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122호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8부신중(사진=미디어붓다) 

새로 짠 우유가 굳지 않듯

악한 행위는 드러나지 않네,

재속에 숨은 불꽃 없는 불처럼

작열하며 어리석은 자를 좇네.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은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생겨나네.

그것이 그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뜨리네. 

어리석은 자는 헛된 특권을 바라네.

수행승 가운데 존경을,

처소에서는 권위를,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 공양 올리기를.

재가에서든 출가에서든 어리석은 자는

‘오로지 내가 행한 것’이라고 여기고,

해야 할 일이든 하면 안 될 일이든

오로지 내 지배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생각하니

욕망과 자만이 늘어만 가네. 

주위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오히려 잘 나가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이럴 때 선한 심성을 가졌더라도 심약한 이는 흔들릴 개연성이 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과보를 받는다더니, 다 부질없는 말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없지 않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이 감각적 괘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출리의 마음을 내어 출가를 한 이른바 수행승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오늘날 한국불교계에서도 재물에 대한 욕망, 명예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세력에 대한 욕망, 색욕에 대한 욕망에 찌든 출가승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참으로 답답하고, 딱하고, 개탄스러운 일이지만 딱히 이를 타파할 방법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범계를 저지른 승려들이 더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현실로 드러나다 보니, 출가할 때는 크고 수승한 마음을 냈던 수행승들도 잘못된 흐름에 휩싸이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부처님 재세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되레 벌을 받기는커녕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헷갈렸을 것이다. 이런 일이 부처님이 이끄는 상가에서조차 종종 발생하고 있으니, 부처님께서 이런 시를 읊어 욕망과 자만에 빠진 어리석은 자들은 훈계한 것이리라.  

이번에 소개하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시는 <법구경 담마파다> ‘어리석은 자의 품(Bālavagga, 愚闇品)’에 나오는 12~15번째 시이다. 부처님은 이 시를 통해 어리석음, 즉 무명의 과보가 얼마나 지중한 것인지를 설파하고 계신다. 

- 시구 ‘새로 짠 우유가 굳지 않듯’은 젖소의 젖통에서 바로 짜낸 따뜻한 우유는 당분간 굳어버리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고 그 자연적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착유 후에 받아진 우유그릇에 버터밀크와 같은 시큼한 성분이 첨가되지 않거나, 레몬즙이나 식초와 같은 첨가물로 굳어지는 응유(凝乳) 그릇처럼 시큼한 그릇이 되지 않는다면, 그 자연적 본성을 쉽게 잃지 않는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부처님은 잘 굳지 않는 막 짜낸 우유의 속성을 비유로 들며 악한 행위도 행해지자마자 여물지는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고 계신다. 악행을 저지른 자가 아무런 업보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업이 여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수행승이나 재가의 신자들은 더 이상 혼란을 겪지 않고 악한 일을 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악행을 하는 자가 과보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직 이전에 행했던 착하고 건전한 행위에 의해 생겨난 존재의 다발, 즉 오온이 지속하는 한, 과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라진 다음에는 악한 행위의 업이 비참한 운명에서 생겨나는 상속적 존재의 다발에 반드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인과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이다. 

- 시구 ‘재속에 숨은 불꽃 없는 불처럼’의 의미는 재속에 숨겨진 불씨가 좀처럼 꺼지지 않는 속성을 설명한 것이다. 재속에 숨겨진 불씨는 밟아도 잘 꺼지지 않는다. 재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불꽃은 재를 뜨겁게 하고 계속 불타며 살갗을 태우고 마침내 머리까지 태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악업은, 어리석은 자가 행한 바대로, 그 어리석은 자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그가 지옥 등 악처에 태어날 때, 그 악업이 불타며 그 어리석은 자를 좇는다. 이 시구는 목갈라나 존자가 과거 전생에 연각불의 초암을 불태우는 악업을 행한 한 농부가 죽어 아비지옥에 태어났다가, 과보가 다하지 않아 뱀-귀신으로 태어난 것을 신통으로 보고 미소를 지은 것과 관련하여 부처님께서 “수행승들이여, 악업은 재속의 불처럼 불타며 어리석은 자를 좇는다.”며 시로써 읊은 내용에서 유래한 것이다. 

- 시구 ‘어리석은 자에게 생겨난 지식’은 세속적 기술이나 권위나 명예나 명성에 대한 앎의 힘을 말한다. 어리석은 자에게 생겨난 권위나 기술, 다른 지식은 오로지 그의 퇴락을 위한 것으로 변한다. 그것을 토대로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 시구 ‘머리를 떨어뜨리네.’는 퇴락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어리석은 자의 기술이나 권위나 다른 지식이 어리석은 자의 운명을 파괴할 때, 그의 머리, 즉 지식도 파괴되고 퇴락하고 황폐해진다는 의미이다. 

- 시어 ‘헛된 특권’은 어리석은 수행승이 존재하지 않는 특권을 바라는 것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예컨대, 믿음이 없으면서 ‘사람들이 나를 믿음이 있는 자로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계행을 지키지 않고, 배움이 없고, 분별이 없고, 나태하고, 새김이 부족하고, 집중이 없고, 지혜가 부족하고, 취기가 있는 것에 취하는 것을 금하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계행을 지키고, 배움이 많고, 분별이 있고, 나태하지 않고, 새김이 확립되고, 집중이 있고, 지혜롭고 취기가 있는 것에 취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주기를 바라는 허구적인 특권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승원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따르는 추종자가 생기기를 원하고, 그를 따르는 수행승들에게 좋은 위치에 있는 처소를 배정하고, 자신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거나 객승들에게는 변방의 더럽혀지고 위험에 노출된 처소를 제공하며 권위를 누리고자 한다. 마치 오늘날 일부 종단에서 권력을 틀어쥔 어리석은 승려가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는 좋은 절과 좋은 자리를 제공해 주고, 자신을 따르지 않은 승려에게는 온갖 불이익을 주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 시구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는 공양 올리기를’은 자신의 친인척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네 가지 종류의 필수품에 대한 존경스러운 보시를 자기에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나에게만 보시하지 다른 사람에게는 보시하지 말기를’하고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 시구 ‘오로지 내가 행한 것’은 불사 등과 같이 승원에서 행해지는 일이 무엇이든 어리석은 자는 ‘모두가 오로지 나 때문에 완성되었다.’고 하는 생각을 일으킨다는 의미이다. 

- 시구 ‘오로지 내 지배아래 있어야 한다고’는 크든 작든 승원을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자신의 지배아래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의 행태를 뜻한다. 

- 시구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생각하니’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통찰의 길과 경지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 시구 ‘욕망과 자만이 늘어만 가네.’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여섯 가지 감관의 문에서 일어나는 갈애와 아홉 가지 자만이 마치 달이 뜨면 바다가 만조(滿潮)를 이루듯이 늘어난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