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람과 작은 사람을 가르는 길 

코로나19 기세가 숙어졌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금보다 기온이 높아지면 ‘사찰 답사가 힘들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어디인가 다녀와야겠다며 찾은 절이 안양에 있는 삼막사입니다. 집에서 원거리가 아니고, 삼막사가 소재한 삼성산이 몇 번 올랐던 관악산과 이웃한 산이어서 마음이 동했습니다. 

평일이고 이른 시간인지라 공영주차장은 텅텅 비었습니다. 자동차를 주차시킨 다음, 안내소 직원에게 이 길이 삼막사로 향하는 길인지를 확인하고는 외통수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관악산에 오르려는 등산객으로 붐볐을 터인데, 한갓지게 걸은 지 1분 2분도 않되 이정표를 만났습니다. 이제까지 걸은 도로의 오른쪽에 등산로가 있으며, 삼막사로 이어졌음을 알려주는 이정표입니다. 삭막한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곳보다는 숲으로 뻗은 등산로가 훨씬 재미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망설임 없이 등산로를 택해 오르기로 했습니다.     

등산로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제법 빽빽해 숲 냄새가 짙었습니다. 바람소리가 들린 것인지 스치는 느낌인지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고요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사이사이로 하늘을 날아가며 내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등산로로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가 일어났습니다. 등산로가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길)과 붙어있는 길이어서, 드러난 돌들이 물에 닳아서 둥글어진 생김도 있지만 각진 놈도 널려져있어서 걷기 불편하고 위험스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길로 다닌 사람이 적어서인지, 얼마 전에 온 비로 흔적이 없어져서인지 제대로 가야 할 길을 찾기 어려운 때문입니다. 가면서도 갈 길을 제대로 찾아낸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고, 내가 처음으로 길을 내는 것처럼 느껴져 ‘이러다가 엉뚱한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마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안이 된 것은 가끔 왼쪽으로 포장된 도로가 슬쩍 비친다는 것입니다. 사실 보이기는 하지만 포장도로와 등산로 사이는 계곡이 깊어 저쪽으로 건너갈 수는 없었고, 그래서 어디쯤 올라가다가 포장도로로 건너갈 수 있는 곳이 나오면 건너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누구도 걷지 않았던 곳에 가면서 ‘나는 이쪽으로 걸어가겠다’라는 결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처음은 당연하고 두 번째 세 번째로 가는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꽉 막혀있는 길을 뚫어낸 위대한 분들은 물론 자기만의 성취욕으로 용기를 낸 이들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으로부터 ‘사람들이 흉악하여 사람들과 싸우기 좋아하고, 욕하며 헐뜯기를 좋아하고, 남들을 때리고 생명을 빼앗는다’는 말씀을 듣고서도 불법을 전하겠다며 그곳으로 전법 여행을 떠난 부루나 존자는 참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생명을 바쳐가면서까지 마음먹은 길을 꿋꿋이 걸으셨던 분들이 있었기에 이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 이 중생도 불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알만큼이나마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30분 이상을 걷다가 포장도로로 건너뛸 수 있는 곳이 보이기에 ‘옳다구나’하고 포장도로로 갈아탔습니다. 어쩌면 가야 할 등산로가 포장도로보다 거리가 짧고 이제까지 오른 길보다 훨씬 아름다울 수도 있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새가슴에서 일어났던 조마조마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소인배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드나드는 사람의 몸이 크지 않건만

일주문은 이곳부터는 신성한 곳이니, 찌들은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들어오라는 문입니다. 사바세계에서 일어나는 오만가지 번뇌를 털어내고, 진리를 찾겠다는 하나의 마음만 품고 지나야 할 문이겠지요. 큰 사찰이라면 “법보종찰”이니 “고불총림”이니 등 사찰이 하는 큰일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보통은 산 이름과 사찰 이름만 새겨놓습니다.

삼막사는 현판 앞머리에 “원효대사, 의상조사, 윤필거사”를 써 놓음으로써 세 분의 큰 스님께서 허름한 막을 짓고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셨고, 이런 까닭으로 이 산을 삼성산이라 이름하였음을 나타냈습니다. 삼막사 일주문을 보면서 이제까지 위압감과 호화스러움에 놀라고 주눅 들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일주문은 담장과 이어져있지 않으며, 문짝도 달지 않은 때문에 누구든지 출입할 수 있어서 “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문입니다. 진리를 찾겠다는 사람이 들어서기를 바라며 세우는 문이라면서 그렇게까지 크게 세워야 하는지 의아하기도 합니다. 어느 집이든 문 폭이 서너 명이 들어설 수 있다면 예의 바른 주인의 마음을 포근하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제까지, 문밖에서부터 유난스레 호들갑을 떨면서 맞아들인 집에 들어가서 마음 편했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조국 수호하는 전쟁에서의 승리 또는 타국을 정복하는 전쟁에서 승리한 공로를 기념하려고 세운 개선문은 하나같이 크고 화려합니다. 그런 문을 들어서면서 세속적인 욕망을 털어내고, 자기의 수양이 부족함을 되돌아볼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누렁이

일주문을 지나서 여러 갈래로 갈리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길가에는 동서남북 쪽에 펼쳐진 법당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세워졌고, 길 복판에는 그곳이 선방(禪房)인 양 선정에 든 견공이 앉아있었습니다. 견공은 삼매에 들어 있다가 정적을 깨트린 방해꾼을 보고 싶었는지, 눈을 흘깃 뜨는가 싶더니 금세 닫아버렸습니다. 견공의 그 태도는 ‘시답지 않은 놈이 수행을 방해하는구먼’ 하는 듯해서 송구하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견공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습니다.  

‘자네 왔는가? 내가 선정에 들어있었는지 궁금한가? 왜 이곳에서 수행하는지 궁금한가?  옛날 조주 스님의 제자들이 묻고 또 캐묻더니, 자네도 내가 불성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한가? 나에게 불성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네 할 일이나 하게’

견공 앞을 지나쳐 큰 법당 쪽으로 가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견공은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눈을 감은 채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견공의 경지에 놀라움이 일어났습니다.  

성지순례는 가까운 곳으로

‘원효스님께서 창건했다’는 이야기를 증명하려는 듯 삼막사에는 원효굴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도중 해골바가지에 든 물로 갈증을 해소한 다음날 “일체유심조”를 체득하셨다고 전해집니다. 평택시 근처 바위굴 이야기와 대구 팔공산에 있는 원효굴과 시자굴 그리고 봉화군 청량산에 있는 원효굴 이야기를 떠올려보니 스님께서는 여러 곳의 굴(窟)에서 수도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눈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야 “굴”이라는 이름을 붙일 듯한데, 이곳은 깊이가 이삼 미터에 불과합니다. 스님께서 ‘막을 치고 수행하셨다’는 이야기를 따르면 이곳이 막을 치고 계셨던 곳이 아닐까 해봅니다.

바닥 돌을 편평하게 다듬어낸 후, 앙련을 새긴 연화좌에 죽비를 든 원효스님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좌우 측 암벽은 자연 그대로지만 뒷벽과 천정은 눈비를 피할 수 있도록 축대 쌓듯 자연석을 쌓아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겹처마로 지붕을 올렸는데 모두가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아 원효스님상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저잣거리에서 미친 사람 같은 행동으로 파계하였다는 이야기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실천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염불을 할 수 있도록 불교의 대중화에 힘쓰셨다고 전해지는 스님입니다. 당나라 유학을 마다하고 깊은 산을 다니며 수행정진하신 유적지를 찾고, 스님의 행적을 가까이에서 살피는 것이 멀리 떠나는 성지순례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원효굴 아래에는 삼막사를 원효스님이 창건하였고,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가 중건하였으며, 고려 말기에는 지옹선사며 나옹선사 등의 고승께서 머무셨다는 기록이 쓰인 삼막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뵙고 싶으면 

칠성각을 가는 길옆 암벽에는 지석영의 형 지운영이 꿈에 관음보살을 친견한 후, 보살이 내려준 “귀(龜)”자 셋을 음각으로 새긴 “삼귀자(三龜字)”가 있습니다. 지석영은 우리나라에 근대의학을 도입하였고, 우두를 실시한 큰 공적이 있는 분입니다.

지운영은 뵙기를 염원하던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장생불사 동물로 전해지는 거북이를 주셨으니, 꿈에서 깨어났을 때 환희심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분명히 감격에 온몸을 떨면서 벅찬 마음으로 글씨를 썼을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글이 짧아 암벽에 새겨진 “귀”자가 상형문자인지 전서체인지는 모르지만, 거북이를 나타낸 글자임은 알 수 있습니다. 글자는 시작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끊어짐 없이 한 획으로 이어졌고, 군데군데 찍은 동그란 점은 거북이 등껍질을 나눈 육각형의 중심처럼 재미있습니다. 한 획으로 길게 이어나간 글자는 같은 굵기로 거북이를 그리며 이어지다가 끝부분에 가서는 꼬리처럼 가늘어졌습니다. 좌우 두 글자는 구부러진 부분에서 둥근 굴림을 주지 않아서 단순함과 뚜렷함을 좋아하는 현대인 취향의 고딕체 출현을 예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안내판에는 “좌측 상단에 불기 2947년 경신중양 불제자 지운영 경서(佛紀 二九四七年 庚申 重陽 佛弟子 池雲英 敬書)”가 새겨졌다고 쓰였는데, 얕게 새겨서인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풀이하면 ‘1920년 음력 9월 9일 불제자 지운영이 관세음보살을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썼다’입니다. 일본으로 망명한 개화파 김옥균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지운영은 영변부에서 2년 6개월간 정배생활을 하고 1888년(37세)에 풀려났습니다. 그 후 삼막사 위에 백련암을 짓고 기거하였는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을 하는 등 미술작품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바세계의 번잡스런 일에서 벗어난 듯싶습니다. 삼귀자 글자를 쓴 1920년은 지운영의 나이가 69세일 때이니, ‘장수하고 싶은 욕망이 부풀 나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세음보살을 현몽하거나 보살의 가피를 받는 것은 한 번의 기도나 발원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 마음을 맑게 하고, 관세음보살을 시시때때로 생각하고 간절하여야 꿈에서 뵐 수 있고 또 재난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운영이 84세에 운명하였으니, 요즈음 평균연령을 헤아려보더라도 남자 84세는 대단한 것이기에 관세음보살을 현몽한 가피로 거북이처럼 장수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칠보전 

원효굴 아래에서 계단으로 이어진 길을 10분 정도 걸으면 다다르는 칠보전은 작지만 아름다운 법당입니다. 두 칸짜리 한옥인데 칸마다 각각의 지붕을 가졌고, 앞쪽 칸보다 뒤쪽 칸의 지붕을 높게 올려 2층 집으로 보입니다. 우진각지붕을 놓으면서 뒤쪽은 맞배지붕으로 끝냄으로써 산등성이 끝자락 암벽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서까래와 부연을 긴 재목으로 쓴 까닭에 추녀와 사래도 길어져서 작고 좁은 집이 ‘처마 깊고 화려한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서까래 끝에 걸어놓은 초매기가 부연을 들어 올려 처마는 하늘로 멋지게 치솟았습니다. 

칠성을 모시는 법당에 비단무늬의 금단청을 입혔는데, 흰색으로 가칠한 추녀와 사래의 중앙을 검은 선 하나가 긋기단청으로 불거져서 ‘이것이 단청의 멋이야’라고 말하는 듯 보였습니다.

내림마루를 마무리하는 망새 기와가 멀리 안양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힘차게 섰는데, 겉으로는 칠보전의 위엄을 보이는 것이고 안으로는 칠보전에 잡신들이 들어옴을 막아내 불자들의 안녕을 지켜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안내판에 〈삼막사 마애삼존불〉은 영조 39년(1763년)에 서세준의 시주로 조성되었고, 그 이듬해에 삼존불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당이 세워졌으며, 이후 개보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쓰여 있습니다. 법당에 조각된 마애삼존불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음은 알 수 있지만, 암막새 수막새의 문양을 보건대 칠보전 재축이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