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  

지금까지 부처님께서 천신과 인간계의 중생을 향한 한없는 연민으로 설해주신, 최상의 행복으로 이끄는 34가지의 지침들, 그러니까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가르침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지나온 여정을 돌이켜보면 모두가 열반을 향해 가는 소중한 과정들이었지요. 열반의 증득에 의한 해탈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지이기에 예서 더 가야 할 경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해탈에도 차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탈은 통찰 수행으로 얻어지는 반야로 증득되는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도(道)와 과(果)의 마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다 알다시피 도와 과의 마음은 성인의 흐름에 들었을 때 얻어집니다. 열반을 증득해야 수다원도, 사다함도, 아나함도의 마음을 거치면서 잠재 성향의 탐·진·치 번뇌가 부분적으로 또는 단계적으로 소멸되고, 아라한 도에 이르러서는 모든 잠재 성향의 열 가지 족쇄와 업력이 모두 제거되는 것입니다. 모든 업력들이 가라앉고, 모든 재생의 근거가 사라져서 다시는 어떤 세상에도 오온이 형성되지 않아 태어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해탈에도 수다원의 열반에 의한 해탈, 사다함의 열반에 의한 해탈, 아나함의 열반에 의한 해탈, 아라한의 열반에 의한 해탈이 있는 것입니다. 김진태 박사(전 동국대 교수)는 최근 펴낸 역저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에서 열반과 해탈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해탈이란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나아가 삼계(三界)의 생로병사로부터의 해방이다. 처음으로 열반을 증득한 수다원에서 시작된 해탈의 정도가 아라한에 와서 완전한 해탈이 있게 되는 것이다.”    

-김진태 저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 137쪽

이것은 아라한의 열반, 즉 ‘완전한 해탈’에 이르기 전에는 가야할 길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열반을 성취하고서도 궁극의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지켜야할 지침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지침들은 성인의 흐름에 든 분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니, 범부의 입장에서는 궁극의 경지, 완전한 해탈, 최고의 행복에 이르는 과정이 어떤 단계를 거치는가를 살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을 증득하여 성인에 흐름에 든 수행자들에게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안온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 단계는 필연적으로 범부가 수다원도에 이르게 되는 단계, 즉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에서 11번째 지혜에 해당되는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Saṅkhārupekkhāñāṇa: 行舍智)’와 견줄만한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단계는 범부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지혜에 해당합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곧바로 성인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지요. 또 35번째 지침의 ‘세상일에 부딪쳐도’는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갖가지 부침(浮沈)들, 온갖 영고성쇠(榮枯盛衰)에 흔들리지 않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모름지기 최고의 행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살이의 많은 일(돌발사태)에 맞닥뜨려도 마음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He whose mind does not flutter by contact with worldly contingencies.)는 것이지요. <망갈라숫따(행복경)> 중 이 부분은 “Phuṭṭhassa lôka dhammêhi cittaṃ yassa na kampati”입니다. 유정(有情)적인 세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lôka) 또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들(dhammêhi)에 마음이 움직이거나(kampati) 영향을 받거나 오염되지(Phuṭṭhassa) 말라(na)는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온갖 일들’을 경전에서는 팔풍(八風), 즉 ‘여덟 가지 세간의 법’으로 설명합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가 세상을 전개시키고, 세상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 안에서 전개된다. 여덟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득과 불이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가 세상을 전개시키고, 세상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 안에서 전개된다.

-‘세상 원리의 경2’, <앙굿따라니까야> A8.6, 전재성 역

경전에서 밝힌 것처럼, 여덟 가지 세간의 법은 lābha(gain, 이득)와 alābha(loss, 불이익), ayasa(ill repute, 불명예)와  yasa(fame, 명예), nindā(blame, 비난)와 pasaṃsā(praise, 칭찬), sukha(pleasant, happy, 행복)와 dukkha(pain, 불행) 등입니다. 

경에 따르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세간의 법은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들에게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잘 배운 고귀한 제자에게도 역시 여덟 가지 세간의 법이 생겨 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수다원 도과를 이루어 성인의 흐름에 든 수행자에게도 팔풍은 경계의 대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에게 이득이 생겨나면, 그는 ‘이러한 이득이 나에게 생겨났는데, 그것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불이익이 생겨나면 ‘이러한 불이익이 나에게 생겨났는데, 그것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Dutiyalokadhamma suttaṃ-세상 원리의 경2’, <앙굿따라니까야> A8.6, 전재성 역

그렇다면 배우지 못한 범부와 잘 배운 고귀한 제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경에 따르면 범부는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득이나 명예, 칭찬, 행복이 발생하면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는 여덟 가지 세간의 원리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는 이득과 손실,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에 집착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팔풍에 흔들리는 삶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해 <앙굿따라니까야>에서 게송으로 거듭해 말씀하십니다. 

이득과 불이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

이러한 인간의 원리들은 항상하지 않고 변화하고야 마는 것이네.

이러한 것들을 알고, 사띠가 있고 현명한 님은 

변화하고야 마는 것들을 관찰한다.

원하는 것이라도 그의 마음을 교란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것도 혐오를 일으키지 못하네.

그것에 대하여 매혹이나 혐오는

파괴되고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으니

경지를 알고 티끌의 여읨과 슬픔의 여읨을 올바로 알아

님은 존재의 피안에 이르네.

-‘세상 원리의 경2’, <앙굿따라니까야> A8.6, 전재성 역 참조

여덟 가지 세간의 법은 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 마치 바람과 같은 여덟 가지 팔풍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완전한 해탈세계인 저 언덕으로 건너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덟 가지 세간의 법’이 있으면 반대로 ‘여덟 가지 출세간의 법’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덟 가지 출세간의 법은 무엇일까요? 여덟 가지 출세간의 법은 당연히 ‘팔정도’일 것입니다. 

세간에는 세간의 법이 있습니다. 세간은 인간이 살아가는 하나의 질서가 있는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는 ‘윤회하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이득과 불이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라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출세간에는 출세간의 법이 있습니다. 출세간법은 인간이 윤회하는 연기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질서 있는 법을 말합니다. 그것이 팔정도입니다. 팔정도에 의해서 윤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팔정도에는 ‘바르다’는 의미로 모두 ‘삼마(sammā)’가  붙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여덟 가지 원리를 ‘ariyo aṭṭhaṅgiko magg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귀하고 성스런 여덟 가지 원리라는 것입니다. ‘고귀하고 성스럽다’는 뜻의 ‘아리야(ariya)’가 들어있으므로 문자적 의미로 보아도 팔정도가 출세간의 법임이 확인된다고 하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