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동안 전통단청이 현존하는 건축을 사진으로 기록해 온 노재학 작가가 그 간의 작업을 책으로 내놓았다. 

작가는 궁궐과 전통사찰을 비롯 전국의 서원, 향교 등의 유가건축, 종택의 사당과 충효각, 정려각 등을 두루 답사하며 단청을 조사했다. 유교, 불교뿐만 아니라 도가, 무가의 관련 건축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종합조사였다. 저자는 불교건축의 경우 전국 110여 곳의 전통사찰 내 약 200 채의 법당 건물에 100년 이상 된 단청이 현존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단청은 세계의 자랑거리로 한국 고유의 전통미술이자 문화유산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종합적이며 통시적인 조사활동이나 자료는 없다. 오히려 개발과 신축, 자연재해, 방치 등으로 변형이 가속화되는 위험 속에 있다. 더구나 국민 대다수가 단청의 정수를 제대로 감상한 경험이 전무에 가까울 정도로 접근 기회가 없었다. 궁궐이나 사찰 법당의 처마 밑 감상 수준에 머물고, 또 단청에 대한 개념이나 이해도 그 정도에 머문다. 

궁궐의 건축 내부는 대부분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창덕궁 낙선재 상량정이나 부용정, 주합루, 신선원전 등의 내부단청을 한번이라도 본 국민이 몇 사람이 있을까? 그에 비해 전통사찰의 법당은 누구나 출입은 가능하다. 하지만 법당의 내부 단청도 쉽게 보거나 세밀히 살펴보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많은 곳에서 법당 내부에 등을 달아둔다. 단청문양의 정수는 건축 내부 천정반자에 있다. 법당 천정반자의 단청장엄에는 특별히 당대 최고최선의 소재와 재료, 조형기법이 망라되는 경향을 가진다. 하지만 등에 가려 보기 어렵다. 등이 설치돼 있지 않다 하더라도 단청문양을 살피기엔 쉽지 않다. 천정이 높기도 하고, 어두워 문양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저자는 말하곤 한다. 

“단청 사진전시회를 열면 스님들도 오십니다. 큰스님께서 와서 보시곤, 우리 절에 이런 문양이 있었나? 며 놀라워하시기도 합니다.”

저자는 법당에 빛이 드는 시각을 기다렸다. 법당의 좌향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낮은 아침이나 늦은 오후 무렵이면 법당에 빛이 들어온다. 통상 전통건축의 바닥은 대청마루 형식이다. 그 시각이면 반질반질한 마루에 빛이 반사하여 천정을 환하게 밝히는 극적인 찰라가 생긴다. 저자는 그 순간들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을 검토하고 다시 찾아가고, 그렇게 같은 장소를 수십 차례씩 방문해서 기록한 사진들이 본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법당 내부 촬영 허가를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그런 어려운 조건과 과정을 통해 한국의 단청문양 세계를 사진으로 결집했다. 

책은 크게 서문과 6장의 본문, 부록으로 구성했다. 

▲1장 ‘고귀한 빛’에선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을 비롯해서 안동 봉정사 대웅전 등 모두 16 곳의 법당 단청문양을 조명한다. 조선시대 목조건축 단청장엄의 초기 형식을 살펴 볼 수 있다. 단순하고 간결한 고식의 고전주의 경향을 띤다.

▲2장 ‘화엄의 빛’에선 부산 범어사 대웅전, 경주 불국사 대웅전 등 경상지역의 13 곳 법당 단청문양을 집중 분석한다. 고식의 원형들이 장중한 기념비적 건축 장엄 과정에서 표준의 정형을 정립하는 경향을 가진다. 단청문양들도 엄숙하고 중후하며 묵직한 느낌의 바로크적 양식을 보여준다. 

▲3장 ‘중중무진의 빛’에선 여수 흥국사 대웅전, 해남 미황사 대웅보전,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등 17, 18세기 서남해안지역의 꽃 단청문양을 살핀다. 이 장에선 18 곳의 법당 꽃 단청문양을 펼친다. 같은 시기 영남지역 지역의 법당 천정 단청장엄에선 중심문양을 가운데 두고 다른 문양들로 겹겹이 감싸는 나선형 심층 형식의 독특한 특징이 나타난다. 

▲4장 ‘적멸의 빛’에선 구례 화엄사 각황전,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등 14 곳의 법당 꽃 단청문양을 실었다. 붉은 색 바탕에 금니 선묘 형식의 단청문양이 인상적이다. 문양은 관념적 상징성과 추상성이 강한 추상주의 경향을 가진다. 

▲5장 ‘통도사의 빛’에선 양산 통도사 대웅전, 대광명전, 용화전 등 통도사의 법당 9 곳의 꽃 단청문양을 집중 조명한다. 한국에서 하나의 사찰에 가장 많은 수의 전통건축과 조형장엄이 현전하는 통도사. 하나의 사찰공간에서 조형미술의 전통적 흐름과 전승을 통시적으로 추체험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6장 ‘법고창신의 빛’에선 근현대시기의 꽃 단청장엄을 살펴본다. 모두 39 곳의 법당 꽃 단청문양을 실었다. 이 시기의 단청문양에선 장엄에 철학적 내용과 생명력을 불어 넣었던 문양의 세부는 개략적인 묘사 수준으로 그치고 색채를 강조하는 감각적인 경향을 보인다. 

책의 권말엔 부록 성격으로 <책에 실은 건축, 단청용어 해설>, <전통 단청문양 현존하는 사찰 분포지도>를 실어 독자들의 단청문양 답사에 유용한 정보를 싣고 있다. 

한편 저자는 『한국의 단청』이라는 큰 제목 속에 <1권. 화엄의 꽃>, <2권. 연화머리초>, <3권. 넝쿨문양과 화반>, <4권. 용과 봉황>, <5권. 비천>, <6권. 한국의 사찰벽화 명작> 등 모두 여섯 권의 책을 연속 출간할 계획이다. 

저자 노재학 ∥ 출판사 미진사

216 * 285 * 35 mm /1695g ∥ 512쪽

정가 5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