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리에 넘어지는 것도 인연이 있어야 

“안산 대부도”를 말하면 “바지락 칼국수”가 떠오를 정도로 대부도는 바지락 칼국수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 칼국수를 먹으려 여러 번 오가던 길가에 쌍계사 입구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는데도 들어갈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돌이 많기로 이름난 제주도에 ‘길에 널린 돌도 연분이 있어야 찬다’는 속담이 그 말입니다. 제법 큰 섬 축에 들어가는 대부도는 육지(안산)와 연결되는 제방을 쌓으면서 시화호를 품은 육지가 되었습니다. 

섬 북쪽, 제방이 시작된 지명을 “방아머리”라 붙인 것은, 섬 생김새가 발을 디뎌 곡식을 빻는 디딜방아처럼 생겼기 때문일 겁니다. 방아머리는 육지와 이어지기 전까지 인천은 물론 영흥도 이작도 덕적도 등을 오가는 연안여객선 선착장이었습니다.

방아머리는 디딜방아의 “공이”가 붙어있는 부분입니다. 공이에 해당하는 지역은 섬의 북쪽 방아머리에서 남쪽 “고래뿌리선착장”까지로 볼 수 있고, 방아머리와 고래뿌리를 잇는 중간쯤에 쌍계사가 위치합니다.

화성시 우정읍에서 시작된 301번 지방도로는 화옹방조제 궁평항 탄도항을 거쳐 지하철 4호선 종점인 오이도역까지 이어집니다. 쌍계사로 진입하는 갈림길은 대부도 중심을 관통하는 지방도로의 중간쯤에 있으니, 쌍계사의 위치는 대부도의 배꼽쯤 되는 중요한 혈(穴) 자리가 된다 싶습니다. 

드나드는 문으로 마음도 드나들어

큰길에서 운전대를 틀자마자, 굵은 아름드리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나무 주변의 공터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쌍계사의 바깥마당입니다. 쌍계사에 도착하였다는 기쁜 마음이 일어나는 듯싶더니 금세 사라지고, 섭섭하고 안타까움이 일어났습니다. 쌍계사를 찾겠다는 마음은 이미 며칠 전부터 있었고,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도착하면서 마음이 허전해진 이유는 반겨주는 문을 볼 수 없는 때문입니다. 

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가에 놓인 다리로 불국토와 속세가 구분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요. 부처님을 뵙고 싶어 왔으니, 반배를 올리면서 찌든 마음을 털어내고 청정한 마음 하나만을 남길 기회가 없어진 듯해서입니다. 첫술에 배 부르려는 나쁜 버릇과 ‘일주문이나 천왕문이 꼭 있어야 한다’는 쓸모없는 생각을 떨어냈습니다. 

길게 이어진 일곱 칸 좌우에 반 칸의 퇴칸이 달린 긴 행랑채가 불국토와 사바세계의 경계입니다. 그렇게 서로 나뉜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는 긴 행랑채의 어칸(御間)입니다.

어칸에 큰 판문을 달았는데, 문지방이나 원산석¹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문짝을 달아 놓기는 했지만, 형식적임을 나타낸 것이고, 때에 따라서 열거나 닫겠다는 생각도 없음을 뜻한다 싶습니다.  

큰 문을 달면서 문지방이나 원산석을 놓지 않은 것은 닫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랑채 대문으로 들어서며 ‘이 문 들어설 때 그 어떤 분별심도 내지 마라’(입차문내 막존지해 入此門來 莫存知解)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예부터 문짝 없는 문(일주문)을 통과하면서 마음을 열거나 닫았다는 것에 이르자, 사찰에 들어서는데 문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문짝 없는 문을 세워 가르침을 주신 많은 선지식들께 지극한 마음을 공양드렸습니다.

신검당을 들어서면 모든 법당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삼성각, 극락보전, 용왕각, 명부전이 자리하였습니다.

긴 행랑채는 신검당입니다. 어칸을 통해 들어서면서 쌍계사의 모든 법당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많은 전통사찰이 일주문으로 들어섰어도 법당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사이의 거리가 떨어져 있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처님을 뵈려는 마음을 한 번 더 가다듬으라는 뜻이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속 좁고 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 속인은 법당이 보이자마자 환희와 고마움이 가득해졌습니다.

상투를 튼 쌍계사 용왕

우물이나 샘물에 대한 설화나 구전동화가 그럴 듯싶은 것은 ‘증거가 되는 물’이 지금도 솟아나는 때문입니다.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모두가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들이켜는 물맛은 시원하기만 합니다. 

쌍계사 창건 실마리가 되는 샘물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옛날에 산마루를 넘어가던 취촉대사가 잠깐 쉬는 동안에 다섯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고, 그 바위가 있는 자리에 “정수암(淨水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수암은 그 후에 지금의 쌍계사로 바뀌었고요.

예부터 조상님들은 큰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우물과 샘까지에도 용의 자손이 살고 있다’며 자연물을 숭배하거나 신격화하였습니다. 이는 ‘물이란 것이 귀한 것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이 담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욱이나 우물을 파면 짠물이 나오는 섬에서, 부처님께 공양드릴 수 있는 맑은 물이 솟아나니 절터로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처님을 모실 정수암을 짓고 이 근처를 ‘부처님을 얻은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부득골(佛得谷)’로 이름 붙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부처님 말씀을 퍼뜨리기 위한 취촉대사의 방편이었을 것으로 믿어졌습니다. 

용이 올랐던 암반석의 윗부분만 노출시킨 채, 두꺼운 유리로 전각 바닥을 놓았습니다.

유리판 밑으로 고여 있는 지하수가 보이고, 용왕각 밖에서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용왕각은 쌍계사를 건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용왕의 공적을 보여주려는 듯 전각 바닥을 두꺼운 유리로 마감하였습니다. 암반의 위쪽 등판만 남겨두고 아랫부분을 유리판으로 덮었는데, 유리판을 통해 솟아난 샘물이 모여 바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찾은 때는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중순, 활짝 열려있는 전각 바닥은 유리. . . . 

차가운 유리에 시려진 발바닥으로 견뎌낼 수 없어서, 모닥불에 콩 튀듯 뛰쳐나왔습니다.    

북쪽 벽에는 용왕 탱화가 걸렸습니다. 옥좌에 앉은 용왕은 메기 눈썹과 수염이 흩날리는 얼굴에 익선관을 썼습니다. 익선관 뒤쪽에 비녀를 가로질러 꽂았는데, 비녀는 틀어 올린 상투가 풀어지지 않게 장신구입니다. 상투를 트는 것은 우리 조상님들이 천년을 이어온 오래된 풍습이기에 용왕님은 우리 조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었습니다.

좌우에는 천도복숭아와 파초선 부채를 든 시동이 시립하였고, 그 옆에는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 올리고 합장한 동자가 섰습니다. 이는 바다가 보이는 낙가산에 계신 관세음보살을 예배하는 해상용왕과 남순동자 이야기에서 끄집어냈다 생각됩니다. 

용왕은 바다에서 나는 진귀한 보석인 붉은 산호 가지를 받쳐 들었습니다. 산호 나무는 극락세계를 장엄하는 칠보 나무로 마노의 꽃과 열매가 매달린 진귀한 보석입니다. 

이곳 용왕각의 샘물은 먼 옛날부터 섬사람들에게 감로수로 음용되었을 것이고, 바다에 나가는 어선들도 포구 가까이에서 솟아나는 이곳 샘물을 고맙게 떠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용왕각에 모신 용왕이 바다에서 당할지도 모를 흉한 일을 막아주기를 간절히 기원했을 겁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1. 원산석(遠山石) : 큰 문을 열거나 닫을 때, 문짝이 어느 지점에서 멈추도록 박아놓은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