 살았던 대중들을 부러워하듯, 저 멀리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은 이동저수지에 살아가는 물고기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석탑

사천왕상에 예를 갖추고 난 다음 경내에 들어서면 정면에 대웅전, 대웅전 앞쪽에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보입니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석탑이 제작된 시기는 “신라말-고려 초기”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4호로 2004년 11월 29일 지정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대웅전 어간문 중앙에서 앞으로 향한 직선상에 석탑과 석등이 나란히 섰습니다.
 

호랑이 앞에 여우가 나서지 못하듯 세상의 모든 것은 위계에 따라 의례와 질서가 있습니다. 일체 유정 가운데 비교할 만한 이가 없는 “무상사(無上士)”를 모신 대웅전 정면에 탑이 세워졌다는 것은, 탑에 부처님과 똑같이 존경과 예배받을만한 분을 모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신 후 쿠시나가르 말리족이 사리를 수습하여 높은 누각 위에 모시려 하자, 아사세왕 등 이웃한 일곱 나라가 사리 일부를 나눌 것을 요구합니다. 부처님이 같은 종족이라거나 존경하는 스승이라는 등의 사유를 들어 자기 나라에 탑을 세워 부처님 사리에 공양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허락하지 않으면 군사를 일으켜 전쟁도 피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를 합니다.

동도사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그러자 말리족은 자기네가 미묘한 탑을 세울 것이니 이곳으로 와서 공양을 올리고 예배하면 될 것이라며, 우리 군사도 당신네와 대적하기에 충분하다고 맞섭니다. 위급한 순간 지혜 높은 바라문이 부처님께서 생전에 자비를 가르치셨음을 들어, 화해를 중재하고 여덟 몫으로 나누어 말리족을 비롯한 일곱 나라가 고루 받게 됩니다. 이리하여 사리탑 여덟 기(基)와 사리를 나눌 때 사용한 항아리를 취한 지혜 높은 바라문이 세운 탑, 다비하고 남은 재와 숯을 거두어 봉안한 탑을 합하여 열 기의 탑이 세워지게 됩니다.

후대에 이르러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탑에 공양할 수 없게 되자, 불자들은 진신사리와 동등한 법신으로 삼은 불교 경전을 탑에 안치하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대웅전 바로 앞에 법신을 안치한 석탑에 예경을 올리는 것입니다.

(왼쪽)동도사 삼층석탑, (오른쪽)남양주 봉선사 삼층석탑

동도사 석탑은 석탑치고는 작다고 말할 정도의 아담한 크기지만, 빈듯하고 단정한 탑입니다. 애초에 탑신부가 작게 제작된 데다가 보주며 보륜 등 상륜부가 남아있지 않다 보니, 기단부가 묵직해 보여서 더 작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탑은 몇 개의 돌을 쌓은 단출한 조형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옥 구조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단은 넓고 긴 지대석을 편 위에 면석과 갑석, 또 면석과 갑석을 놓은 2층 기단입니다. 한옥에서 기단이 집의 기울어짐과 습기 올라옴을 막아내기 위한 것처럼 석탑 기단도 같은 임무를 수행합니다. 지대석과 기단은 탑신과는 다르게 검은색으로 뒤덮였는데, 이는 돌에 들러붙어 살던 이끼가 죽은 흔적으로 세월이 무상함을 보여줍니다.

기단 2층 갑석은 두 장의 판석으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는 3층으로 된 탑신 무게를 받아 분산시킬 수 있는 받침돌을 놓았습니다. 이 받침돌 윗부분은 이단으로 좁아지면서 깎여져 올랐고, 아랫부분은 빗면으로 좁아지면서 깎아내렸습니다. 

3개 층의 탑신 모두 각각 한 개의 몸돌로 이루어졌는데, 한옥이 기둥을 세워 뼈대를 이룬 것처럼 탑신석 각층 모퉁이에 기둥(우주)을 새김으로써, 석탑도 기둥을 세워 지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옥개석 아랫부분은 4단으로 깎아내려 좁아졌는데, 간단한 깎임이지만 탑신의 단조로움을 덜어 조화를 이루어냈습니다. 

기단과 옥개석에는 이끼가 죽어서 검은 색깔로 변했는데, 2층 기단의 면석과 탑신석은 돌 자체의 색깔을 그대로 지녔습니다. 

이것은 언제인가 파손되거나 분실된 부재를 새로 깎아서 맞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훼손되고 없어진 부분을 새로 깎아서 채워놓은 불자의 다음 생은 청정한 세계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