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섭존자가 전수받은 가사는 어디 있을까 

용왕각과 극락보전 가운데쯤에는 미륵보살입상이 서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보살상이 위압감을 줄 정도로 크게 조성되지 않아 우러러 보기에 알맞았고, 주변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제자 사리불에게 ‘미륵불이 지금으로부터 60억년 뒤에 태어날 것이며, 32상과 80종호를 갖추고 신장이 열여섯 길(丈, 미터법으로 48미터)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 생존 당시에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길(丈)”이 지금과는 다를 것이기에, 일반인의 신장보다 크다는 표현을 그리하셨다 생각하면 쌍계사 미륵입상의 높이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팔각의 하대에는 여러 포즈를 취한 인왕이 부조되었고, 그 위에 복련과 앙련 꽃잎을 피워 보살이 서있으실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제자 가섭에게 ‘너는 열반에 들지 말고 미륵이 세간에 출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부촉하셨습니다. 그런 연유로 가섭은 부처님께 전수받은 가사(대의)를 미륵불에게 전하게 되는데, 이를 나타냄인지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은 가사를 입었습니다.

종종 탱화를 보면 미륵보살이 용화수가지를 들고 있는데, 쌍계사 석조입상은 왼손으로 둥근 모양의 보주를 받쳐 들었습니다. 들고 계신 지물을 자세히 살피니, 위쪽에 뚜껑을 나타내려한 듯 턱이 새겨져있음이 보였습니다. 

선재동자는 사방팔방을 떠돌며 선지식을 찾아뵙는 마무리 과정에서 미륵보살께서 중생들에 자비심을 베풀고, 세상을 교화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미륵보살께서 모든 부처님을 찬탄 공경하고 또 의왕이 되어 뭇 병을 고치며 바른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중생들의 몸과 마음에 생겨나는 모든 병을 고치셨을 테니, 들고 계신 것은 보주가 아니라 “약함”일 것이라 추단하였습니다.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몸으로도 범하지 않겠사오니, 머지않은 때에 하생하여 주시길 합장반배하면서 기원하였습니다. 

죽어서 갈 곳, 미리 예를 올려야

용왕각 왼쪽에는 명부전이 자리하였습니다. 명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영혼이 심판을 받는 곳입니다. 어느 누구든 살아가면서 백여덟 가지의 번뇌를 겪는다하니, 그 번뇌를 벗어나려고 짓는 업장은 수천 가지가 넘을 것입니다. 하루만 살다 죽는다 해도 선업(善業)만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니, 몇 십 년을 살면서 쌓는 악업(惡業)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살면서 쌓는 악업이 많은 때문인지, 명부에서 받아야 할 심판은 무려 열 번이나 됩니다. 이승을 떠난 때로부터 3일차에 도착한 명부에는 망자를 데려온 저승사자, 판관과 녹사, 열 명의 심판관이 자리하였고, 심판이 끝나자마자 지옥으로 끌고 갈 옥졸까지 출구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 지경이 되면 망자는 자기가 다다른 상황에 공포심만 가득할 겁니다. 3일 전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바늘구멍만큼 작은 행위마저 업경(業鏡)에 드러나니, 가엽고 불쌍한 망자가 믿을 분이라고는 지옥을 거리낌 없이 드나드시는 지장보살뿐입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장보살을 떠올리며 염불하는 방법뿐입니다. 낱낱 중생들의 근기를 살피고 계신 지장보살님께서는 시시때때로 도솔천에서 명부까지 출현하시어 망자를 구제해 주십니다. 보살께서 불쌍한 영혼들의 간절함에 자비스런 손을 내주시는 것은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이 제도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습니다.’라는 큰 서원을 세우고, 꾸준히 실천하시는 때문입니다. 

지장보살의 중생 교화와 구제는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시 때까지 이어질 것이니, 모든 사찰에 명부전이나 지장전을 지어 공덕을 찬탄함은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쌍계사 명부전은 상단에 지장보살상 만을 봉안하였습니다. 

상단에 봉안된 지장보살상은 눈·코·입 등이 단아한 덕스러운 모습으로 조성되었고, 천의를 걸치셨으면서 보관이 아닌 두건을 둘렀습니다. 목에는 수행으로 번뇌를 끊어냈음을 나타내는 삼도가 명확하고, 세 개의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하였습니다.

오른 손은 특유의 지물인 석장을 지니는 대신에 잠깐만이라도 계율을 잘 지키기를 바라는 수인을 취하셨고, 왼손에는 중생 구제를 위하여 삼천세계를 비춰볼 수 있는 구슬을 받쳐 들었습니다. 망자의 천도 의식을 위하여 지장보살님을 청하는 글이 생각납니다. 

장상명주일과한 자연수색변래단 기회제기친분부 암실아손향외간 

(掌上明珠一顆寒 自然隨色辦來端 幾回提起親分付 暗室兒孫向外看) 

손바닥 위에 있는 맑은 구슬이 쌀쌀맞기는 하지만

제 스스로 옳고 그름을 따져서 가려낼 줄 안다.

내가 나쁜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시시때때로 분부했건만

어두운 방에 있는 아이처럼 바깥만 바라다보는구나. (의역하였습니다)  

지옥에 있는 귀왕조차도 ‘문수·보현·관음·미륵보살이 육도중생을 제도하고 계시지만 그 원(願)은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장보살이 육도의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고자 하신 발원을 지켜내시는 겁수(劫數)는 항하의 모래알 수와 같습니다.’며 석가모니부처님께 지장보살의 공덕을 찬탄합니다. 

지장보살께서는 악습에 물들어 지옥 드나들기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중생을 거듭 구제하시어 마침내는 해탈케 하십니다. 몇 번씩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으니, 보살님도 심사(心思)가 상당히 괴로우실 것입니다. 더욱이나 여러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목각으로 조성하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의 보좌가 없어서 더 힘드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명부 식구들의 가족사진

지장보살상 뒷벽에는 지장시왕탱화가 걸렸습니다. 중앙에는 민머리 모양의 수행자인 지장보살이 구슬을 받쳐 들었고, 두광과 신광이 크게 둘려졌습니다.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지장보살을 향해 합장한 채 시립하였습니다. 도명존자의 두광은 초록색으로, 무독귀왕의 두광은 광채로 밝게 나타냈습니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전신(前身)인 바라문녀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지옥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준 귀신의 왕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지장보살의 협시가 되었습니다. 

무독귀왕은 무서운 귀신의 왕이지만 사람이 지닌 악하고 독한 마음을 없애주는 착한 행동을 하는 때문인지, 문관으로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지장삼존을 빙 둘러서 좌우에 다섯씩 시왕이 나뉘어 섰습니다. 명부 시왕은 석가모니부처님께 ‘망자가 살아생전에 무슨 공덕과 죄를 지었는지 이름을 확인하고 사실들을 조사하여, 데려올 자 데려오고 놓아줄 자 놓아주어 억울한 자 없도록 공평무사 처리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시왕들 모두 관복차림에 관모를 쓰고 합장을 하거나 홀을 들어 문관의 모습으로 그려졌고, 염라대왕은 관모 위에 경전을 올려놓고 묶었습니다. 두 줄로 단단히 감고 야무지게 매듭지은 것으로 보아 최상의 진리를 담은 금강경이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맨 뒷줄에는 시왕의 명을 받아 망자의 이름과 망자가 살아생전 무슨 공덕과 죄를 얼마나 지었는지 조사 확인하고 기록하는 녹사와 판관과 옥졸 등이 시왕들의 권속이 섰습니다.

탱화 맨 앞쪽 좌측에는 머리를 두 갈래로 묶어 올린 동자가 지장보살이 그려진 번당을 들고 섰습니다. 탱화는 좌우에 같은 숫자의 불보살과 신중들을 묘사하는 것이 상례이기에 우측을 보았는데, 동자가 그려졌다는 것만 볼 수 있을 뿐 무엇을 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화기(畵記)를 보고 쌍계사가 위치한 곳이 대금산이고, 지장시왕도 봉안은 “대정 7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정 7년은 서기 1918년으로 일제강점기 입니다. 강제로 한일병합이 일어난 이후,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던 무단통치시대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에서조차 탱화 화기에 “불기 2462년”이라 쓰지 못한 것을 보면, 사찰에 대한 저들의 억압이 어떠했을지 짐작됩니다. 

화기 끝에는 지장시왕도를 여럿이 아니라 한 집안이 크게 시주한 것으로 쓰였는데, 가족사항은 어머니가 홀로 생존하셨고, 부인과 일곱 살인 맏딸 그리고 둘째 셋째는 출생년도가 같은 네 살 쌍둥이입니다. 짐작하건데 일찍 돌아가신 선친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면서 시주하였을 것입니다.  

(좌)장시왕도를 시주한 집안의 내역입니다. 건(乾-하늘)은 남자, 곤(坤-땅)은 여자입니다. 세 딸의 이름은 모두 “아지”입니다. (우)지장시왕도 봉안한 시기를 대정 7년으로 썼습니다. 이것으로도 일제가 우리 불교문화를 말살하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도리천에서 지장보살을 엄청나게 칭찬하신 후 ‘지장보살의 형상을 그리거나 보살상을 조성하여 예배하는 자는 삼백 번이나 도리천에 나서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 미루어 생각하니, 큰 시주의 공덕으로 시주자의 선친은 물론 과거세의 부모까지도 분명히 악도에서 벗어났을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지장보살을 찬탄하신 게송이 떠올리며, 명부전을 나왔습니다.

지장대성위신력 항하사겁설난진 견문첨례일념간 이익인천무량사

(地藏大聖威神力 恒河沙劫說難盡 見聞瞻禮一念間 利益人天無量事)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보고 또 보곤 하는데그 대단함은 내가 항하사 겁을 설한다 해도 끝이 없구나.잠깐 동안이나마 보고 또 우러러 예배한다면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물론 천상에서 받는 이익은 한이 없을 것이다.

(의역하였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