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이를 위하여 21 

 새끼들의 식사가 끝나자 암늑대는 마치 바람이라도 된 듯 소리 없이 인간들의 마을과 가까운 정골로 향했다. 대열의 맨 앞장은 언제나 암늑대였지만 맨 마지막은 항상 수늑대이다. 수늑대는 무리가 지나간 곳을 샅샅이 훑으며 흔적이 있는 것은 무조건 입으로 제거해야 한다. 무리의 털이, 혹은 사냥을 하다가 상처를 입어 흘린 피가 떨어진 곳을 골라 길다란 혀로 감쪽같이 후환이 될 흔적을 지워버렸다. 그것은 수늑대가 해야 할 가장 막중한 임무였다. 부주의해서 나중에 그것이 인간들이 아닌 두목인 암늑대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수늑대는 철저한 응징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다.

 그래서 항상 수늑대는 무리보다 훨씬 늦게 소굴에 도착했었다. 그것도 믿어지지 않아서 어두워지면 다시 한번 사냥했던 곳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수늑대의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암늑대는 수늑대에게 그 일을 시키지 않았다. 수늑대가 의아스러운 듯 암늑대를 올려다보았지만, 암늑대는 새끼들을 데리고 정골로 가고 있었다.

 원래 암늑대 이외에는 누구도 노랑바위에 접근하지 못했다. 노랑바위 앞 편은 우거진 숲이 없는 탓에 인간들의 마을을 잘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 반대로 인간들도 육안으로 얼마든지 늑대들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그래서 암늑대는 무리 중 그 누구도 이곳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였다. 멋모르는 새끼가 암늑대를 따라 노랑바위에 갔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으로 새끼들은 아예 암늑대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새끼들은 암늑대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늑대를 따라 움직였다. 암늑대는 언제나 무리에겐 공포와 경악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한 것이다. 암늑대의 눈빛엔 예전에 찾아볼 수 없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금기로 되어 있는 노랑바위로 무리를 인솔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암늑대는 자꾸만 뒤를 돌아 새끼들을 보았다. 암늑대에게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뒤 처지는 새끼들을 돌보는 일은 철저하게 수늑대의 몫이었다. 하지만 암늑대는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눈을 처음 밟는 새끼들은 처음에는 뒤뚱거렸지만 곧 눈길에 익숙해졌다. 새끼들에게 있어 이런 나들이는 엄청난 즐거움이었다. 캄캄한 밤에만, 그것도 저승골 백천 동굴 근처의 일정한 구역에서만 놀던 새끼들은 편편한 노랑바위 밑의 눈밭을 뒹굴며 장난질을 하고 있었다.

 올해 새싹이 돋아날 때 태어난 녀석들이지만, 어느새 덩치가 자신보다 조금도 모자람 없이 커버린 새끼들을 바라보면서 암늑대는 자신이 물어 죽인 새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허약한 탓에, 규율을 어기고 함부로 소리를 내지른 탓에, 마을과 가까운 곳에 접근한 탓에 응징한 수많은 새끼들…….

 암늑대는 가버린 새끼들의 모습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보다도 몇 배나 더 가혹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암늑대의 눈치만을 살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수늑대는 천천히 새끼들을 데리고 가시덤불 밑 풀섶을 파고 있다. 그건 수늑대의 습관이었다. 마땅히 숨을 곳이 없으면 땅을 파고 새끼들과 은신하는.

 그 순간 암늑대는 생사를 건 일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자신이 인간의 마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을의 개들을 처치해야 한다. 비록 외형상으로는 인간이 된다고 해도, 아직 늑대 특유의 냄새가 남아 있는 처음 며칠은 마을의 개들이 자신을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울부짖는 성량으로 봐서 늑대들보다 몇 배나 클지도 모르는 인간들의 주구, 암늑대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이빨을 악물었다. 청리산 아랫녘의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골골에 박힌 자신의 발자국, 그러나 이제 끝난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당당하게 인간으로 사느냐, 아니면 하늘의 순리를 어긴 죄로 비참한 최후를 맞느냐 그것뿐이다.

 암늑대는 아무것도 모르고 초롱 하게 뜬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새끼들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차고 맑은 눈, 그 옆에 근심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자신의 반려자, 수늑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깊게 패인 흉터, 몇 년 전 멧돼지를 잡다가 입은 상처였다. 더구나 한쪽 발은 절고 있다. 인간들이 설치해 놓은 노루 덫에 치었던 것이다. 암늑대는 줄줄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무리들 하나하나를 눈에 넣고 있었다. 아니 가슴에 넣고 있었다. 

 자신이 떠난다면 저것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장담할 수 없다.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청리산에서의 생활은 끝난 것이다.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눈이 신기한지 새끼들은 마구 눈밭을 뒹굴었다.

 따지고 보면 머언 옛날 언젠가 이곳 청리산으로 거처를 삼은 늑대들의 선조 때에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찾아온 곳, 그렇다면 이제 아무 데도 갈 곳은 없었다. 이곳이 마지막인 것이다.

오리나무에도 눈이 내렸다.

굴참나무에도 눈이 내렸다.

눈송이들이 마구 흩날리고 있었다.

 암늑대는 펑펑 자신의 등에 내려쌓이는 눈을 털지 않고 마을만을 바라보았다. 은색의 마을, 저 아름다운 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암늑대는 비로소 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하늘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어둠의 무리’ 모두가 울부짖었다.

우우웅!

우우웅!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단 하루를 살다가 죽어도 좋다. 갈기를 세웠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크흐흐! 암늑대는 무리들에게 청리산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무리들이 울부짖었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다. 여기서 안녕을 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늑대들은 아무도 암늑대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전과는 다르게 암늑대와 함께 행동을 하는 그 자체가 즐거웠던 것이다.

 암늑대는 이빨을 드러내고 다시 한번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무리들은 전혀 돌아갈 생각을 않고 있었다. 암늑대가 앞으로 걸어가면 따라오고, 돌아보면 멈추고, 다시 따라오고, 암늑대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솔들과 정을 끊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 암늑대로서는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눈물 나는 의식이었다. 완전하게 끊어야 했다. 가솔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캬아앙! 

 암늑대는 자꾸만 자신을 따라오는 새끼들 중에 한 마리의 목덜미를 갑작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세차게 흔들었다. 나머지 무리들이 뒤로 물러났다. 단번에 숨이 끊어진 새끼의 피가 눈밭에 얼룩졌다. 눈에 핏발을 세웠다. 마침내 무리 전체가 쏜살같이 달아났다.

 암늑대는 그제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회는 없다. 절대로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억센 눈보라로 하여 밤하늘의 푸른 별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별, 언제나 이고 자던 유일한 동무, 그곳에서 암늑대를 내려다보고 있을 또 다른 그들, 그러나 이제 다시는 꼬리를 흔들며 그 별들을 보지 못할 것이다. 암늑대는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면상 위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송이, 눈송이! 

 드디어 암늑대는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천천히.

 그날 밤부터 마을의 개들이 소리 없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그 이유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다만 살쾡이나 범이 저지른 일이라며 몇몇 장정들이 청리산으로 올라갔지만,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나자빠진 개들의 시체만 발견했을 뿐이었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개를 키우는 것을 포기했다. 드디어 마을의 개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을 때 암늑대는 노랑 바위 아래에서 하늘을 우러렀다.

 “비가 오는 것을 맞지 않아도 되는 동물, 눈이 오는 것을 맞지 않아도 되는 동물, 그것을 멀찌감치 바라볼 수 있는 동물, 바위를 바위로 보고, 구름을 구름으로 볼 수 있는 동물, 바람이 불면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살아 있어 부끄러운 몸뚱이를 스스로 가릴 수 있는 동물, 어째서 하늘은 야속하게도 그런 특권을 인간에게만 부여하셨습니까? 항시 인간들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질투였습니다. 부러움이었습니다. 같은 생물로 태어나서 어째서 인간이란 족속만이 따뜻한 불빛 아래에서 자신들의 새끼들을 키우고, 암컷과 수컷이 서로 서로의 어깨를 비비대며 살고 있는지, 그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밤낮으로 눈에 불을 켜고, 살아 있는 것들의 동태를 살펴 저보다 약한 것들의 고기와 피를 빨고, 저보다 강한 것들의 눈을 피해, 그래도 운이 좋아 저보다 강한 것들의 먹이가 되지 않는다 해도 이 황량한 숲속에서 처참하게 한 생을 마쳐야 하는 이 미물의 처지가 너무도 한탄스러웠습니다. 죽어 까마귀밥이 되지 않을 요량은 미물인 우리들에게는 조금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하늘이여! 원컨대 이 미물의 간청을 가엾이 여겨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여인으로 살다가,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 죽고 싶습니다……. 하늘이여 이 보잘것없는 육신의 껍데기를 인간의 몸으로 바꾸어주기만 한다면 두 번 다시는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암늑대의 눈물 어린 호소가 하늘 끝에 닿았음인지, 단 한 번 사람으로 변하면 다시는 원래대로의 늑대로는 되돌아올 수 없다는 조건과, 사람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내의 배필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대신 아주 아리따운 여인으로 하늘은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