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정찬주 작가의 <행복한 무소유>를 읽고 

십여 년 전, 필자는 아내와 함께 정찬주 소설가의 글방 이불재(耳佛齋)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하룻밤 머물렀던 방이 ‘무염산방(無染山房)’이란 편액을 단 별채였다. 장작불을 지펴 바닥이 절절 끓는 온돌방에서 속진을 모두 내려놓은 채 무소유가 되어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었다. 편액의 글자는 법정 스님께서 생전 이불재에 들러 직접 쓴 것이다. 출재가의 경계를 넘은 사제 간의 돈독함이, 편액이 머금은 풍설의 나이테만큼이나 켜켜이 쌓여있던 기억이 새롭다.  정찬주 작가의 필력이야 거론이 불필요한 것이지만, 고희에 이르러도 그 기세가 화수분처럼 이어지니 무진장(無盡藏)이란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필자도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 어느 날 비결을 물으니, 답변은 “나는 글쓰기로 수행을 하고 있다네.”였다. ‘작가가 글쓰기를 게을리하거나 멈춘다면, 그는 작가가 아니라 전(前) 작가’라며 종종 전화로 경책을 전하던 일침과 궤를 같이하는 말씀이다.  

그동안 펴낸 수많은 저술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는 책이 있겠냐만 이번 책은 이름이 ‘행복한 무소유’여서 더욱 눈길이 쏠렸다. 마침 필자도 미디어붓다에 ‘행복경(망갈라숫따)’을 연재하고 있는 터라 책 이름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저자의 성품을 빼닮은 듯, 푸근하면서도 정갈한 표지의 <행복한 무소유>(정민미디어 펴냄)를 받는 순간, 필자는 지체 없이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책 서평 제가 한번 써보겠습니다.” 

저자는 산방을 찾는 손님들로부터 ‘무소유가 무엇이냐?’는 공통된 질문을 받곤 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책 <행복한 무소유>는 그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인 셈이다. 자세한 답변이야 찬찬히 책을 음미하면 될 것이지만, 표지에 적힌 잠언 같은 다음의 세 문장이 그 엑기스인 듯싶다.

“무소유가 지향하는 것은 나눔의 세상이다.

 나눔은 자비와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자비와 사랑은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_5쪽

30대 중반에 법정 스님을 처음 만난 작가는, ‘샘터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스님의 글을 책으로 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님과의 인연을 이어가다가 재가제자가 되었고,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저잣거리에 살되 물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법정 스님의 산문집을 10여 권이나 만들었기에 스님의 ‘무소유’가 지닌 참 의미가 무엇인지 저자만큼 정확히 파악하고 깨달은 이도 드물다. 

이 책은 법정 스님 입적 11주기에 즈음해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헌정하는 산문집이다. 이 책에는 법정 스님의 말씀과 일화를 통해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탐색하며 사색해온 저자의 온유한 글들이 가득 담겨 있다. 책을 읽어가노라면 저자가 무소유에서 깨달은 행복과 자유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가 차향처럼 읽는 이에게 스며든다. 특히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며 무소유를 실천하고, 또 법정 스님에게 1천억 원대의 대원각을 기증해 길상사를 개원하도록 한 김영한 여사의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 ‘행복한 무소유’의 의미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길상사가 개원한 뒤, 어느 날 일간지 한 기자가 여사에게 “1천억 원대의 재산을 기부한 것이 아깝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재산은 그 사람(白石)의 시 한 줄만도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고 무소유로 돌아간 여사 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여사는 그 말을 하는 동안 첫사랑 백석을 떠올리며 행복해했다. 비로소 여사의 가슴속에서 백석의 시가 빛나기 시작했다. 대원각이란 소유를 비우자 사금처럼 가슴에 박혀 있던 백석의 시가 무소유의 발광체인 양 드러났던 것이다. _32~33쪽

‘무소유는 나눔이다.’라는 제목의 글(40쪽~)에서 저자는 법정 스님이 당신의 방식대로 아무도 모르게 나눔을 실천해왔음을 밝힌다. 스님은 당신이 추구했던 흔적 없는 나눔[무주상보시]을 해왔고, 지근거리에서 스님을 지켜보아왔던 저자조차도 10년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인세 수입을 어려운 고학생들에게 나누어주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실조차 세상에 알려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입적 직전 제자들의 강권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밀린 병원비를 내지 못했을 정도로 스님의 형편은 궁했다. 그 엄청난 인세 수입을 모조리 고통받는 고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법정 스님이 소유했던 것은 오직 ‘무소유’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법정 스님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책 곳곳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것도 스님의 진심을 오롯이 아는 유발제자 정찬주의 단심이 보태진 문장을 통해 만나는 것이어서, 감동의 크기가 배가된다. 

김영한 여사가 대원각을 아낌없이 보시하였듯이, 법정 스님이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숭고한 가치를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하셨듯이, 저자도 조금씩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글방을 찾는 이들에게 정성껏 우려낸 차 몇 잔과 압정으로 꾹 눌린 듯 가슴을 아리게 하는 감동적인 덕담을 나눠주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소중한 분들, 주로 남도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에게 호를 지어 선물하는 중이다. 육영사업을 꿈꾸고 있는 사업가에게는 널리 사람을 이익 되게 하라는 뜻으로 홍인(弘人)을, 큰 병원을 운영하는 분에게는 덕으로 환자를 돌보라는 의미로 덕헌(德軒)을, 독서 운동 차원에서 책을 구매하는 분에게는 청안(淸安)을, 성품이 대쪽 같은 아우에게는 송헌(松軒)을, 연꽃물처럼 맑고 넉넉한 성품을 가진 분에게는 인담(仁潭)을 호로 지어 선물했다. 차를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다경(茶鏡)이라는 차호와 함께 다실에 걸 ‘다경향실(茶鏡香室)’이라는 글까지 광주지역의 명필에게 부탁해 선물해 주셨다. 차를 좋아하고, 글과 기사를 쓰는 언론인이니 마땅히 차의 맑은 특성처럼 세상과 대상을 거울처럼 왜곡되지 않게 보는 안목을 가지라는 의미의 호다.   

저자는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인 지난 2월 3일 불일암을 다녀왔다. 돌아가시기 직전 “스님을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외갓집 누님의 물음에 “불일암으로 오세요.”라고 답했던 법정 스님을 떠올리며 불일암을 찾았던 것이다. 불일암을 돌아보며 스승을 다시 만나 어쩌면 스님을 명상한 마지막 산문일지 모를 책의 출간을 보고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책의 문장들엔 애틋함, 아니 그리움이 유독 진하게 묻어있는 듯하다. 

“불일암은 단순한 암자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법정 스님의 유지가 덕조 스님에 의해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다. 위채와 아래채, 우물, 그리고 대나무 세면실, 재래식 정랑 등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큰 절 규모로 변해가는 다른 암자와 달리 소박하고 정겨웠다. 물신(物神)의 손이 범접하지 못하는 청정공간의 암자였다. 선택한 가난이야말로 맑은 가난, 즉 청빈(淸貧)이라고 말씀하셨던 스님의 가르침이 문득 떠올랐다.” _199~201쪽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설한 계기와 무소유를 나눔으로 승화시킨 이야기, 무소유 삶을 살다간 인물 이야기, 무소유의 철학적인 뿌리를 밝히는 산문 등을 추려 모았다. 2부는 소소한 무소유의 작가의 삶을 명상한 글들이다. 자연, 성찰, 인연의 순서로 정리했다. 3부는 ‘법정 스님의 사상과 진면목’이라는 제목으로 월간 <불교문화>에 게재했던 논문 형식의 글이다. 4부는 ‘법정 스님 무소유 암자 순례’이다. 불일암과 쌍계사 탑전, 말년을 지냈던 강원도 오대산 쯔데기골의 수류산방 등이다. 

법정스님 11주기에 맞추어 세상에 선보인 <행복한 무소유>가 하- 수상한 시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