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무슨 빛깔일까?

                                                          정찬주(소설가)

새벽 눈의 쌓임(積), 새벽의 고요(寂)는 등가물(等價物) 같은 것인가?

이불재 육바라밀송(松) 가지에 한 가득 눈이 쌓여 고요한 눈꽃으로 만개해 있다.

비록 내일 일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은 충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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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목적의 제주도 여행. 하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 또 하나는 소설구상 여행. 

2박 3일 동안 이불재의 켜켜이 쌓인 산중 시간들을 제주도 겨울바다 바람에 강원도 명태 말리듯 했다. 그러자 내년에 쓸 소설내용이 다소 선명해지고 동력이 생긴 느낌이다.

가족의 불문율 같은 문법도 다시 한번 더 상기했다. 가족은 매순간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고마워하고 응원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제선사의 '서 있는 자리에서 주인공이 되어, 서 있는 곳을 참되게 하라'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入處皆眞)이라는 법어가 떠오른다. 

여기는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항 부근으로 바다가 옆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이곳 바다는 태평양의 시작이자 끄트머리이다.

어제는 분화구 흔적이 있는 금오름에 가족 모두 올라갔다. '금'은 '곰'과 같은 말이니 원래는 곰오름이었을 터. 고조선시대에 가장 신성한 동물은 곰이었으므로 제사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산봉우리였을 것이다. 

우리 가족도 각자 마음속으로 발원을 했다. 끊임없이 웃음을 준 쌍둥이 손자 주영이, 태영이가 우리 가족의 미래라는 것이 문득문득 깨달아졌다.

오늘도 장강(長江)은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며 흐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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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은 사원에만 법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마음이 법당'이라고 했다. 또 성철스님은 명산명찰만 성지가 아니라 '믿음이 성지'라고 했다. 꼭두새벽 이불재에 내리는 눈을 보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내가 사는 이곳이 바로 성지이자 법당이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니 허망한 욕심 버리고 늘 깨어 있는 정신으로 나와 이웃을 위해 잘 살아야지 하고 발원해 본다.

조만 간에 연재할 장편역사소설 <깨달음의 빛, 청자> 1회 분을 미리 쓰고 있는 중이다. 청자는 불교의 혼이 깃든 빛깔이고, 백자는 유교의 혼이 담긴 빛깔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제목에 ‘깨달음의 빛’이라는 말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