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집안에 있다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어제 새벽 5시쯤 장작가마 입구인 봉통에 불을 붙였다. 간단하게 고사를 지내고 나서는 도예가인 아내부터 잔에 따른 술을 세 칸의 가마 등에 고수레를 했다. 봉통에서 15시간 동안 소나무 장작불을 땠고, 각 칸마다 3시간씩 도합 9시간 동안 창불을 땠다.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니 오늘 새벽 2시였다. 불은 1320도에서 고점을 찍었다. 기압이 낮아서인지 다른 해처럼 1350도까지 올라가지는 않았다.
아내가 빚은 도자기 기물들은 총 50여 점인데, 몇 점이나 좋은 작품이 되어 나올지 모르겠다. 일단 가마에 들어간 도자기 기물들은 '불의 심판'을 받는다. 작가의 손을 완전히 떠난다는 뜻이다. 빛깔과 광택, 모양이 좋은 작품의 3요소인데, 빛깔과 광택, 두 가지를 불이 결정하므로 '불의 심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1300도에서 아내가 만든 도자기 기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환골탈태할지 기대가 크다. 아내는 좋은 작품 한두 점만 나와도 만족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장작가마 작업이 지난하다는 얘기이다. 도예란 사람의 정성 및 수고와 그날의 기후 같은 하늘의 운, 불의 심판이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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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의 일이다. 어머니께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이후, 그 후유증으로 조선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자가호흡이 불가능해지자 응급실 의사는 우리 형제들의 동의하에 삽관을 했다. 입으로 긴 호스를 삽입해 산소를 주입하는 의료기술이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다행히 혈압과 산소포화도 및 맥박이 호전되어 닷새 후 삽관 제거를 했다. 그러나 실패하여 어머니는 크나큰 고통 속에서 다시 삽관해야만 했다. 어제 오후에야 삽관 제거를 성공리에 하여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 비로소 나와 아내는 오늘(11월 16일) 어머니를 면회했다. 그동안 중환자실에 계실 때는 아무도 면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안부는 동생들이 간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호스를 이용해 코로 죽 형태의 음식물을 드시고, 소변은 호스로 배출하는 등 아직도 의료기구를 불편하게 달고 있지만 대화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어머니의 사리판단이 분명하고 과거 기억도 선명하기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어머니는 외갓집을 길게 얘기하셨고, 오남매 형제들을 드문드문 얘기하셨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서방님 잘 만났다"고 고마워하셨다. 내가 어머니께서 퇴원하시어 이불재 오시면 "글을 더 많이 써가지고 용돈을 많이 드리겠으니 그 용돈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베푸시라"고 하니 그러시겠다며 옆에 있던 아내와 남동생이 증인이라고 하시어 웃었다. 기분이 좋으신지 평소에 잘 부르시던 <홍도야 우지마라...> 와 <다시 한번 그 얼굴이...>를 부르셨다. 아내에게는 "양반집에서 왔다"고 하시며 "착하고 이쁘다"고 덕담을 하셨다. 그때 문득 결혼 전 아내를 어머니께 소개했을 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이 뇌리를 스쳤다. 결혼한 지 40여 년이 지났는데, 왜 그때 그 말씀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며느리에 대한 신뢰가 변함이 없고 깊은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이것도 내 복(福)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당나라 양보거사는 부처님은 집안에 있다는 불재가중(佛在家中)이란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렇다. 나의 관세음보살님은 바로 내 어머니이시다.
요절한 이호중 화백이 한복 입은 어머니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올려본다.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의 어머니 모습이다. 오늘따라 액자 속의 어머니가 나의 관세음보살님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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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첫눈이 빨랐다. 간밤에는 눈인 듯 비인 듯 진눈깨비가 내렸는데 새벽에 눈을 떠보니 첫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대나무들이 설화(雪花)를 이기지 못해 완강하게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그 시간, 대나무가 설죽(雪竹)으로 바뀌어 있는 새벽 시간에 나는 <古今島 統制營 東軒 上樑文>을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작성했다. 고금도는 남해안 전략 요충지라는 점과 이순신 통제사의 수군과 진린 도독의 명나라 수군이 연합한 조명연합수군을 처음으로 창설했다는 것과 조명연합수군이 절이도해전에서 첫 승리를 했다는 내용을 넣었다. 우보건축회사 몽안(夢安) 최석웅 사장의 부탁이었으므로 인연을 생각해서 흔쾌하게 썼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서울에서 문자철학자 월백(月伯) 유연 선생 부부가 찾아와 '나의 뿌리를 찾는 문자여행과 문자철학'에 대해서 차담을 한 뒤 점심 장소인 정남진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중(時中) 정현인 선생은 식사 자리를 바로 찾아와 합류했다. 때마침 밀물 시각이어서 바닷물은 염염했다. 식사 후 일행은 봇재의 한 카페에서 담소한 뒤, 눈 아래에 있는 내 문학공원으로 내려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문학공원을 조성해 준 보성군이 늘 고맙다.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는 속담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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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마에서 1300도의 고온을 견디고 탄생한 아내의 작품이다. 코발트 빛깔이 고와서 거실 의자 위에 놓아 보았다. 아내 호연(好然) 도예가의 특징은 입이 두 겹인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두 겹의 입(이중전)을 시도한 작가는 아내뿐이라고 아는 데 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첫 시도의 실험은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조선시대 전통 도자기의 입은 한 겹일 뿐이다.
아내는 겉마음과 속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고 육영수 여사 전담 디자이너께서는 아내의 두 겹(이중전) 도자기를 감상한 뒤 겉옷과 속옷으로 표현한 바 있고, 진짜 멋쟁이는 속옷을 잘 입는다고 덕담을 하신 적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