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붓다

우봉규 장편동화 '마리산'4

2021-08-17 (화) 08:37	우 봉규 \|

이상한 아저씨들1

동막리 해수욕장이었다.

바다에는 사람 하나도 없었다. 바다에는 통통배 하나도 없었다. 인천항이 멀리 보이는 해수욕장 모래벌판에는 지난여름 사람들이 버린 오물들이 드문드문 널려 있었다. 비틀어진 소나무들은 의연하게 바람의 장난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매기도 끼룩대지 않았다. 마리산의 잘새들만이 늦은 오후의 햇빛을 조르고 있었다. 이따끔씩 좁은 흙길을 가로지르는 경운기의 함성이 마을의 고요를 깨뜨릴 뿐이었다. 어두운 해님의 그림자가 꼴딱 마을을 삼켰을 때까지 민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림 한지선

마을에서는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진 것과 동시에 세찬 바닷바람이 민우의 볼을 때렸다. 그런데도 잠바의 뒷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민우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공사가 한창인 제2강화대교를 바라보면서.

배가 쪼르륵거렸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다. 물론 쌀이 떨어졌지만, 그래서가 아니었다. 라면도 있었고, 국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정수사 마당에 있는 공중전화로 아버지가 가르쳐 준 공사장 번호를 눌렀지만 그런 사람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어디 갔을까?

이상하게 벌써 며칠째 재희도, 스님도 보이지 않았다. 정수사도 텅 비어 있었다. 항상 정수사에서만 있는 공양주 할머니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재희가 보고 싶었다. 그동안 정수사로 올라갈까 하다가 그만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재희는 어기에서 뭘 하고 있을까?

민우는 천천히 화개암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좁고 가파른 흙 계단을 올라오는 도중에 민우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마당에서 나는 소리였다.

혹시 아버지가? 민우는 단숨에 마당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부리나케 올라온 민우 앞에 낚시꾼 차림의 아저씨 둘이 마당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민우의 머리엔 방안에 어지럽게 널렸던 그 발자국들이 떠올랐다.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네가 민우냐?”

민우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아저씨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키가 조금 큰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보다 키가 작은 아저씨는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인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민우는 직감적으로 이 아저씨들이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을 알았다. 민우는 한눈에도 낚시하는 아저씨들을 알고 있었다. 겨울에 낚시를 하는 아저씨들이라면 따뜻한 방한복에 두툼한 가죽 장갑을 끼고 있어야 했다. 진짜 낚시꾼이면 따뜻한 우물가에 서성거릴 것이다. 이곳을 자주 다닌 낚시꾼은 누구나 정수사의 우물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키 작은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왜 말이 없어?”

민우는 그 아저씨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버지 어디 갔어?”

민우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얘 벙어리냐?”

키 큰 아저씨는 녹지 않은 눈 위에 담배를 아무렇게나 비벼 끄며 민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민우의 어깨를 잡았다.

“우리는 아버지 친구야. 아버지 어디 갔는 줄 모르니?”

키가 큰 아저씨는 아주 친절하게 말하기 위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어깨를 잡힌 민우는 아저씨들이 그저 두렵기만 했다. 자꾸 자기의 아래위를 살피는 아저씨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힐끔힐끔 주위를 살피는 모양이 아버지 친구 같지는 않았다.

민우는 멀뚱멀뚱 두 아저씨를 쳐다보기만 했다.

키 작은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정말 말 안 해!”

가슴이 울렁거렸다. 더럭 겁이 났다.

“몰라요!”

민우는 밀려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억지로 대답했다.

“벙어리는 아니구먼.”

키가 큰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키가 작은 아저씨가 민우 옆에 쪼그려 앉았다. 아저씨의 몸에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만 말하면 된다. 착하지.”

아버지를 왜 찾을까?

민우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저씨들, 아버지 친구라고 얘기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 친구는 민우도 거의 알고 있었다. 카센터를 하는 종호 아저씨, 슈퍼를 하는 규천이 아저씨, 식당을 하는 금남이 아저씨...... 그 아저씨들은 모두 고향 말씨를 쓰는데 지금 이 아저씨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침에 아버지가 방에 있었니?”

민우는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햐, 이 자식 지 애비 닮아서 보통이 아니네. 머리 굴려?”

키가 작은 아저씨가 죽은 무화과나무 화분을 발로 걷어찼다. 그것은 민우가 아끼는 화분이었다. 지난가을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 왔던 것이다. 단번에 양쪽으로 갈라지는 화분을 바라보는 민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가슴이 떨렸다. 갑자기 재희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민우는 요즘 서러울 때면 웬일인지 재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림 한지선

“너 몇 학년이냐?”

키 작은 아저씨는 한 움큼의 눈을 씹어 먹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민우의 눈엔 그저 아득한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마리산도, 정수사도, 멀리 보이는 인천 앞바다도 모두 눈에 잠겨 있었다. 민우는 아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면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어서 이 아저씨들한테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야, 우리가 널 잡아먹냐?”

“아무래도 평택으로 튄 것 같은데......”

“아니야, 성구 말로는 틀림없이 집에 있었대.”

두 아저씨는 민우가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키가 작은 아저씨가 민우의 손목을 휘어잡았다. 거칠고 큰 손, 억센 힘이었다.

“야, 열쇠 내놔!”

민우의 손에는 방문을 여는 열쇠가 들려 있었다. 그렇지만 민우는 손을 펴지 않았다. 열쇠를 주면 그 아저씨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민우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겨울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이 자식이!”

“안 주면 지난번처럼 그냥 따고 들어간다.”

키가 작은 아저씨는 꼭 쥔 민우의 주먹을 펴서 열쇠를 뺏어들었다. 그래도 민우는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너도 따라 들어와!”

민우는 꼭두각시처럼 그 아저씨들을 따라 움직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민우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열쇠로 문을 딴 두 아저씨는 대뜸 방으로 들어갔다. 키가 큰 아저씨가 방문을 열어젖히자 방 안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이 자식, 금방 나간 모양인데?”

키가 작은 아저씨가 키 큰 아저씨를 돌아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방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재떨이에 수북한 담배꽁초들, 널려진 소주병들, 그리고 반 정도 남은 냄비의 라면, 아무렇게나 널려진 옷가지들...... 아버지는 무언가에 쫓겨 급하게 나간 게 틀림없었다. 성품이 깔끔한 아버지는 아무리 술이 취해도 방 하나만큼은 깨끗하게 치웠다. 아저씨들은 신발을 신은 그대로 방안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마구 뒤졌다. 부엌도 뒤지고, 보일러까지 뒤졌다.

“혼자 다 갖고 튄 게 틀림없어.”

“그러게 그놈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

키가 작은 아저씨가 키가 큰 아저씨에게 눈을 흘겼다.

“그놈이 그럴 줄 알았나?”

“난 처음부터 알아봤다니까. 겉으론 순진한 척하지만 눈이 옆으로 쪽 째진 게 사람 여럿 죽일 놈이야.”

“그러니까 지 마누라도 도망갔지.”

키가 작은 아저씨가 키가 큰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 자식 원래 뭐 하는 놈이었어?”

“촌에서 감자하고 배추 농사짓던 놈이래. 먹고살려고 공사장만 돌아다녔는데, 넙성리 공사장에서 성구를 만난 모양이야.”

“아니, 성구란 놈도 정신 나갔지. 어떻게 농사짓던 놈하고 일을 같이 해.”

“순진한 줄 알았겠지.”

“순진 좋아하네. 그 자식이 얼마 갖고 튀었는 줄 알아. 우리가 일한 거 다 갖고 날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