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행복한가?
일러스트 정윤경
마중물 생각
며칠 동안 뒤뜰을 정리했다. 우거진 잡목이 햇볕을 차단하기 때문이었다. 내 산방은 북향집이므로 햇볕이 드는 곳은 집 뒤쪽인데 몇 년 사이에 잡목이 울창해져 햇볕이 잘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장독대 항아리들이 푸른 이끼가 낄 정도였다. 마당가 돌담 밑에 있던 지장보살상 두 기도 뒤뜰 축대 위로 옮겼다. 조그만 지장보살 석상은 절골마을에 사는 노파 한 분이 내게 준 조각품이다. 외지에 사는 아들이 정씨 노파 울타리 밑에 가져다놓았는데, 어느 날 노파의 꿈에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지장보살 석상이 있어야 할 곳은 내 산방이라고 알려주었다며 마을 젊은이에게 들려서 가지고 왔던 것이다. 정씨 노파 꿈에 나타난 호랑이는 산신도에 흔히 등장하는 그 호랑이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뒤뜰 석축 밑에 모란 한 그루, 작약, 상사화, 수선화 등을 심고 나자 방치돼 있던 것 같던 장독대도 더 빛이 나는 듯하다. 지장보살 석상도 제 자리를 잡아, 나로서도 비로소 정씨 노파에게 도리를 다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며칠 동안 땀 흘리며 뒤뜰을 정갈하게 정리했더니 눈길을 줄 만한 집안의 명소 하나가 생겨 마음이 충만해진다. 이 또한 내가 일군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뒤뜰에 자리 잡은 동화 같은 사연들이 나를 시나브로 행복하게 해줄 것만 같다.
스님의 말씀과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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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다.
인터넷, 코스탁, 전자상거래, 디지털 등 일찍이 듣지 못하던
생소한 용어들이 언론매체를 타고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물을 것 없이 손에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론지 소리를 보내고 또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정보사회의 실상이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 지구인들이 당면한
새로운 풍속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래, 우리는 지금 전에 없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행복한가?
쉬엄쉬엄 놀면서 구름도 바라보고, 바람도 쏘이고
흙냄새를 맡으면서 일하던 그 시절보다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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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창을 바른 뒤 빈 방에 홀로 앉아 창호지에 비치는
맑고 포근한 햇살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은 아주 넉넉하다.
말끔히 비질을 해놓은 마당을 대할 때처럼 마음이 아주 개운하다.
맑고 투명한 여백으로 인해 나는 새삼스레 행복해지려고 한다.
행복의 조건이란 이렇듯 사소한 데에 있다.
새로 바른 창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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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인가? 밖에서 오는 행복도 있지만
안에서 향기처럼,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그것은 많고 큰 데서 오는 것도 아니고
지극히 사소하고 아주 작은 데서 찾아온다.
조그마한 것에서 잔잔한 기쁨이나 고마움 같은 것을
누릴 때 그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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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마르쿠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풍요로운 감옥’에 비유하고 있다. 감옥 속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갖추어져 있고, 텔레비전과 오디오가 놓여 있다.
우리는 그런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풍요로운 감옥에서 탈출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자기 인생에 대한 각성 없다면 거기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삶의 질을 높이고자 끝없는 탈출을 시도한다.
보람된 인생이란 무엇인가.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활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의미를 채우지 않으면 삶은 빈 껍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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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위에서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라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다.
갈무리 생각
내 산방에는 불일암 의자와 비슷한 나무의자가 하나 있다. 산방을 짓고 나서 내가 소나무 가지로 처음 만든 20여 년 된 의자이다. 법정스님께서 불일암 의자를 만든 사연은 이렇다. 영화 <빠삐용>을 보시고 나서 불일암 뒷산에서 굴참나무를 베어다가 만드셨던 것이다. 그래서 불일암 의자를 일명 ‘빠삐용 의자’라고도 불린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절해고도 감옥에 갇히는데 검사가 선고한 죄목은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 그런 죄목이 있다니 주인공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끝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영화 속의 주인공만 ‘인생을 낭비한 죄’를 저지른 것일까? 우리 역시 그런 죄를 짓고 사는 것은 아닐까? 휴대전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들, 풍요로운 감옥에 갇힌 이들, 자기 인생에 대한 각성이 없는 이들, 욕구의 노예가 되어 자주적 삶을 포기한 이들 역시 크든 작든 ‘인생을 낭비한 죄’를 짓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끔 내가 만든 의자에 앉아서 나를 되돌아본다.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바로 자각이고 각성일 터이다. 그런 순간에는 반드시 산중자연의 소리가 더 가깝게 들려온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이러한 자연의 소리가 없었다면, 선물이 없었다면 나는 진즉 적막한 산중을 떠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