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산 아이들1 

 눈이었다. 

 마리산은 갑자기 눈을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먼 고려산, 혈구산, 길상산은 물론이고 바로 앞에 있는 엿보기산도 희미하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미 눈은 마리산 전체를 덮고 있었다. 이쯤에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무서운 눈보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우와 재희가 서 있는 마리산 중턱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나무들이 얼고 있었다. 바람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데, 눈발은 웃녘에서 아래녘으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눌러쓴 모자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 위에는 눈이 오고, 산 아래에는 비가 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산을 뽀얗게 덮은 안개가 저편으로 사라졌다.

 “좋다!”

 재희가 산 아래 쪽을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내려갈까?”

 “아니.”

 눈이 오지 않는다면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정스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산행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갑작스런 함박눈에는 시간을 짐작할 수 없었다. 민우는 해가 질 때를 생각해서 주머니에 커다란 볼펜처럼 생긴 손전등과 초콜렛을 준비했다. 모두 정수사 주지인 몽연스님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산은 재희가 민우보다 몇 배나 더 잘 탔다.  

 민우와 재희는 모두 ‘절집 아이’라고 불렸다. 재희는 정수사에 살고, 민우는 정수사 옆의 화개암에 살았다. 당연히 항상 붙어다녔다. 둘 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시오리길을 함께 걸어 다녔다. 그리고 같이 산을 타고 바닷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루에 두 끼 이상은 밥도 함께 먹었다. 더구나 민우 아버지는 제2강화대교 공사의 촉박한 일정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그리고 몽연스님 또한 절에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강화도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절’이라는 뜻을 가진 화개암은 원래 정수사에 딸린 조그만 암자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었다. 그 빈 절터 자리에 컨테이너 하나가 덩그라니 서 있었다. 그것이 바로 민우네 집이었다. 전국의 공사장을 떠돌아다니는 아버지를 따라 민우는 일년에 몇 번 씩 이사를 했다. 그렇지만 강화도에 와서는 근 일년 넘게 움직이지 않았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제2강화대교 공사가 오래 걸리는 탓이었다.

 “밥 먹었어?”

 “응.”

 “할머니가 좋아하는 국수 해 놨는데, 왜 안 왔어?”

 “자꾸 그런 얘기 좀 하지마.”

 민우는 재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싫었다. 재희는 아침에 학교 갈 때도 밥 먹었냐고 물었다. 처음에 몇 번 짜증을 냈지만 도무지 소용이 없었다. 재희의 마음을 민우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스님이 걱정 많이 해.”

 “괜찮아.”

 “아버지는?”

 민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벌써 보름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화도 없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그래도 민우는 조금도 불만이 없었다. 꽁꽁 언 아버지의 손과 발을 보며 집 나간 엄마를 원망했다. 민우에게는 아버지가 전부였다.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민우는 고향을 떠난 뒤로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하수도 청소, 벽돌 나르기, 인천 선착장 인부...... 아버지는 닥치는대로 일했다. 민우는 아버지의 지친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을 했다. 날마다 고향을 떠나자고 아버지를 조르던 엄마..     

 바람이 쌩쌩 지나갔다.

 “정말 멋있다.”

 재희가 눈을 뭉쳤다. 그러고는 산 아래로 던졌다. 민우도 눈을 뭉쳤다. 그렇지만 민우는 한번 뭉친 눈을 돌처럼 단단하게 계속 뭉치기만 했다. 예뻤다. 눈을 뭉쳐 던지는 재희의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민우는 물끄러미 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마음속에 울컥거리는 돌덩어리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정든 고향 마을 산내리를 떠나올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민우는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다.

  민우와 재희는 똑 같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들이 함박눈 내리는 마리산을 타는 것은 무리였다. 민우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재희도 그걸 알고 있었다. 민우는 재희가 멀리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희가 무턱대고 마리산을 가자고 했으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이번의 등산이 둘이서 함께 하는 마지막 나들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민우는 아무 생각 없이 재희처럼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맸다. 

 민우는 코가 깨어지고 싶었다. 산에서 굴러 떨어져 팔과 다리, 머리가 깨어지고 싶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민우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는 재희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참성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함박눈 내리는 마리산.

 마리는 순수한 우리말로 ‘머리’를 뜻한다. 그것을 한자로 써, 마니산으로도 불렀다. 오늘도 참성단을 올라 정수사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마리산 중턱의 계단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 왼쪽에 민우와 재희가 항상 다니는 그들만의 오솔길이 있었다. 굴참나무와 떡갈나무숲길이었다. 조그만 계곡으로 들어가는 개울 옆길이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눈꽃에 옷이 젖었다. 계곡을 비껴내리던 함박눈은 어느새 진눈깨비로 변했다. 마리산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골짝골짝 능선능선마다 날씨가 달랐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육지 바람과 거센 바다 바람이 부리는 조화 때문이었다. 소복소복 숲에 쌓이는 눈은 녹다가 얼다가 하면서 산길을 질척하게 만들고 있었다. 

 소나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완만한 산등성이는 이미 완전한 겨울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껍질이 하얀 나무가 적갈색으로 빛나고 있는 것은 눈을 맞은 탓이었다. 산등성의 완만한 경삿길엔 눈이 수북히 쌓였고, 떡갈나무숲은 온통 은색으로 변했다. 눈에 젖은 숲은 이미 모든 것을 숨겨 버렸다. 

 “우리 담임 선생님 전근 가셨대.” 

 “원래 서울 계셨잖아. 그리 가셨겠지.”

 민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재희가 눈뭉치를 아래로 던졌다. 재희가 선생님 말을 꺼낸 것은 무엇인가 말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재희는 다시 눈을 뭉쳤다. 손끝이 아렸다. 재희의 마음도 그 손끝처럼 아렸다. 재희는 자기가 멀리 떠난다는 것을 민우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자꾸만 엉뚱한 말이 나왔다. 그래서 계속해서 문을 뭉쳤다.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얼큰한 사람이 뭔 줄 알어?”

 “술 먹은 사람이겠지.”

 “아니, 얼굴이 큰 사람.”

 그러나 민우는 웃지 않았다. 

 그래도 재희는 다시 말을 붙였다.

 “그러면 엉뚱한 사람은?”

 “너같은 애.”

 “아니, 엉덩이가 뚱뚱한 사람.”

 그제야 민우가 싱긋 얼굴에 웃음을 달았다. 재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데도 막상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다시 뭉친 눈을 산 아래로 던졌다. 힘차게 던진 눈이 어디 떨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리산은 뿌연 안개가 덮혀 있었다. 그렇지만 민우와 재희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낮은 물론이고 밤에도 몽연스님을 따라 여러 번 왔던 것이다. 마리산 구석구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다. 

 “저건 뭐야?”

 재희가 화들짝 놀랐다. 산중턱엔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는 조그만 오두막이 있었다. 사람이 있는지 그 오두막의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아마도 정해 놓은 등산로를 피해 다니는 엉뚱한 등산객들을 막기 위해 관리 사무소에서 만든 임시 오두막일 터였다. 그 연기를 보고 있자니 민우는 멈 고향 산내리 집이 생각났다. 

 문경 새재 안에 있던 집, 방밖으로 오늘처럼 이렇게 눈과 비가 내렸고, 그 모습을 엄마 아버지와 함께 바라본 적이 있었다. 민우는 산만 오르면 고향집 생각을 했다. 고향 마을에 또래 동무는 없었지만 산이 엄청나게 많았다. 사방을 돌아보면 하늘만 빠끔히 보이던 곳이었다.

 민우가 이곳 강화도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바로 집 옆에 작은 산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우는 틈만 나면 산에 올랐다. 산에 올라 아래녘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장래 희망을 물어보는 칸에 민우는 자랑스럽게 ‘농부’라고 적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비웃었지만 민우는 싱긋 웃었다. 농부는 언제나 산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민우는 알고 있었다.

 민우는 산그늘이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오고, 달님이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는 줄을 민우는 알고 있었다. 민우는 걸음을 멈추고 지난 일을 생각했다. 그 옛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도적떼가 터를 잡고 살았다는 새재 여우골 산밭, 그곳에서 감자를 캐던 엄마는 어디 있을까?

 엄마가 집을 나가던 날, 엄마는 아버지와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첩첩산중에서 살 바에야 집 앞 감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겠다고. 사실 민우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민우는 자연스럽게 아버지 등 뒤에 서 있었다. 엄마가 민우와 아버지를 한꺼번에 쏘아봤다. 그 때까지 아버지는 감자와 배추 농사만 지었다. 그러나 엄마가 그렇게 훌쩍 떠나고 난 다음, 아버지는 죽어도 떠나지 않겠다던 고향집을 떠났다. 그리고 전국 이곳저곳의 공사장을 돌아다녔다. 그래서 민우는 무려 네 번이나 전학을 해야 했다.

 재희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능선 마루턱엔 키 작은 진달래들이 옹기종기 도톰한 꽃눈들을 달고 있었다. 숲길은 눈으로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눈 내린 숲길은 빠르게 얼어붙고 있었다. 언젠가 마리산에 올라왔다가 빙판이 된 돌길에서 다리를 다친 적이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더 하얗게 변하고 언덕의 눈도 많아졌다. 눈이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신발이 젖었다.”

 “자꾸 털어.”

 “그래도 자꾸 붙어.”

 재희가 발을 동동 굴렀다.

 “겁 안 나?”

 “하나도.”

 “갑자기 눈이 내리면 꼭 귀신이 나타난다는데.”

 “다 거짓말이야.”

 “방에 불 들어와?”

 “그런 거 자꾸 묻지마.”

 “걱정되니까 그렇지.”

 “네 걱정이나 해.”

 민우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을 때, 재희는 먼 산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까지 명랑한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민우는 재희에게 슬쩍 다가갔다.

 “어디로 가니?”

 마침내 민우가 말을 시작했다. 재희는 마른 침을 삼켰다. 후련하게 다 말하고 싶었다. 틀림없이 알면서 묻는 말이었다. 재희가 말없이 민우를 쳐다봤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마음과 달리 재희는 그저 민우만 쳐다보고 있었다. 민우가 다시 말을 붙였다.

 “스님은 어디 가셨어?”

 “......서울 조계사.”

 “거긴 왜?”

 “여기 계속해서 있으면 안되냐고 알아보러 가셨어. 그런데...... 가긴 가셨지만.....”

 재희는 나무가지에 붙은 눈꽃을 털어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렇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왜?”

 “벌써 여기서 삼 년도 더 지냈어. 원래 이 년만 있어야 하는데......”

 “그럼 맨 날 옮겨 다녀야 돼?”

 “스님들은 한 군 데 오래 못 살아.”

 재희가 슬픈 눈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민우가 눈을 뭉쳤다.

 마리산의 겨울은 아름다웠다. 민우는 그걸 알고 있었다. 물론 재희도 그걸 알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산에 올라온 걸 알면 틀림없이 몽연스님이나 공양주 할머니가 혼을 내시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특히 민우보다 재희는 나무들이나 풀들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몽연스님을 따라 산에서만 살았기 때문이었다. 재희는 다시 마른 침을 삼켰다. 민우가 다시 말을 붙였다.

 “어디 가냐니까? 

 “가리왕산 불암사.”

 “그 산이 어디에 있어?”

 “강원도.”

 민우는 고개를 떨궜다. 태어나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지만 강원도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재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가리왕산이라는 곳으로 간다니...... 민우의 가슴은 세찬 눈보라 앞에서도 터지지 못했다. 웬만한 일은 이 마리산에 올라 오면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다시 민우가 앞장을 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