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줄 아는 마음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쌍봉사는 내 산방 이불재에서 1백 미터쯤 떨어져 있다. 오후에 산책할 때마다 쌍봉사를 지나친다. 쌍봉사 해탈문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초파일이 한 달쯤 지났지만 연등은 그대로 걸려 있다. 밤이 되면 이불재에서 아름다운 연등 불빛이 언뜻 보이기도 한다. 관광객들이 오가면서 연등을 보고 나름대로 느낀 바가 많을 것 같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 하여 불자라면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나도 역시 사밧티의 ‘가난한 여인의 등불’을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젊은 시절에는 정성으로 켠 등불은 바람에 꺼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해했는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부처님께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켠 등불이라고 해석이 된다. 

 오래전에 한 번 친견한 적이 있는 청화스님께서는 벽에 두 장의 수건을 걸어놓고 사신다고 말씀하셨다. 한 장은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것을 생각하면 감사한 나머지 눈물이 나서 닦는 수건이고, 또 한 장은 아침에 세수하시고 나서 닦는 수건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부처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충분조건이 아닐까 싶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사밧티에 한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여인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이집 저집 다니면서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어느 날 온 성안이 떠들썩한 것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프라세나짓왕은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과 침구와 약을 공양하고 오늘 밤에는 또 수만 개의 등불을 켜 연등회를 연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성안이 이렇게 북적거립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생각했다. 

‘프라세나짓왕은 많은 복을 짓는구나.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어떻게 할까? 나도 등불을 하나 켜서 부처님께 공양해야겠는데.’

여인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겨우 동전 두 닢을 빌어 기름집으로 갔다. 기름집 주인은 가난한 여인을 보고 기름을 구해 어디 쓰려느냐고 물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그 부처님을 뵙게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나는 가난해 아무것도 공양할 것이 없으니 등불이라도 하나 켜 부처님께 공양할까 합니다.”

주인은 여인의 말에 감동하여 기름을 곱절이나 주었다. 여인은 그 기름으로 불을 켜서 부처님께서 다니시는 길목을 밝히면서 속으로 빌기를 ‘보잘것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내 생에는 나도 부처님이 되어지이다.’라고 기도했다. 밤이 깊어 다른 등불은 다 꺼졌으나 그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께서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아난다는 손으로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꺼지지 않았다. 가사자락으로, 또는 부채로 끄려 했으나 그래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등불이다. 그러니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등불의 공덕으로 그 여인은 오는 세상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프라세나짓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부처님, 저는 석 달 동안이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큰 보시를 하고 수천 개의 등불을 켰습니다. 저에게도 미래의 수기(授記,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를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도란 그 뜻이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려우니 깨치기도 어렵소.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써 얻을 수도 있지만 백 천의 보시로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소. 그러므로 불도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가지로 보시하여 복을 짓고, 좋은 벗을 사귀어 많이 배우며 스스로 겸손하여 남을 존경해야 합니다. 자기가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이 하면 뒷날에 반드시 불도를 이루게 될 것이오.”

왕은 속으로 부끄러워하면서 물러갔다.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12』

 갈무리 생각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苦)는 산스끄리뜨어로 '두카(Dukha)'라고 한다. 명상하는 수행자들은 두카를 불만족스러움(Unsatisfactoriness), 또는 불안정함(Instablilty)이라고 번역하여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

 불안정하여 들뜬 마음 

 이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바꾸면 행복이 된다. 고(苦)에서 해방됐으니 해탈인 것이다.

만족과 감사와 안온 속에서 사는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족할 줄 아는 마음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안정되어 고요한 마음 

 고(苦)를 편하게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라고만 이해했는데,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에 등불이 하나 환하게 켜진 듯하다. 가난한 여인의 등불은 부처님을 향한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