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를 위하여 35(마지막 회)
(©장명확)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영국이가 군경에 잡혔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됐는데……, 죽지는 않았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때 영국이 하고 같이 있을걸.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건데, 나 혼자 도망질을 했어. 나 혼자……, 다 죽어 가는 놈을 놔두고…….”
“그건 니 잘못이 아니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누가 먼저 손을 대지 않으면 한 번도 먼저 먹을 것을 집어보지 않은 외설리에서 가장 가난했던 끝말랑이 집의 외동아들 박정운……. 차라리 이 꼴을 보지 않았으면, 차라리 경묵이가 말한 대로 죽은 줄 알았다면, 이렇게 처참한 만남은 없었을 것이다.
“보경이! 보경이!”
그녀와 정안 스님이 부리나케 들어왔다.
“어째 이 지경이 되도록 놔뒀습니까?”
스님의 다리를 붙잡고 울었다. 원망스러웠다.
“내가 못나서…….”
스님은 혼자 그렇게 되뇌었다. 그 사이 그녀는 정운이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눈도 눈물로 얼룩져 나와 다를 바 없었다.
“어때?”
“……!”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녀석의 한껏 부어버린 손을 잡았다. 녀석이 희미하게 웃었다. 웃고 있었다.
“널 보고 싶었다. 널 보고 싶었어. 이상하게 식구들 생각은 전혀 나지 않는데. 동수……, 영국이, 경묵이, 응한이, 천석이, 꿈에라도…….”
경묵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운이의 어머니 아버지는 잘난 아들 둔 죄로 마을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죽었을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녀석의 눈동자에서 한없이 눈물이 샘솟고 있었다. 혼자 있었을 이 캄캄한 공간, 등창이 나버린 육신……. 나는 다시 녀석을 사정없이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어째, 꿈만 꾸면 그 즐거웠던 때만 나타나는지……. 늑대 못, 죽문, 백천사, 원석골……, 가고 싶다. 동수야, 가고 싶다.”
“살아만 있어라, 당장 지금이라도 내가 업고 간다. 내가 업고…….”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녀석을 데리고 청리산으로 갈 생각을 하였다.
반드시 데리고 갈 것이다.
가다가 죽더라도.
“약?”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왜 약이 없어? 사람이 이렇게 죽어 가는데, 왜 약이 없어!”
“오래 버텼어요.”
“그게 할 말이야, 의사가 그게 할 말이냐구!”
억지를 부렸다. 녀석은 의식을 잃었는지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깜빡깜빡 의식을 잃어.”
정안 스님의 목소리가 웽웽거리는 바람에 날렸다.
“저렇게 심하게 등창이 나면, 아무리 씻어도 안 돼요.”
그녀가 정안 스님을 보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망설였었네. 서로 이렇게 만나는 것이, 그런데 무의식중에도 친구들 이름을 불렀어. 영국이, 동수……, 노 보살님하고 내가 번갈아서 간병을 해도…….”
“고맙습니다, 스님. 어떻게 해서라도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안 돼요. 움직이지 못해요.”
그녀가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갈 거야.”
“워낙 경찰 출입이 잦은 곳이라 할 수 없이 이곳에 두었지. 냄새 때문에 다른 곳에는 있을 수도 없지만……, 어쨌든 자네들 볼 면목이 없네.”
“이 추운 절기에…….”
바닥의 마른 짚단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정안 스님이 울고 있다. 그 부리부리한 눈을 꼭 닫고, 소리 없이 울고 있다. 나는 따뜻한 방으로 들어갈 수 없다. 더 이상 따뜻한 방과 음식은 끝이다. 녀석을 바라보았다. 눈만 뜨면 업고 가는 거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막을 수 없다. 그녀와의 나들이는 이제 끝났다. 그녀와의 만남도 끝났다. 모든 것은 끝났다.
“정운아, 정운아!”
계속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녀석은 눈만 끔벅거릴 뿐 말이 없다.
“총알이 그대로 있어요. 이제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에요.”
“아내가, 부모형제가 모두 죽었다고 해도 이렇지 않았어. 정운이는 죽으면 안 돼. 한 번도 제대로 된 끼니를 먹어보지 못했어……. 제발 정운이를 살려줘!”
그러나 화타가 온다고 해도 정운이에게 드리운 죽음을 걷어낼 수 없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당신 얼굴도…….”
그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어림도 없는 소리. 나는 그래도 학교라도 다녔다. 녀석이 보지 못하는 책도 보았고, 달콤한 연애도 했다. 끼니를 굶은 적도 없다. 그런데 녀석은, 전부 나와 정반대였다. 철저하게 청리산 자락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비록 가깝기는 하지만 이 낯선 곳에서 죽게 할 수는 없다.
“정말 업고 가시려구요?”
여전히 걱정스런 그녀의 눈빛. 정운이 때문만은 아니고, 내 행동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깨어나면……, 깨어날 때까지 여기서 움직일 수 없어.”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녀석은 영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슴에 귀를 대면 분명히 심장은 뛰고 있다. 혹 일부러 깨어나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여기서 잘 거야.”
그녀는 더 말이 없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일은 이것뿐이다. 녀석과 함께 먹고, 함께 누워 있다가, 그리고 가는 거다. 그러나 그런 결의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정운이를 가운데 두고, 그녀와 옥신각신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황급히 뛰어드는 발자국이 있었다. 정안 스님이었다.
“경찰이 오네.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예?”
그녀가 화들짝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별반 놀랄 필요가 없다. 이제 끝낼 때가 된 것이다. 기왕이면 정운이하고 함께 가는 거다. 아무리 ‘빨갱이 끄나풀’이라도 설마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잘 됐군.”
“무슨 소리에요?”
“나도 지쳤어. 이대로 정운이를 두고 도망갈 수는 없어.”
“당신?”
“이런 날이 오기를 바랐어. 정말로.”
“우리가 이런 일 한두 번 겪었어요?”
“뭐?”
그때였다. 정운이 힘겹게 눈을 떴다.
“동수야, 내 말 잘 들어.”
녀석은 우리가 하는 말을 몽땅 듣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기가 버거운지 몇 번 침을 삼켰다.
“빨리, 돌아가. 난 어차피 끝났어. 너라도 잘 봐둬. 우리가 놀던 그 대밭이며, 감나무 밭, 우리 집…….”
녀석은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빨리 가야 돼요. 스님 입장도 생각해야지요…….”
“나야 괜찮아. 어차피 각오한 일이니까. 경찰이 오면 이 사람을 그대로 인계하겠네. 설마 약 하나라도 먹이겠지. 나는 그 다음 문제야. 여태 그것을 생각지 못했어. 붙잡히면 당장 죽일 것 같아서.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스님?”
“하지만 자네는 안 돼! 자네가 붙잡히면 어떻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서대문 형무소 선배로서 이건 내가 자네한테 하는 명령이야.”
정안 스님의 이글이글 타는 눈이 나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안 됩니다!”
“빨리!”
그녀가 내 몸을 끌어안고 몸부림을 쳤다.
“제발! 제발!”
정운이가 억지로 손짓을 했다. 그 이후의 일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부끄러움, 비겁함,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경찰들의 눈을 피해 뒷산으로 쥐새끼처럼 도망질을 했다. 울고 있는 정운이를 내버려 두고, 나만 살기 위해 죽어 가는 정운이를 내버려 두고, 나의 소굴로 돌아왔다. 또 나만 살아남았다.
이제 나는, 이 중심 없는 이야기를 쓰지 못한다. 나의 행위는 얼마나 사치스럽고, 뻔뻔한 일이었는가? 나는 아무 말도 남길 수 없다. 동무들의 이름을, 얼굴도 모르는 아들의 이름을, 부를 자격도 없다. 나는 마을로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갈 것이고, 끝내는 죽고 말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내 무덤에 들쥐들이 진을 치고, 먹구렁이가 똬리를 치고, 구더기가 내 몸을 갉아먹을 것이다. 살점 하나 뼈다귀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을의 바람이 될 것이다. 내 마을의 먼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바란다.
凋梅雪作花
杌木雲充葉
마른 매화 덩굴에 눈이 꽃을 붙이고
꺾인 나뭇가지에는 구름이 잎을 단다
죽어 운이 좋아서 내가 다시 인간의 몸을 받는다면, 이 청리산 밑 어느 초가에 목동으로 태어나고 싶다. 해 뜨면 소를 몰고 산으로 나가, 해지면 그 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 바로 이곳에서 아침과 저녁의 노을을 바라보고 싶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 이곳에서 나의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워하며 혼자 살고 싶다. 희미한 등불 하나 걸어 놓고 그렇게 혼자 살고 싶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