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고 싶은 날1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그 검은 가방도 없었다.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민우의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고, 민우가 학교에 입고 갈 옷가지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방바닥은 따뜻했다. 

 민우는 상을 덮은 노란색 보자기를 들춰 보았다. 민우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와 멸치볶음, 미역국이 먹음직스러웠다. 그러나 민우는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캄캄한 밤에 산에서 너구리를 잡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민우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고향에서 감자하고 배추 농사를 지을 때 먹는 사람들에게 해롭다고 농약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집에서 키우던 닭 한 마리를 잡지 못하던 아버지였다. 그런 건 모두 엄마 몫이었다. 아버지를 밀렵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많던 돈, 더구나 밤늦게 나가 새벽에나 돌아오는 아버지, 그리고 그 검은 가방에 들어있던 털 가죽들, 그것은 틀림없이 아버지가 밀렵꾼이라는 증거였다. 아버지를 찾으러 왔던 두 아저씨의 얼굴도 떠올랐다.

 민우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마당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재희 생각이 났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해만 지면 왜 재희 생각이 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재희와는 겨우 한 해를 함께 학교에 다닌 것밖에 없는데...... 이제는 누구하고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    

 민우는 다시 천천히 생각을 했다. 그 이상한 아저씨들, 공사장에 나가지 않는 아버지, 아버지의 손과 얼굴에 있던 상처들, 그리고 아버지 주머니에 가득 들어 있던 돈다발...... 아버지는 틀림없는 밀렵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아버지가 무서워졌다. 머리칼이 쭈뼛쭈뼛 곤두섰다. 이제 아버지 얼굴을 어떻게 보나? 민우는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민우는 아버지가 차린 밥상 근처에도 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해가 완전하게 기울자 배가 고팠다. 민우는 방에 들어와 불을 켰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대로 앉아서 아버지를 기다릴 참이었다. 그리고 따질 생각이었다. 민우는 내일 학교 갈 일도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말이 많다고 소문난 상필이 엄마가 학교를 찾아올 것이고, 그렇다면 교무실로 불려 내려가 선생님에게 심한 꾸중을 들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재희가 없어서 생긴 일 같았다. 반 아이들이 행여나 아버지가 밀렵꾼인 것을 알면...... 재희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배고픔만은 감당할 수 없었다. 민우는 금방 굳게 결심한 것도 잊고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민우가 늦은 저녁을 마쳤을 때는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꾸만 내리감기는 눈을 치켜뜨며 민우는 잠을 쫓기 위해 애썼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가 돌아오는 새벽까지 기다릴 참이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이상하게도 밤새도 울지 않았다. 민우는 몰려오는 잠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그러나 텔레비전도 이미 정규 방송이 끝나 있었다. 민우는 학교에서 빌려온 동화책을 펼쳐들었다. 《우리 산 이야기》란 책이었다. 그러나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민우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밝은 아침이었다. 역시 아버지는 느긋하게 민우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민우는 얼른 부엌으로 나가보았다. 그 검은 가방이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있었다. 민우는 아버지가 깰까 봐 살며시 방문을 닫고 밖으로 가방을 들고 나왔다. 굉장히 무거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었다.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 쳤다.

 마찬가지였다. 너구리, 오소리는 물론이고, 청설모, 족제비들의 가죽이 가득 담겨 있었다.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말 못 하는 짐승들 괴롭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지.’ 민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아버지가 민우를 불렀다.

 “민우야!”

 “......?”

 그러나 민우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부엌에서 뭐해? 얼른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민우는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무서웠다. 영화에서 본 무지막지한 강도들보다 몇 배나 무서웠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나 사슴을 잡기 위해 총을 든 사람들, 텔리비전을 보면서 민우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지리산에서 없어진 반달곰, 동강에서 사라진 수달도 모두 밀렵꾼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민우는 알고 있었다. 스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차라리 도둑이나 강도가 낫지, 불쌍한 산짐승들을 잡는 밀렵꾼. 민우는 자꾸만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래?”

 민우의 얼띤 표정을 보고 아버지가 물었다.

 “...... 언제 왔어요?”

 민우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일이 새벽에 끝났어.”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연안부두요?”

 “그렇지. 거기 가야 일거리를 구하니까.”

 “밤에도 일을 해요?”

 “햐, 이 자식 별 걸 다 물어보네. 그러고 보면 우리 민우가 이젠 다 컸어.”

 누워 있던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서 민우가 대견스러운 듯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렇지만 민우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아버지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집이 싫지?”

 민우는 아버지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돈이 많이 생겼으니 빨리 다른 집으로 이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민우는 그런 아버지가 불쌍했다. 아버지만 아니면 힘닿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울음을 참고 있었다.

 “야, 너 항상 따뜻한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했잖아?”

 “난 아파트 싫어요!”

 아버지는 아주 이상하다는 듯 민우의 얼굴을 살펴보며 다시 물었다.

 “너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니오.”

 “그런데?”

 민우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머리에 있던 생각은 모두 달아나고 없었다.

 “오늘도 나갈 거예요?”

 “아암, 그래야지. 그래야 우리 민우하고 행복하게 살지.”

 민우는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섰다. 

 아침 햇살은 밝았지만 민우의 마음은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책가방을 맨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고 있었다. 민우는 퐁당 수로 옆의 엿보기산에 올랐다. 반 친구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상필이에게 주먹을 휘두른 자신이 부끄러웠다. 밀렵꾼 아들인 주제에...... 아이들이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