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명확
<연재를 시작하며>
행복은 모든 생명체들의 공통된 바람입니다. 그래서 누구랄 것 없이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하고, 경쟁하며, 갖가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행복한 이를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행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행복이 무엇인지, 또 목표인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떤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목적, 즉 행복의 참 모습도 잘 모르고, 그곳으로 다가가는 길도 모르니 행복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오욕칠정을 만끽하거나 쾌락, 부, 명예를 추구하는 것, 즉 분출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행복인 줄 압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본다고 해서 식욕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남자나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해서 성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욕망은 그 끝이 없어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욕망의 대상은 바깥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몸의 감각기관들도 모두 바깥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안이비설신의(육근)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경계)을 인식하고,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욕망(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이 움직입니다. 생존을 위해 음식과 공기를 취하고, 살아남기 위해 위험과 해악을 피하고, 종족 보존을 위해 성적 접촉을 시도합니다. 감각기관들이 대상과 접촉할 때마다 일어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그러한 삶이 계속해서 되풀이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것을 방황 또는 윤회라고 부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중생들을 위하여 행복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물론 중생들을 향한 부처님의 하해와 같은 연민심에서 비롯된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다 중생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마하 망갈라 숫따(Mahā Maṅgala Sutta,위대한 행복경)>는 경의 이름조차 행복경이라고 정해 설법하신 것이니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행복에 대해서는 수많은 철인들과 사상가들, 대문호들이 언급하며 숱한 어록을 남겼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그 의미를 가장 완벽하고 정확하게 설파한 이는 없습니다. 행복 역시 인과법(因果法)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因)과 연(緣)을 잘 지어야 합니다. 어떤 원인을 짓는가에 따라 그 원인에 부응하는 합당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베푸는 삶(보시)과 건전한 삶(지계)을 살아가는 이에게는 부귀와 당당함으로, 나아가 욕계천신으로 태어나는 귀하고 선한 결과를 낳습니다. 선정을 닦으면 천신으로 태어나 인간세계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무량한 행복과 수명을 누리게 됩니다. 오랜 업연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산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고요해지는 수련(사마타 수행)을 통해 행복 가득한 하늘세계에 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시해주신 수행법에서 등장하는 위따까, 위짜라, 심일경성, 수카, 삐띠 등은 행복의 요소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심소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라고 다 같은 행복이 아닙니다. 아주 낮은 단계의 행복, 즉 오욕락을 충족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좀 더 높은 단계의 행복으로 보시행, 지계행을 통해 고귀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거나 욕계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있습니다. 이보다 더 높은 단계의 행복으로는 사마타 수행을 통해 색계와 무색계 천상에 태어나 무량한 행복과 수명을 누리는 것도 있습니다. 선정의 깊이와 수준이 높아질수록 행복의 수준과 기간이 높아지고 길어집니다. 그러나 가장 높고 완전한 행복은 열반을 성취함으로써 완전한 해탈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걸어가셨던 바로 그 옛길이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끊이지 않는 고통의 굴레인 생로병사의 수레바퀴로부터 비로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고의 완전한 행복으로 이끄는 ‘부처님의 옛길’은 어떤 길일까요? 완전한 지혜의 완성을 통한 열반의 성취와 해탈이 그것입니다. 이 완전한, 최고의 행복은 오직 위빠사나 수행, 즉 완전한 지혜인 반야를 증득하는 수행을 통해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야를 증득했을 때가 완전한 행복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출발점, 수다원 단계에 해당합니다. 성자의 흐름에 드는 것이 곧 최고의 행복으로 향하는 반야용선에 승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성자의 흐름에 들어와 수행의 경지가 높아지면 사다함, 아나함을 거쳐 마침내 반야바라밀을 완성한 가장 행복한 사람, 아라한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의 행복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다고 역대 성현들은 말씀하셨습니다. 최고, 최대, 완전, 무상 등 상대적 범주의 어떤 수식어를 동원해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 아라한과를 성취했을 때 찾아온다고 합니다.
불교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부처님께서 바라나시에서 처음으로 다섯 고행수행자들에게 설법을 하신 후, 이 지역에 사는 대부호의 아들 야사를 비롯한 젊은 청년들을 교화한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부잣집 아들들로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이 청년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후 그 자리에서 출가하여 비구가 됩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행복의 최고 경지, 아라한이 됩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설법한 법문의 내용이 베푸는 삶의 공덕과 건전함 삶의 공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하늘세계에 대한 법문이 있었습니다. 이 법문을 통해 야사를 비롯한 50명의 젊은이들은 참 행복에 대해 눈을 떴던 것입니다. 부모를 잘 만난 덕에 자신들에게 보장되어 있는 부와 명예, 온갖 오욕락을 누릴 수 있는 조건들이, 천상세계의 천신들이 누리는 행복에 비해, 나아가 완전한 열반과 해탕을 이룬 성자들의 행복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고 형편없는 것인지를 절감했던 것이지요. 바라나시의 청년들이 집단 출가를 단행한 것은 보다 높고 완전한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위대한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에도 질적으로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세간적 행복과 출세간적 행복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칼로 무 자르듯 구분을 할 수는 없겠으나 베푸는 삶과 건전한 삶을 위해 노력을 다하는 것은 세간적 행복 성취를 위한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은 출세간적 행복, 즉 보다 높고 완전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마하 망갈라 숫따>에서 제시하고 있는 38가지의 행복해지는 길들은 크게 이 네 가지 범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간에서 살아가는 재가자들은 물론 출세간에서 오로지 수행과 전법에 전념하시는 출가수행자들에게 해당하는 길들이 구체적으로 적절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역시도 어느 것이 재가자의 길이고, 어느 것이 출가자의 길인지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재가자가 따르면 세간의 길이고, 출가자가 따르면 출세간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길을 여법하게 실천해간다면 누구나 세간적 행복을 누릴 수 있고, 나아가 출세간적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행복으로 가는 길 38가지(아래)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 길로 함께 떠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뜻 깊고 성스러운 여정에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 장명확
1. 우매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
2. 지혜로운 충고를 줄 수 있는 이를 가까이 하라.
3. 존경받을만한 이를 공경하라.
4. 알맞은 장소를 정해 평안하게 살아가라.
5. 공덕 짓는 일에 솔선하라.
6. 바른 서원을 세워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라.
7. 널리 깊게 많이 배우라.
8. 좋은 기술을 연마하라.
9. 계율을 잘 지키고 늘 실천하라.
10. 유익한 언어생활을 하라
11. 어머니와 아버지를 잘 봉양하라.
12. 배우자와 자녀를 사랑하고 보호하라.
13. 일(직업)에 정연하여 혼란하지 않게 하라.(안정적인 직업)
14. 베푸는 삶을 살아라.
15. 담마(가르침)를 삶의 지침으로 삼아라.
16. 친지를 돕고 보호하라.
17. 비난을 살만한 행동을 삼가라.
18. 나쁜 것을 혐오하여 삼가라.
19. 악한 것에서 멀리 떨어져라.
20. 술을 매우 절제하라.
21. 담마(가르침) 실천에 게으르지 말라.
22. 존경하는 마음을 길러라
23. 겸손할 줄 알라.
24. 만족할 줄 알라.
25. 작은 성취에도 감사할 줄 알라.
26. 알맞은 때에 법문을 들어라.
27. 인내할 줄 알라.
28. 수순(隨順)하라.
29. 선지식을 친견하라.
30. 때때로 담마에 대해 토론하라.
31. 열심히 정진하라.
32. 청정행을 실천하라.
33. 거룩한 진리(사성제)에 눈 뜨라.
34. 궁극적 열반세계를 체득하라.
35.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
36. 근심과 슬픔 없는 마음을 유지하라.
37. 번뇌를 벗어나 청정심을 유지하라.
38. 평온함을 유지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