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좋지 않음’을 혐오하여 멈춰라
20년 전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산문집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왕자>의 감동이 작가의 산문집을 찾아 읽는 데까지 이어진 것이지요. 부지불식간 서고에서 사라진 이 산문집의 내용 대부분을 망각했지만, ‘인생에서 시간이 많지 않으니 어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고 외치던 생텍쥐페리의 절규는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 이 산문집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정현종 시인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제목의 시 한 편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 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시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전문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어느 날 눈에 띈 광경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치는 것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피리를 부는 순간이나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서 자라는 대파, 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오는 할아버지의 바쁜 발걸음, 누군가에게 줄 장미꽃을 들고 움직이는 처녀들의 모습으로 찰라를 그려내는 시인의 마음이 왠지 바쁘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사랑할 시간이 얼마나 될까?’라고 세상에게, 아니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사랑할 시간은 너무나 짧다’는 것의 외연을 좀 더 넓힌다면 ‘좋은 생각만 하며 살아가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는 것과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행복하고 유쾌하게 살아가고 싶다면 긍정 마인드, 창의 마인드, 착한 마인드를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난관을 극복하게 하는 열정의 에너지를 주고, 창의적인 생각은 진취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낳으며, 착한 생각은 공덕을 쌓는 에너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간혹 주위에서 ‘이번 생은 실패했다’며 자포자기하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부정적이고 쓸모없으며 좋지 않은 생각은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장애로 작용할 뿐입니다. 자신은 물론 주변 인연들까지도 불행으로 이끌게 돼 더 큰 악업을 짓기 십상인 것이지요.
이런 짧고 경솔하며 성급한 생각들은 좋지 않은 의도를 일으키고, 좋지 않은 행동을 유발시킵니다. 좋지 않은 의도와 행동, 즉 좋지 않은 것은 궁극적 행복의 경지인 열반에 다가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좋지 않은 것을 추구한다면 행복은커녕 언젠가는 반드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이든 좋지 않은 것을 삼가지 않고 되레 즐기거나 부나방처럼 좇는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좋지 않은 것은 나쁜 것이고, 악한 것이며, 지루한 것이고, 어둡고 더러운 것이며, 바름[正法]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좋지 않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부처님은 욕망에 몸과 마음이 휘둘리는 것을 좋지 않은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문제는 이 욕망이라는 것이 매우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욕망을 감각적 욕망(kāma, 까마), 집착적 탐욕(rāga, 라가), 갈애(taṇhā, 딴하), 집착(chanda, 찬다) 등으로 구분합니다. 불선(不善) 한 것으로 괴로움의 뿌리가 되는 까마와 깨달음의 장애가 되는 라가, 윤회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딴하는 수행을 통해 반드시 끊어 내야 할 마음작용입니다. 다만 긍·부정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는 찬다는 물욕이나 성욕 따위의 부정적 의욕의 측면은 철저하게 삼가되,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높은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의욕, 수행을 통해 열반을 성취하겠다는 발원으로서의 의욕 등의 긍정적 측면은 선행의 동력이므로 장려되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로 제시한 18번째 지침 ‘좋지 않음을 혐오하여 멈춰라’(Pāpā Ārati)에서의 좋지 않음은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욕망 가운데 감각적 욕망, 즉 까마라는 마음작용에 해당합니다. 불전에서는 감각적 욕망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합니다. 하나는 감각적 쾌락의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적 쾌락을 위한 욕망입니다. ‘욕망의 대상’과 ‘욕망 그 자체’를 욕망이라고 지칭한 것이지요. <숫타니빠타>의 ‘까마숫따(욕망경)’에는 욕망의 대상으로 땅, 금, 소, 말, 노예, 이성(異姓)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발로 뱀의 머리를 밟지 않듯, 감각적 쾌락을 위한 욕망을 피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알아차림(sati, 새김)을 확립하고 이러한 애착을 뛰어넘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무게는 외적 대상보다 내면의 심리상태를 다루는 욕망에 두고 있습니다. <쌍윳따니까야>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 만물이 욕망(kāma)가 아니라 의도된 탐욕이 감각적 욕망이네. 세상에 참으로 그렇듯 갖가지가 있지만, 여기 슬기로운 님이 욕망을 이겨내네.”
-전재성 역
부처님은 <맛지마니까야> ‘아라가두빠마숫따’에서 “욕망에는 즐거움이 적고 괴로움이 많으며 근심이 많고 재난은 더욱 많다”고 설하셨습니다. 또 ‘드웨다위따까 숫따’에서는 “욕망은 자신에게,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지혜를 멈추게 하고, 열반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쌍윳따니까야>의 왕기싸의 모음 ‘좋지 않음의 경’(Ārati-sutta)에는 욕망의 해악에 대해 왕기싸 존자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때에 존자 왕기싸는 알라위 국에 있는 악갈라와 승원에서 그의 존경하는 스승 니그로다 깝빠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존자 니그로다깝빠는 탁발을 하고 식사를 공양을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승방으로 들어왔다가 저녁 무렵인지 다음날 아침인지 밖으로 나갔다. 그때 존자 왕기싸에게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 욕정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래서 존자 왕기싸는 ‘내게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 욕정이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참으로 나에게 해롭다. 참으로 나에게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나에게 나쁜 일이 닥친 것이다. 참으로 나에게 좋은 일이 닥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없애고 좋은 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가? 내가 스스로 자신을 위해 나의 좋지 않은 생각을 없애고 좋은 생각을 일으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존자 방기싸는 스스로 자신을 위해 좋지 않은 생각을 없애고 좋은 생각을 일으켰는데, 그때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즐겁지 않은 것과 즐거운 것과
집에 매인 걱정 모두 버리고,
어떠한 것에서도 욕망의 숲을 짓지 않아
욕망의 숲도 경향도 없는 님,
그야말로 참으로 수행승이네.
땅과 하늘과 용궁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모습을 지닌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모두 덧없으며 퇴락해가네.
성자들은 그렇게 알아서 유행하네.
사람들은 모든 집착의 대상
보고 듣고 닿고 인식한 것에 묶여 있네.
바라는 바 없이 세상에 욕망을 없애
거기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성자라 부르네.
여섯 가지 감각에 집착하여 사유하며
범부인 까닭으로 가르침이 아닌 것에 집착하네.
그러나 그에게는 어디에도 파벌이 없으며
또한 그 수행승은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네.
유능하고 오랜 세월 선정을 닦은
거짓 없이 총명하고 탐욕이 없는
성자는 평안의 경지를 성취해서 그것에 의지하여
완전한 적멸에 들어 그때를 기다리네.”
-전재성 역
까마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말합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당연히 악행(pāpa, 빠빠)에 해당합니다. 까마는 불건전한 행위를 뜻하는 아꾸살라담마(akusala dhamma)와 자주 함께 쓰입니다. 아꾸살라담마는 악행의 토대와 같은 것이므로, 까마와 빠빠는 같은 의미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누군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왜 잘못된 것인가?’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갈증이 나면 마시는 행위와 궤를 같이하는데 본능에 충실한 것이 어째서 잘못이냐고 따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능에 휘둘리는 한, 금수와 다를 게 없습니다. 특히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휘둘리는 한 선정은 불가능합니다. 선정의 힘이 없으면 지혜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고, 당연히 최고의 행복인 열반으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감각적 쾌락의 욕망, 즉 좋지 않은 악행은 마땅히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감각적 쾌락에의 욕망에 휘둘리며 인생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는 부처님의 간곡한 당부를 허투루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