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해설서는 워낙 많이 나오는 터라, 책 한 권이 출판되었다는 것이 그리 큰 뉴스거리는 되지 못한다. 따라서 그 해설 내용이 갖는 수준이나, 내용에 깃든 저자의 내공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선(禪)의 견지를 철저히 견지하는 중급자용’이라는 형용어구를 단 금강경 해설서가 나왔다. 무각 스님의 금강경 해설서 <그대 삶이 경전이다>(불광출판사)가 그 책이다. 금강경과 선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사실 어떻게 불가분의 관계인가, 라고 되묻는다면 딱히 답을 할 수 없는 터라 우선 이 책에 관심이 갔다. 또 하나는 ‘중급자용’이라는 표현을 했다는 데 눈길이 갔다. 중급자라! 이 말은 그 수준에 자신이 있다는 표현이 아닌가. 마지막으로는 저자 무각 스님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아직은 젊은 편에 속하는 스님이신데, 상당한 실력과 수행력을 갖춘 분이라는 이야기를 바람결에 들었던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되어 저자 무각 스님과의 점심공양 자리가 만들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참석했던 것은 스님을 직접 뵙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책을 소개하는 것이란, 사실 출판사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충실히 인용하는 것이 정답일 경우가 많다. 책을 만들면서 기울였을 정성, 그리고 교정 등의 작업을 거치면서 편집자만큼 이 책의 내용을 잘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에는 출판사의 보도자료에 의지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정확하게 내용과 특징을 파악한 것이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왠지 이 책 <그대 삶이 경전이다>는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통독까지는 아니지만 스킵이라도 제법 꼼꼼하게 해서 소개를 할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금강경 해설서를 소개하면서 그만 마음을 머물러버렸다고나 할까.
다 아는 이야기지만 금강경은 불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전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말처럼 대부분의 금강경이 입문자를 대상으로 해설하다 보니 한 책에 금강경이 견지하고 있는 반야공의 이해나 선의 견지를 온전하게 드러낸 책자는 많지 않다. 이것은 곧 이 책이 금강경에서 견지하고 있는 반야공의 이해나 선의 견지를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이야기겠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의 저자인 무각 스님은 여러 선지식들로부터 수행력을 인가 받았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조계사, 불광사, 공생선원 등에서 참선과 금강경 강의를 지도한 수행과 실수를 겸비한 분이라고 한다. 더구나 저자는 도심 한복판에서 선을 지도하고 금강경을 강의하면서 시간의 리듬이 빠르고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더욱 선이 필요하고 금강경이 필요함을 절감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송나라 시대의 선승이었던 야부 스님의 송(頌)을 중심으로 하나하나의 철학적인 명제를 따라 금강경을 읽어나가는 형식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고 있는 집필 원칙은 선(禪)이다. 무각 스님은 선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뿌리가 부처 성품임을 절실하게 가르쳐주고, 바로 지금 이 자리, 일상 속의 수행을 통해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임을 역설한다. 이 책의 제목을 <그대 삶이 경전이다>, 부제를 <선으로 본 금강경>이라 한 까닭이기도 하다.
출판사는 “이 책을 한 구절 한 구절 읽는 동안 그리고 그 내용을 자기의 안목으로 만들어 가며 독자들은 스스로 선의 견지를 깨달아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이 책을 읽어가면서, 기자는 참 잘 쓴 금강경 해설서라는 느낌을 받았다. 간결한 문장, 확신에 찬 해설, 곳곳에서 번득이는 선지와 탁견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자성이라든가, 영원불멸이라든가, 진리의 본체라든가, 본래면목, 참 나, 자성자리, 무심자리 등 ∼자리 등의 뭔가 남아 있음을 암시하는 용어들을 보면서 못내 개운치 않음을 느낀 것 또한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완전한 지음에 이를 수 있는가? 오온이 나라는 망념을 쉬면 온통 그것이 되어 통하게 된다. 나다, 너다 상대적으로 분별하는 둘의 세계를 참 자기 성품에 내려놓고, 참 자성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 천지에 온통 나 아닌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된다.” <25페이지>
참 자기성품, 참 자성, 이 세상천지가 온통 나 아닌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된다? 이런 해설이 금강경의 정신에 부합하는지, 과문한 탓으로 영 헷갈린다. 혹시 대아(大我) 또는 근원적 자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그러므로 금강경의 진정한 정신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망념’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이다.
“근원으로 돌아가라. 모든 것을 그것이 나온 근원에 전부 놓고 맡겨라. 돌아가는 것을 좇아가지 말고 돌아가는 근원으로 들어가라. 이렇게 되면 남북동서에 어떻게 작용이 되든지 마음대로 왕래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성자리는 동서남북을 쥐고 있는 자리이므로…” <113페이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기자는 또 다시 헷갈린다. 근원? 근원에 맡겨라? 우리의 자성자리? 글쎄, 이것이 파유경(破有經)이라고 불릴 만큼 어떤 실체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금강경의 무섭도록 철저한 정신에 맞는 것일까? 혹시 이런 말이 도가에서 말하는 도와, 힌두에서 말하는 아트만, 불교 아닌 제반 철학과 종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런 것마저도 철저히 깨어버리라고 부처님은 경의 이름에 ‘금강’을 붙여 넣으신 것일터인데. 무각 스님의 해설이 왠지 자꾸 궁극적 실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왜일까. 이 역시 기자가 무지한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색계의 초선천이 바로 수다원과다. 누구나 살다보면 어느 날 문득 충격을 받고 허공을 쳐다보고 묵연히 앉아서 과연 사는 게 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제대로 사는 것인가를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 수다원과에 들어가는 것이다.” <132페이지>
수다원과는 중생의 번뇌 10결 가운데 세 가지 즉 유신견, 계금취견, 법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 경계이다. 이 과를 이루면 비로소 성인의 경계에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수다원과는 선정으로 이뤄지는 단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처님은 제 8선정, 즉 비상비비상처정에 들어서도 그 길이 올바른 길이 아님을 간파하고 수정주의를 벗어나셨다. 수다원과는 선정이 아니라 강력한 위파사나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초선의 경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수다원과를 설명하는 이 부분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체의 경계를 자기의 자성에 내려놓고 지켜보면 이것을 이름하여 색과 소리에서 벗어났다 하고…” <153페이지>
역시 또 헷갈린다. ‘자성에 내려놓고 지켜보면?’이라니! 자성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표현은 기자처럼 아직 올바른 견해가 정립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독이 될지 모르시지는 않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맨 마지막 구절, “무엇이 자성의 부처인가./ 팔팔은 구십구이다.” <357페이지>에서 기자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자성의 부처라는 표현도 그렇고, 역대 선사들의 표현을 답습한 것도 신선함 또는 청량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되레 이 구절을 보며 아상의 그림자는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건 그런 생각을 낸 사람의 책임일까? 15,000원
*저자 무각(無覺) 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에서 다년간 해외 포교를 하였다. 도심 속에서 선(禪) 수행을 지도하는 대표적인 참선 지도 선사로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사인 조계사에서 참선을 지도하였다. 현재 도심포교의 선구도량인 잠실 불광사 불광선원 선원장, 창동 공생선원 선원장으로 선을 통해 우리 존재의 뿌리가 부처성품(佛性)임을 일깨워 진정한 삶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이끌어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