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붓다

우봉규 장편동화 ‘마리산’14

2021-11-09 (화) 09:34	우 봉규 \|

머나먼 가리왕산1

아버지는 사흘 걸러 한 번씩 집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과자와 빵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찬거리들을 한 아름씩 안고 왔다. 냉장고는 항상 먹거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민우는 예전의 민우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과자를 사와도, 맛있는 반찬을 사와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걸 알고 있는지 별다르게 민우에게 말을 시키지 않았다. 민우는 그저 부지런히 학교만 다녔다. 그러면서 민우는 점점 더 말이 없는 아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민우의 가슴속에는 ‘아버지가 밀렵꾼’이라는 벗어버릴 수 없는 멍에가 있었다.

비록 조그만 컨테이너 집이었지만 민우네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았다. 쌀이 떨어지고, 보일러 기름이 떨어져서 배고프고 추웠던 지난겨울에 비하면 궁전 같은 생활이었다. 그러나 민우는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용돈을 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꼭 필요한 돈 이외에는 절대로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마리산 기슭의 모든 나무들이 거센 바닷바람에 하염없이 울던 날 밤, 드디어 민우가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민우야!”

“아버지!”

“괜찮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픽 쓰러졌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집에 왔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민우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119 구조대 아저씨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누가 이랬어요?”

“......”

“병원에 가야 해요!”

그러나 아버지는 방에 쓰러져 누워서도 병원엔 절대 가지 않겠다고 했다.

민우는 더운물로 일단 아버지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이마는 온통 다 벗겨졌고, 팔다리도 여기저기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목덜미고 가슴이고 온전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넘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하고 싸운 것도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마구 얻어맞은 것이 틀림없었다.

몇 번이고 아버지의 몸을 닦아내면서 민우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그런 민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장만 보고 있었다. 민우는 그 이상한 아저씨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민우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그렇게 밤새 아버지를 간호했다. 아버지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환하게 동이 틀 때까지 민우는 아버지 곁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창문으로 햇볕이 따사롭게 비쳤을 때, 가만 눈을 뜬 아버지는 민우를 불렀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민우야?”

“......”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마라.”

그러나 민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토록 아버지가 미웠는데, 막상 상처투성이로 자리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 병원 가야겠어요?”

“조금 긁히고 멍이 든 것뿐이야. 걱정할 것 없다. 어서 학교나 가.”

그러나 민우는 당장 약국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고 있었다. 민우는 상처 난 데 바르는 연고를 무려 세 가지나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학교 안 가고?”

아버지는 지난밤보다 더 고통스러운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민우는 아버지의 상처에 골고루 약을 발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숨조차 쉬기 어려운 것 같았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민우는 밥을 끓여 죽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잠이 들었는지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민우도 잠이 쏟아졌다. 몸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민우는 아버지 곁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창문으로 비치던 햇살이 사라지고, 하늘 중간에 떠 있던 햇님이 마리산에 걸려 있을 무렵이었다. 민우는 잠결에 흙 계단을 밟고 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재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재희는 가리왕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밖에도 할머니 뒤에 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림 한지선

민우는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는 죽은 듯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더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생님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아버지는 잠자듯 그렇게 누워 있었다. 선생님은 당장 아버지의 닫힌 눈을 열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한 번 감긴 아버지의 눈은 영 열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버지 가슴에 귀를 댔다.

“아직 맥박은 있어. 빨리 병원으로 가야겠다.”

선생님이 급하게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제서야 민우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 민우는 아버지가 그냥 자고 있는 줄 알았다. 민우는 아버지의 몸으로 쓰러졌다.

“아버지!”

“거기 병원이지요? 여기 정수사 화개암인데요. 응급을 요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너무 급해요!”

선생님은 전화를 끊고 아버지의 뺨을 때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반응이 없었다.

“곧 구급차가 올 거다. 언제부터 이 상태로 계셨냐?”

“어젯밤에 들어오셨는데, 아침까지는 말을 했어요. 제가 그만 잠드는 통에......”

민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생님이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아버지의 입에다가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긴 머리칼이 아버지의 얼굴에 얼크러졌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선생님은 아버지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갖다 댔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댔다.

“어른들한테 전화를 하든지, 병원에 전화를 하든지 했어야지.”

선생님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삐뽀, 삐뽀!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왔나 보다.”

선생님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할머니는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윽고 들것을 든 아저씨들이 뛰어올라왔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코에 산소 호흡기를 들이댔다.

“괜찮겠습니까?”

선생님이 초조하게 물었다.

“천만다행입니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맥박은 뛰고 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아버지는 구급차로 실려 갔다.

“아버지!”

민우는 울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