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라
한창 일하던 시절에는 꽤나 자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오계를 받은 불자였는데도 왠지 술자리에 관한한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아예 입에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불음주계를 느슨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불음주계는 불자들, 특히 재가불자들 사이에서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술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술 한두 잔 걸치는 것이 다반사이니 실제로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귀촌해 살면서부터 불음주계를 지키는 환경이 저절로 갖춰져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술 이야기를 하려니, 근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율사로 널리 알려진 일타(日陀)스님의 불음주계(不飮酒戒)를 주제로 한 법문이 떠오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일타 스님은 죄에 성죄(性罪)와 차죄(遮罪)가 있듯이, 계에도 성계(性戒)가 있고 차계(遮戒)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이거나 훔치는 등의 직접적 죄를 금하는 계를 성계라 하고, 직접적인 죄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대로 놓아두면 본질적인 죄를 범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금하는 계가 차계라는 것입니다.
술은 그 자체로 죄는 아니지만, 과하게 섭취할 경우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고 근본 마음을 무명(無明)으로 덮어 지혜를 발현시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술을 먹는 것은 차죄에 해당하고 술을 먹지 말라고 경계를 하는 것은 차계에 해당합니다. 일타스님은 법문에서 술을 마심으로 해서 살생ㆍ투도ㆍ음행ㆍ망어의 네 가지 죄를 일시에 저지른 실례 하나를 소개합니다.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한 거사(居士)가 있었다. 그는 재산도 있고 교양과 학식을 갖추었으므로 부도덕한 행위를 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낮부터 술을 많이 마셔 거의 제정신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했다. 때마침 이웃집 닭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주위를 헤집고 다니다가 그의 집 마당까지 들어왔다. 그는 포동포동 살 오른 암탉을 보자 식욕이 동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닭을 잡아 요리했다. 닭고기를 안주 삼아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되자 그의 취기는 더욱 깊어졌다. 한편 이웃집 부인은 자기 집의 닭이 이웃집에 들어간 뒤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자 수상히 여겨 그의 집을 찾아갔다. 얼큰히 취한 주인에게 닭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집주인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이웃집 부인은 닭고기를 먹는 그를 보고 의심이 생겨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껏 취한 거사의 눈에는 여인의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동물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이웃집 부인을 강제로 겁탈하고 말았다.”
평소 오계를 잘 지키던 불자요, 마을의 지도자였던 거사가 불음주계를 어긴 것이 원인이 되어 살계ㆍ투도계ㆍ사음계ㆍ망어계를 모두 다 범하고 만 사례를 들어 불음주계의 엄중함을 보여준 설법이지요. 사실 이 사례는 초기경전에도 등장하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도 불음주계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는 것은 대승권의 불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 불음주계는 ‘수라-메-라야 맛자 빠마-닷타-나-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Surāmeraya majja pamādaṭṭhā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방일의 원인이 되는’이라는 표현입니다. 불음주계를 설한 목적이 방일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니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일하지 말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실 때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훈에도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방일하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챙기지 못하는, 즉 사띠(sati)를 놓치는 것을 말합니다. 찰나찰나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 다시 말해 ‘멍 때리지 않고, 잡념이나 번뇌 망상에 휩싸이지 않는’, 즉 깨어있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방일하지 않음의 의미입니다. 불음주계는 방일의 터가 되는, 그러니까 방일을 야기하는 곡주 및 과일주를 마시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정신을 흐리게 하고 방일을 부르는 것이 곡주와 과일주 정도였겠지만, 오늘날에는 마약이나 담배, 각종 중독 유발 제품, 게임 등 삼가야 할 다양한 것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했습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방일을 부르는 요인들이 늘어나니, 문명이 발달할수록 수행하기는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인 <디가니까야>의 ‘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Sīgālakovadasuta, D31)’에도 불음주계에 대한 간곡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재가불자의 교과서와 같은 ‘싱갈라까의 경(Sīgālakasutta)’은 ‘시갈라의 경(Sīgālasutta)’ 또는 ‘싱갈라의 경(Sīngālasutta)’이라고도 합니다. 한역경전에서는 ‘선생경(대정1.70a-72c)’, ‘호가라월육방예경’ 또는 ‘불설선생자경’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불자들에게는 ‘육방예경’이라는 경명으로 더 익숙한 경전이지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그저 아버지의 유훈이라는 이유로 매일 아침 여섯 방향으로 절을 하는 싱갈라까를 본 부처님은 “나의 가르침에 여섯 방향으로 절을 하라는 것은 없다”며 긴 법문을 설하십니다. 요약하자면, 부처님은 네 가지 행위의 오염(cattāro kammakilesā), 즉 살생, 투도, 사음, 망어의 네 가지 행위의 오염을 제거하라고 가르칩니다. ‘오계’에 대한 설법인데, 한 가지 ‘음주’에 대한 것이 빠져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법문에서 부처님은 음주에 대한 것만 별도로 다루어 그 의미를 크게 확장하십니다. 여섯 가지 재물의 파멸문에서 첫 번째 항인 ‘취하는 것의 위험’에서 음주에 대한 법문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방일의 근본이 되는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에 취하는 것에는 여섯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현세에서 재산을 손실하고, 불화를 조장하며, 질병의 소지가 되고, 불명예를 낳으며, 뻔뻔스럽게 되고, 지혜를 약화시키는 여섯 가지 경우가 생겨납니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방일의 근본이 되는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에 취하는 것에는 여섯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Sīgālakovadasuta -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 디가니까야 D31, 전재성 역)
대승의 논서인 <대지도론>에도 불음주계를 지키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35가지의 폐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35가지 폐해를 살펴보면, ‘재물이 헛되이 사라지고, 뭇 병의 문이 되며, 다툼의 근본이 되고, 벌거벗고도 부끄러움이 없으며, 더러운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고, 지혜가 가려지며, 얻을 물건을 얻지 못한 채 이미 얻은 물건을 잃고, 숨겨야 할 일을 모두 남에게 발설하게 되며, 갖가지 사업을 이루지 못하고, 취중에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는 깬 뒤에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근심의 근본이 되며, 몸의 힘이 차츰 줄어들고, 몸의 빛깔이 무너져가며, 아버지를 공경할 줄 모르고, 어머니를 공경할 줄 모르며, 사문을 공경할 줄 모르고, 브라만을 공경치 않으며, 취중에 황홀해져서 분별력을 잃은 까닭에 백부 숙부 등의 어른을 공경치 않고, 부처님을 공경치 않으며, 스님들을 공경하지 않고, 나쁜 자와 어울리며, 어진 이를 멀리하고, 파괴한 사람이 되며, 부끄러움을 모르고, 여섯 감정을 지키지 못하며, 색을 따라 방종하고, 남들이 미워하여 보기를 싫어하며, 귀중한 친척과 친지들의 물리침을 받고,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하며, 착한 법을 버리고, 술로 인해 방일한 까닭에 밝은 사람과 지혜로운 어른의 신용을 받지 못하고, 열반을 멀리 여의며, 미치광이의 씨앗을 심고, 죽은 뒤에 고통스런 지옥에 떨어지며, 다시 사람이 되더라도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미치광이가 되는 것’ 등입니다. 이는 ‘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에 나온 여섯 가지 위험을 세분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는 세 가지 물리는 않는 것, 즉 아무리 해도 만족을 못 하는 것이 있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 경에서 “수행승들이여, 잠은 즐기더라도 만족은 없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은 즐기더라도 만족은 없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성적 교섭은 즐기더라도 만족은 없는 것이다.” (A3.104)라고 설법하십니다. 수면욕, 음주, 성욕 이 세 가지는 해도 해도 물리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 가지 중에 음주행위가 포함되어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음주는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는 틀림없는 가르침입니다. 아무리 마셔도 만족할 수 없는 음주, 오로지 불행만 불러오는 음주를,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자라면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음주 등 중독을 부르는 것을 취하는 것은 사띠를 놓치게 하고, 사띠를 놓치면 반야의 지혜를 증득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최고의 행복인 열반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스무 번째 행복 지침으로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라(majjapānā ca saññamo./forbearance with respect to intoxicants)’를 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