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生 未明心
滴水 也難消
‘금생에 이 마음 밝히지 못하면 물 한 방울조차 소화하기 어렵나니.’ 툇마루 문지방에 써 붙인 글귀. 회산,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구는 아직 그 글귀의 의미를 완전하게 알지 못했다. 이구는 눈을 감았다. 당연히 이 이상한 노인 앞에서 일상적인 말을 입에 올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노인이 느릿느릿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구는 옥아와 나란하게 마루에 앉았다. 햇빛은 이제 맞은편 야트막한 산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에 씻긴 하늘은 온통 바다색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 어디선가 소 우는소리가 들렸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구는 그 소리를 듣고서야 이곳이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실감을 할 수 있었다. 다른 먼 곳에 와 있다는 착각, 그러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지금의 이 집은 복잡한, 아니 비릿한 세속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누구십니까?”
“이곳 두만강 건너 간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이는 일제의 탐학을 피해 고향을 떠나 살 곳을 찾아 간도로 건너오는 동포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길가 바위 위에 주먹밥을 쌓아 놓고 나뭇가지에 짚신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국경을 넘는 조선 사람이 먹고 신고 가라는 뜻이었지요. 그이는 누더기를 걸치고 날이 밝으면 종일 들이나 산에 나가 늘 말없이 일했고, 탁발을 자주 다녔으며, 생식을 했고,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이는 한평생 나무하고 불이나 때는 불목하니 스님이었고, 글과는 담을 쌓고 살다간 까막눈 선사였습니다. 당시 만주 사람들이 기르던 만주개는 몹시 사나웠습니다.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서면 떼로 달려들어 물어 죽였습니다. 그래서 밤길 다니는 것이 금기였습니다. 그러나 그이는 예외였습니다. 그이가 나타나면 개 수십 마리가 무릎을 꿇고 반겼고, 까치 꿩 노루 토끼 같은 산짐승 날짐승도 모여들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수월(水月) 스님이라는 분입니다. 물속의 달처럼 흔적 없는 바람같이 살다간 성자였습니다.”
“그럼 저 분이 수월스님입니까?”
“아닙니다. 저분은 수월스님의 상수 제자입니다. 수월스님은 글자를 모르셨지만, 스승님은 글자를 아시지요. 두 분은 늘 함께였지만, 늘 함께가 아니었습니다. 수월스님이 짚신을 삼을 때 그 옆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신 분입니다. 한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백 리 길을 마다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아마도 수월스님이 그렇게 짚신을 많이 삼으신 것은 어쩌면 우리 스승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라고요. 그것이 그분들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옥아가 하얗게 웃었다.
옥아의 말에 이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 한 분? 그는 회산의 말들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그럼, 회산 스님의 스승님이라는 분이?” “그렇습니다.”
“법명은?”
“저도 이곳에서 처음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노인이 쟁반에다가 차를 내왔다.
“날씨가 좋아.”
“그렇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회산하고 닮았을까? 명장사에 있을 때도 꼭 차는 회산이 내왔다. 역시 회산처럼 하얀 손, 향기가 진동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 공복이라 특별히 냄새에 민감한 탓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노인이 익숙하게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 차 향기가 이구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알 수 없는 향기였다. 지독한 향기였다.
삽화 염정우
“회산 스님은?”
“......“
이구는 일부러 그렇게 느닷없이 물었다. 그의 눈과 옥아의 눈이 마주쳤다. 옥아의 눈이 아래로 떨어졌다. 말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무얼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노인은 무심하게 차를 마시고, 옥아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다면 그건 이미 옛날의 일이었다. 노인과 옥아의 표정은 자로 잰 듯이 똑같았다. 무심한 눈동자, 가라앉은 입술, 햇빛을 받지 못하고 산 사람들처럼, 마치 세상에서 비켜난 사람들처럼, 하얀 얼굴.
이구는 자기가 더러운 세속의 때를 가지고 이곳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공연히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들에게 회산은 어디로 갔으며, 지금 세상이 어떻고...... 등등의 물음은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무심한 노인의 눈빛은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의문을 단번에 잠재우는 힘이 있었다.
그는 차를 마시면서 제법 여유가 생겨 다시 집 주변을 훑어보았다.
일상적인 살림살이들이 없었다. 여느 농가라면 의당히 마당 한구석에 있을법한 호미나 쟁기, 낫 등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헛간이 없었다. 헛간 대신 사랑채라고 할만한 낡은 초당이 안채 부엌 옆에 붙어 있었다. 그 사랑채에 두 개의 방문이 나란히 닫혀 있었다. 필경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일 터. 그 외 마루 위에도 특별히 일상적인 냄새를 풍기는 물건들이나 가구는 전혀 없었다. 곧 이사 갈 집처럼 텅 비어 있었다.
“패랭이꽃차요.”
“패랭이꽃?”
“못났지. 우리가 사는 낮은 곳에만 피니까. 그렇지만 우리 옥아가 가장 좋아하지.”
노인이 웃고 있었다. 이구는 언젠가 패랭이 꽃잎을 입에 물고 깔깔거리던 옥아를 떠올렸다. 이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녕 패랭이꽃이 옥아를 닮은 것이다. 아니 옥아가 패랭이꽃을 닮은 것이다.
“저를 보고 싶어서 오셨습니까?”
옥아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역시 옥아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닙니다.”
이구는 옥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끝났습니다.”
역시 예사 아낙이 아니다. 수줍은 얼굴에 숨은 칼날 같은 어조, 꼬옥 찌른 비녀 뒤에 숨은 옥아의 진짜 모습, 이구는 그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다. 옥아는 언제나 옥아여야 했다. 그는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대하지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을. 이구는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말이 아니었습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산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제가 본 것은 사람의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부황 든 어미들의 얼굴이며, 그 어미들 곁에서 빈 사발을 훑어대는 새끼들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엿보기 산으로 오셨나요?”
“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은 그곳에서 떠났습니다.”
“떠나다니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회산 스님은 없습니다.”
이구는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만 있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옥아의 말처럼 회산은 지금 자기가 알 수 없는 어디쯤 소풍을 갔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어쩐지 회산과 죽음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구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옥아의 눈매를 보고 있었다. 쪽 곧게 잘 뻗은 눈썹, 얇은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노인이 조용히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옥아의 눈은 맞은편 산을 향하고 있었다. 옥아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더 이상 들을 이야기가 없었다.
이구는 옥아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비로소 아래로 떨어뜨렸다. 까닭 모를 부끄러움, 민망함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철저하게 두 사람 사이에서 남일 수밖에 없는 소외감 때문이었다. 옥아로 하여 괴로워했던 그 많은 날들은...... 이제 정말 지난 일은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곳 엿보기산 독립대원들이 일본군에게 모두 붙잡혔습니다. 내부 고발자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스스로 일본군 사령관을 찾아갔습니다. 대원들의 시신을 찾으러.”
김용구와의 약속. 이구는 회산이 김용구에게 하던 말을 기억했다.
자네가 죽으면
반드시 나도 죽네.
“그 총 우두머리가 저 방으로 들어가신 분이겠지요?”
옥아는 눈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한참 만이었다. 옥아가 먼저 그의 눈길을 피했다.
“김용구 대장과 함께 죽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셨습니다. 일본군은 스님의 목을 부대 앞에 걸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님의 시신을 찾아야겠지요.”
이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옥아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처참했을 겁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있는 곳을 대라고 온갖 몹쓸 짓을 다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겠지요.”
이구는 그 비참한 광경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왜 여직 피하지 않았습니까?”
옥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스승님은 부처를 죽이고, 자신을 죽여서 이 땅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등불 하나를 마련하려고 하십니다. 우리는 스승님이 바로 언젠가 우리에게 오신다는 그 미륵불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미륵불은 결코 어느 한순간 기적을 몰고 오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저렇게 자신을 살라 등불을 만드는 분입니다. 그 등불을 보고 또 다른 미륵불이 이 땅에 오시겠지요.”
이구는 고개를 숙였다. 다른 할 말이 없었다.
“저도 이곳에 있겠습니다.”
옥아가 웃고 있었다.
이구도 웃었다.
“스승님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당신의 소재로 하여 사람들이 당할 고초를 걱정하십니다. 일본군은 벌써 스승님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당신의 할 일은 이제 끝났다고 여기시는 겁니다. 마지막 꼭 한 가지만은 남겨두고.”
“그것이 죽는 겁니까?”
옥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동안 회산 스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는 옥아의 얼굴에 시선을 박았다.
“저 산 보이지요? 큰 소나무 뒤편, 그곳이 잠깐 동안의 우리 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곳을 패랭이 산이라고 합니다. 저곳에서 회산 스님을 모셨습니다. 열흘 정도.”
옥아가 미소를 띠며 다시 이구를 보고 있었다. 이구는 웃었다. 옥아의 맑은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우리 집! 그 우리 집에는 나도 필경 포함되겠지. 틀림없어. 이구는 어린애 같은 유치한 생각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집을 처사님이 정리를 해주십시오. 깨끗하게.”
이구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았다. 이구는 일어났다. 노인이 있는 방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그리고 옥아에게도. 옥아가 그와 마주 서서 합장을 하고 있는 사이, 이구는 맞은편 산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았다.
아씨 스님, 저도 우리집에 포함되겠지요?
그러나 이구의 그 말은 입 밖에 나오지 못했다. 이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회산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보라 속의 북산을 그렇게 떠났듯이. 옥아가 말한‘우리 집’주변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좁은 마당은 갓 쓸어 넘긴 새색시의 머릿결처럼 단정했고, 방문이나 툇마루 등 어느 곳 하나 허술한 곳이 없었다.
마당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들마루, 이구는 그곳에 앉아 아랫녘 마을을 내려다보았을 회산과 옥아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이구는 회산과 옥아가 머물던 단칸방의 방문을 열지 않았다.
이구는 들마루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랫마을은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구도 한동안 그렇게 정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일어났다. 마당 한쪽에 차곡차곡 쌓인 가시나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천천히 그 나무 더미로 갔다. 한 단 한 단 정성 들여 묶은 가시나무를 보면서 그는 옥아의 뭉툭한 손을 생각했다.
삽화 염정우
그리고 며칠 후.
아랫녘이 너무 조용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구가 무심히 아랫마을로 눈길을 돌렸을 때 짐작한 대로 제복을 입은 일본군이 노인과 옥아를 끌고 가고 있었다. 이구는 똑똑히 보았다. 누런 모자를 쓴 일본군에게 둘러싸여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끌려가는 것을.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분노도 일지 않았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노인과 옥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구는 회산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어금니를 맞물었다. 드디어 옥아와 노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구는 엮은 가시나무들을 골고루 집 주변에 부려놓았다. 그리고 마당에다가 불을 피웠다. 처음 미미하던 불길은 이윽고 접근할 수 없을 만큼 타오르고 있었다. 바싹 마른 나무, 옥아가 굳이 가시나무만을 하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시나무는 언제나 다른 나무들을 태우기 위한 불쏘시개인 것이다. 하늘도 태울 것 같은 무서운 불꽃, 이구는 그 불꽃 속으로 달아나는 회산을 보고 있었다. 옥아를 보고 있었다. 서서히 불꽃들이 제 스스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회산과 옥아의‘우리 집’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집은 모두 타버렸다.
이구는 사라져버린 그‘우리 집’의 시신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많았다. 정말 이제 확실하게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은 모두 가고 없었다.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쩌면 저승길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병 만병의 육신을 달고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될 수 있을까? 만약 기적같이 옥아와 회산이 다시 살아난다면 지금의 마음을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이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옥아에게 할 이야기가 이렇게 명확하고 일목요연하게 논리가 서는 건 옥아가 이미 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날‘우리 집’의 잔해를 깨끗하게 정리한 이구는 천천히 일본군 부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옥아와, 회산 그리고 노인이 갔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언젠가 옥아가 가르쳐 준 싯구 하나를 외우고 있었다.
노을이 붉다고 모두 저녁은 아니지
꽃이 핀다고 모두 봄은 아니야
일본은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는 전적으로 민간 업자의 소행이었다며 일본군의 관여를 전면 부정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인 피해자 보상 문제 또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선행은 바위 위에 새겨지고, 악행은 모래 위에 씌어진다고 믿고 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