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으리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서울과 광주에서 일곱 분이 이불재를 찾아와 차담을 나누었다.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감독한 진모영 거사 부부, 오도선 거사, 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재수 교수, 대학생불교연합회 일을 보는 여성불자 등 직업은 다양했지만 공통분모가 있었다. 5.18광주민중항쟁 때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가 숨을 거둔 김동수 열사 기념사업회 일을 하는 것이 일곱 분의 공통분모였다.
아마도 나를 찾아온 이유는 내 장편다큐소설 <광주아리랑>을 정독하고서 자신들이 펼치고자 하는 일의 방향성이 작가의 의도와 어느 정도 계합되었기 때문이리라. 차담을 하면서 나는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했던 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장 및 조선대 불교학생회 활동을 한 김동수 열사의 신념 내지는 정신이 무엇이었나를 말했다.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을 미룬 채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지장보살정신과 ‘나와 남이 둘이 아니다’라는 유마거사의 동체대비정신의 자기내면화가 아니었겠느냐고 내 생각을 전했다. 물론 항쟁에 참여했던 증심사 성연스님, 다보사 진각스님의 자비로운 이야기도 곁들였다.
미래 인류를 구원할 사상적 대안이 있다면 단연 이 두 정신이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현실존재인 우리가 실천해야 할일은 지장보살과 유마거사가 법당이나 경전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김동수 열사처럼 두 정신을 자기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도 동국대 불교학생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기 때문에 후배들이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말하고 대했던 것 같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그때 지장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백천만억 세계에 두루 이 몸을 나타내어 모든 업보 중생을 구제하고 있습니다. 만일 부처님의 대자비력이 아니었다면 곧 이와 같은 변화를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이제 부처님의 부촉하신 바를 받아 미륵부처님이 성불하실 때까지 육도중생을 모두 해탈케 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중생이 해탈하지 못하는 것은 뜻과 성품이 정해진 것이 없어서 나쁜 습관으로 업을 짓고, 착한 습관으로 결과를 맺으므로 착하기도 하고 혹은 악하기도 하여 그 결과를 따라서 태어나게 된다. 그와 같이 육도를 윤회하여 잠시도 쉼이 없다. 또한 티끌같이 수많은 겁이 지나도록 미혹하여 마치 그물 속에 갇힌 고기가, 그물 안의 물이 흐르는 물인 줄 착가하며 잠시 벗어났다가 다시 그물에 걸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중생들을 내가 근심하였는데, 그대가 이미 과거의 수많은 겁 동안 서원을 실천하여 죄업중생들을 제도하겠다고 하니 내가 다시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그때 자리에 있던 정자재왕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지장보살은 여러 겁을 지나오면서 어떤 서원을 세웠기에 이렇게 부처님의 칭찬을 받습니까?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설하여 주옵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정자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여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마땅히 분별하여 설하리라.
그때 한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은 일체지성취(一切智成就)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이셨으며 수명은 6만 겁이었다.
이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는 작은 나라의 왕이 되어 이웃 나라 왕과 벗이 되어 함께 십선(十善)을 행하여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였다.
그러나 그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니 두 왕은 널리 방편을 베풀 것을 의논하였다.
한 왕은 이렇게 발원하였다.
‘내가 어서 깨달음을 이루어 이러한 무리들을 남김없이 제도하리라’
또 한 한 왕은 이렇게 발원하였다.
‘만일 죄 받는 중생이 있으면 먼저 제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편한케 하고,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마침내 홀로 성불하기를 원하지 않겠노라.’
부처님께서 정자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먼저 성불하기를 발원한 왕은 곧 일체지성취여래였으며, 죄업중생을 영원히 제도하고 그때까지 성불하기를 원치 않았던 왕은 바로 지장보살이었다.”
― 『지장경』
부처님께서 금빛 팔을 들어 지장보살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
“지장보살이여, 그대의 위신력은 불가사의하도다. 그대의 자비가 불가사의하고, 그대의 자비, 그대의 지혜, 그대의 변재는 불가사의하도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대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천만겁 동안 찬탄하여도 다하지 못하리라.
지장보살이여, 내가 오늘 이 도리천에서 백천만억의 말로도 다 말할 수 없는 모든 부처님, 보살, 천신과 인간과 용, 팔부신중이 모인 자리에서 그대에게 다시 부촉하노라.
그대는 불타는 집과 같은 삼계의 나고 죽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하루라도 악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오무간이나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천만겁이 지나도록 벗어날 기약이 없도록 하지 말라.
지장보살이여, 이 남염부제 중생들은 성품이 정한 바가 없으니 악한 업을 짓는 이가 많고, 비록 착한 마음을 내었다고 할지라도 잠깐 사이에 곧 퇴보하며, 만약 악한 인연을 만나면 생각생각마다 악업을 더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분신을 나투어서 교화하고 제도하되 그 근성을 따라서 해탈의 길로 인도하느니라.
지장보살이여, 내가 지금 그대에게 간곡히 하늘과 인간의 중생들을 부탁하느리라.
만약 미래세의 어떤 하늘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불법 안에서 털끝 하나, 모래알 하나, 물 한 방울의 물보다 작은 선근을 심더라도 그대는 도력으로 이 사람을 보호하여 점점 위없는 궁극의 진리를 닦아 물러서지 않게 할지니라.
지장보살이여, 또한 미래세에 천인이나 사바의 중생들이 죄업대로 악도에 떨어지게 된다면 악도에 떨어질 때에나, 혹은 지옥문 앞에 이르러서도 이 중생들이 한 부처님과 한 보살의 이름, 대승경전의 한 구절, 한 게송만 생각하더라도, 그대는 위신력과 방편으로써 구제할지니라. 가없는 몸을 나타내어 지옥을 부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여 미묘한 낙(樂)을 누리도록 할지니라.”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현재와 미래의 모든 중생들을
내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큰 신통과 방편으로 제도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
그때 지장보살이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바라옵건대 염려하지 마옵소서.
미래세의 선남자, 선여인이 불법 안에서 한 생각이라도 공경스러운 마음을 내면, 제가 온갖 방편으로 그들을 제도하여 나고 죽는 윤회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게 하겠습니다. 하물며 모든 착한 일들을 듣고 생각생각 닦아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말할 나위가 더 있겠습니까? 이 사람은 자연히 위없는 궁극의 진리를 닦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 『지장경』
갈무리 생각
점심은 쌍봉사 주지스님의 배려로 광주에서 온 손님들 모두가 절 공양간으로 가서 했다. 점심 후에는 쌍봉사 증현 주지스님 다실에서 차를 마셨다. 주지스님께서 귀한 얘기를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찾아오는 불교’가 아니라 ‘찾아가는 불교’를 지향하자는 요지의 말씀이 귀에 오랫동안 남는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찾아갈 때 조그만 아미타부처님 불상을 모시고 가서 <아미타경>을 들려주어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아미타경>을 외어주면 환자가 ‘극락’이라는 갈 곳이 정해졌으므로 심리상태가 편안해질 거라는 게 주지스님의 말씀이었다. 갈 곳을 아는 환자와 그렇지 못한 환자의 심리상태는 분명 천지 차이일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살아 있는 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갈 곳을 아는 자는 방황이 없을 것이고, 모르는 자는 허둥대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은 지장보살이고, 현생의 중생을 임종 때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부처님은 아마타부처님이다. 역할이 엇비슷한 까닭에 지장보살과 아미타부처님의 일체설을 일부에서 주장했던 것도 같다. 어쨌든 지장보살의 서원을 다시 한 번 더 되새겨본다. 지장보살의 서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시(詩)라는 생각이 든다.
중생을 다 구제하고 깨달음을 이루리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으리.
衆生度盡 方證菩提
地獄未空 誓不成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