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코끼리인가? 코끼리와 사자인가? 

날씨 화창한 날, 한 걸음에 다녀올 수 있는 절을 검색해서 찾은 곳이 천안시 태조산에 자리한 전통사찰 성불사입니다. 천안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열 개의 정거장을 지나면 동네 끄트머리인 아파트 단지에 이르게 됩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몇 걸음을 걷지 않아서 ‘왜 이리 조용하지?’라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산으로 오르는 포장도로가 제법 넓었는데, 휴일에는 산행을 하는 사람들로 상당히 붐빌 것이라 짐작하였습니다. 

외길이어서 의심 없이 ‘성불사를 가는 길이 맞으리라’고 걷다 보니 금세 일주문에 다다랐습니다. 3익공의 공포와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느라 일주문의 기둥은 상당히 굵었고, 금빛으로 쓰인 “태조산 성불사(太祖山 成佛寺)”편액이 단청과 잘 어울렸습니다. 

일주문을 이룬 평방과 창방목이 넓고 두터웠는데, 그 두 개가 널빤지(편액) 한 장으로 가려진 것을 보면서 도(道)를 배우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한 방에 떨쳐버리게 하는 “할(喝)”이 떠올랐습니다. 

일주문 좌우에는 사자와 코끼리 석상이 자리하였습니다. 사자는 지혜로 가득한 대지문수보살을 상징하고 코끼리는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대행보현보살을 나타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처님을 협시하는 위치가 바뀌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왼쪽과 오른쪽이 정해져 있느냐. 반 발짝만 틀어 제켜도 다른 세상이 보이는 것을. 사자와 코끼리가 움직이는 동물인데, 한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웃었습니다.

자신의 화려한 색깔을 마음껏 뽐내는 영산홍이 피어있는 길을 5분쯤 걸었을 정도에 땀이 나는 것은 제법 경사진 길인 때문입니다. 그리고서는 갈지자로 구부러진 길이 시작되었는데, 지척에 절이 뻔히 보임에도 이리저리 휘감아 힘들게 오르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인연이 쉽지 않음을 알게 함입니다. 

그런 길옆에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늠름한 자세로 서있는데, 성주사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보였습니다. 이는 예부터 조상님들이 마을 입구에 선 느티나무를 당나무로 신령하게 모셔온 때문이고, 일주문을 지나서 통과하는 천왕문의 사천왕을 대신해서 불법을 수호하고 불법에 귀의한 자를 지켜줄 것을 기원하며 심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름길이 끝난 자리에 세워진 안내판은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가 나이 839년, 키와 가슴둘레는 14m와 5.6m로 보호해야 할 나무로 지정하였음을 알게 합니다. 성불사 창건 시기에 관한 기록물이 없어서 성불사가 그동안 펼쳐낸 부처님의 가르침의 크기를 알 수 없지만, ‘나만큼 살아 보시게나’하듯 기지개를 편 느티나무 속에는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있을 겁니다.

십이지신장(十二支神將)

성불사에서 처음 닿는 당우는 범종루입니다. 경사가 급한 땅에 범종루를 지을 수 있는 만큼의 터를 닦은 탓에 앞마당은 좁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지어진 범종루는 우러러볼 수밖에 없어서 더욱 장엄해 보였습니다. 불전사물을 충분히 매달 수 있는 널찍한 세 칸의 누각은 팔작지붕 아래의 모든 부재가 화려하게 단청 옷을 입었습니다. 

계자난간을 보면서 뭔 일(?)로 심통 난 소목장이 동자기둥을 볼품없이 삐쩍 마른 닭다리 모양으로 깎아냈고, 그것이 아쉬운 단청장은 범종루를 뜻깊게 하려고 ‘기둥 사이를 채운 열두 개 궁창에 십이지신장을 그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이지지(地支)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지닌 신장은 칼과 창 그리고 언월도 등을 지닌 무장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성불사를 찾은 신도들이 ‘자기 띠와 맞는 신장을 찾아 무병장수를 축원하시라’고 그렸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범종은 두 시간마다 그만큼의 종을 쳐서 현재의 시간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종소리를 듣고 그에 맞춰 생활하면서 자신들과 십이지지를 상징하는 동물이 공존하면서 살아간다는 자연관을 지녔을 것입니다.  

대웅전

암벽을 바짝 등지고 있는 대웅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인 팔작지붕집인데, 좁은 칸으로 아담하게 지어졌습니다. 지붕을 이룬 청기와는 햇빛에 더 짙어져 단청과 어우러져 대웅전을 한층 더 화려하게 치장시켰습니다.

어간 기둥을 묶어 낸 평방과 창방뺄목은 봉황과 용두 그리고 연꽃을 새겨 위엄을 주었고, 포벽마다에는 신광과 두광이 뚜렷한 부처님을 그렸습니다. 공포를 화려하게 꾸며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뒤쪽 벽의 어간에도 용두를 올려서 반야용선의 뜻을 다시 되짚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대웅전을 반야용선이라 하는 까닭은 번뇌로 가득한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실어 나르는 배라는 비유인데, 뒤쪽 벽에 꼬리는 없고 앞쪽과 같이 용두가 있어서 반야용선이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겠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든 때문입니다.

성불사가 고려 태조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그때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100여 년 전이어서, 그 당시에 지어져 지금까지 남아있는 당우는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을 보면, 여러 차례에 걸쳐 중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통상 한 채의 건물에는 같은 모양의 주춧돌을 사용하거나 앞뒤 쪽만 같은 모양을 사용하고, 측면 평주는 모양이 다른 주춧돌을 사용하는 것과 다르게 성불사 대웅전은 여러 모양의 주춧돌이 들쑥날쑥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춧돌 아래 사각초반을 둔 연꽃잎 모양의 주춧돌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기둥이 밀려나가지 않도록 실용적인 쇠시리를 둘렀는데, 풍화로 마모된 상태여서 가장 오래된 주춧돌이라는 알게 합니다.    

연꽃잎 모양을 지닌 주초	팔각주초
자연석 그대로를 사용한 덤벙주초	기둥 밑둥치가 부식되고 있는 주초

아쉬운 것은 대웅전 뒤쪽 기둥 중 밑둥치가 제법 많이 썩은 상태로 버티는 놈이 있는데, 언제 동바리기둥을 넣어 보수할 때 키가 큰 주춧돌을 놓든가 지금의 주춧돌에 빗물 고임이 없이 흘러내려가도록 물길을 쪼아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