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열심히 정진하라(tapo)
살다 보면 ‘정신 줄’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채 ‘멍 때리고’ 사는 것입니다. 예컨대 피어난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몽롱한 상태가 되거나, 아름다운 이성(異性)을 발견하고 욕정을 일으켜 이성(理性)을 잃는 것, 값비싼 보석을 발견하고 불현듯 탐심(貪心)을 일으키는 것 등입니다.
정신 줄을 놓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인생은 참 힘겹고 고단해집니다. 반대로 정신 줄을 놓치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후회 없는 삶, 고통 없는 삶, 지혜로운 삶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정신 줄을 놓고 살면 갖가지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고, 반드시 후회할 일이 닥쳐옵니다. 더 큰 문제는 정신 줄을 놓치고 산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입니다.
정신 줄을 놓치는 현상은 마음이 탐진치(貪瞋痴)의 삼독심에 휘둘릴 때 일어납니다. 어떤 대상을 인식했을 때, 대상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탐진치라는 세 가지 해로운 마음의 뿌리가 작용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건전하지 못하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다주는 결과를 낳는 것이지요. 아비담마에 따르면, 탐욕과 성냄은 서로 배타적이어서 한 찰나의 마음에 같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은 8가지,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은 2가지로 세분됩니다. 세 번째 해로운 마음의 뿌리인 어리석음은 모든 해로운 마음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이나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에 어리석음이 공히 뿌리로 작용한다는 것이지요. 마음의 구조를 이렇듯 명쾌하게 분석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정신 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이 깊어지면 늘 정신 줄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찰나 찰나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마음(sati)이 망상 등의 장애요인에 휘둘리지 않고 또렷하게 지속되는 경지, 이것이 곧 궁극의 행복인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인 것이지요. 잘 알다시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비구들에게 내린 마지막 가르침[유훈]이 ‘불방일 정진(不放逸 精進)’, 즉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입적에 드실 때 처음 내린 당부가 아니라 수시로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가르침입니다. 그만큼 ‘불방일 정진’이 갖는 중요성이 큰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부처님의 유훈을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그렇게 뭉툭하게 받아들여서는 핵심을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찰나 찰나 알아차림을 놓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또렷하게 관찰하라는 매우 예리하고 엄중한 가르침이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테라와다 불교의 언어로 말한다면, ‘한 찰나도 사띠(sati)를 놓치지 말라! 한 번 사띠 놓치는 것을 열반을 성취할 고귀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받아들이라!’가 될 것입니다.
마음은 눈·귀·코·혀·몸·생각의 육근(六根)이 각각의 대상들[六境, 색·성·향·미·촉·법]과 마주칠 때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힘써 바르게 정진하는 것, 즉 수행은 감관(感官)을 수호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여 오욕락을 억제하는 것과 상통합니다. 이런 노력들을 후대 논사들은 종교적 내핍(religious austerity), 하심(self-mortification), 또는 스스로를 엄격하게 만드는 것(selfchastisement) 등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감관을 다스리는 힘겨울 수밖에 없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 조금씩 오욕락에서 멀어지게 되고, 오래지 않아 세속적인 것에 대해 염리(厭離)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능엄경>에서는 안이비설신의를 다음과 같이 여섯 도적으로 비유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난다야, 네가 보리를 닦으면서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관찰하지 못한다면, 허망한 감관과 경계[根塵]가 어느 곳이 뒤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뒤바뀐 곳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번뇌의 근본을 항복시켜서 여래의 자리를 취하겠느냐? 아난다야, 세상의 매듭 푸는 사람을 살펴보아라. 맺힌 곳을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푸는 방법을 알겠느냐? 허공이 너에게 무너뜨림을 당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리라. 왜냐하면 허공은 형상이 없어서, 맺히거나 푸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네 앞의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마음의 여섯이 도적의 앞잡이가 되어 스스로 자기 집안의 보배를 겁탈하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하여 시작 없는 겁 동안 중생세계에 얽히는 일이 생겼기 때문에, 물질세계를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니라.”
10여 년 전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학승 가운데 한 분인 미산 스님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안이비설신의]을 어떻게 맑고 조화롭게 가꿀 것인지를 주제로 설법한 적이 있었습니다. 육근이 청정해져야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불교가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법문이었지요. 미산 스님은 ‘육근을 청정하게 하자’는 운동을 주창하면서 △맑고 아름답게(眼) △맑고 조화롭게(耳) △맑고 향기롭게(鼻) △맑고 담백하게(舌) △맑고 활기차게(身) △맑고 훈훈하게(意)라는 여섯 가지의 현대적으로 해석된 슬로건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육근청정운동’을 통해 전통의 창의적인 재해석과 불교음악 발전, 사찰음식 확산, 수행 운동 전개 등 구체적인 실천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었지요. 안타깝게도 이 제안은 미산 스님의 기대와는 달리 종단 차원의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제어하는 일은 이처럼 수행의 요체로 거론될 만큼 매우 중요합니다. <쌍윳따니까야> ‘여섯 접촉의 영역에 대한 경(Chaphassāyatanasutta)’에는 그 중요성이 잘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때 세존께서 웨살리 시의 마하 숲에 있는 꾸따가라 강당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세존께서는 여섯 가지 접촉의 영역에 관한 법문으로 수행자들을 교화하고 북돋우고 고무시키고 기쁘게 하셨다. 또한 수행승들은 그 뜻을 이해하고 사유하고 온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숙고하며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들었다. 그때 악마 빠삐만이 ‘여기서 수행자 고따마가 여섯 가지 접촉의 영역에 관한 법문으로 수행자들을 교화하고 북돋우고 고무시키고 기쁘게 하고 있다. 수행자들은 그 뜻을 이해하고 사유하고 온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숙고하며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듣고 있다. 내가 수행자 고따마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눈멀게 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마 빠삐만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무섭고 두려운 큰 소리를 내었다. 마치 땅이라도 갈라지는 듯했다. 그때 한 비구가 다른 비구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마치 땅이라도 갈라지는 듯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땅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악마 빠삐만이 너희들을 눈멀게 하기 위하여 온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것은 악마 빠삐만이다.’라고 알아채고 악마 빠삐만에게 시로 말씀하셨다.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과 법은
세상 사람을 유혹하는
참으로 무서운 미끼여서
세상 사람은 거기에 말려드네.
나의 제자는
사띠를 확립하여 그것을 뛰어넘어
악마의 영토에서 벗어나
태양처럼 널리 빛나네.”
그러자 악마 빠삐만은 ‘세존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 부처님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라고 알아채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그곳에서 즉시 사라졌다. -전재성님 옮김 참조
<망갈라숫따(행복경)>의 31번째 행복지침 ‘열심히 정진하라(Tapo)’는 문혜, 사혜를 거쳐 본격적으로 수혜, 즉 수행을 통해 반야의 지혜를 얻어 가는 단계에 해당됩니다. 무루의 반야를 증득하면 성인의 흐름에 들게 되고, 이어 반야바라밀을 완성할 때 마침내 궁극의 목표이자 최고 행복의 경지인 완전한 해탈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지요. ‘열심히 정진하라’는 행복지침은 ‘사띠를 놓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간곡한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