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임연태. 그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든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유의 활달함, 그만이 가진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그가 낀 자리는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다.

그러나 그 유쾌함 뒤에는 섬세한 감성이 깃들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문학을 전공한 그의 글을 읽을 때면, 그 글이 기사의 문자이건, 르포이건, 아니면 그가 요즘 들어 부쩍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시이건 늘 잔잔한 바람결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다. 다니던 신문사를 정리하고, 두문불출하면서 신문사 재직시절 썼던 원고를 다듬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책의 이름은 『감성으로 가는 부도밭 기행』(클리어마인드). 이 책은 임연태라는 한 작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빼어난 글쓰기, 서늘하고 또한 따뜻한 시적 표현, 그리고 책의 제목에도 붙였듯이 풍부한 감성까지. 그의 이런 강점들은 책 전반에 걸쳐 ‘무형의 형상을 보고 무성의 법어를 듣는’다. 20년 불교전문기자의 뛰어난 식견과 시적 감성이 어우러진 기행이, 어쩌면 스산하고, 어쩌면 처연할 부도밭을 거치며 우리시대 또 하나의 범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을 극락전 마당에 내려놓고 홍척 선사 부도앞에 섭니다. 겨울 햇살을 등지고 바라보는 부도는 단아하면서도 선명한 세부조각이 화려하기만 합니다. 사각의 지대석 위에 팔각으로 치석된 하대석부터 능숙한 석공의 솜씨가 눈길을 빨아들입니다. 중대석 안상을 장식한 팔부성중의 형상은 위엄이 깃들어 있고 상대석의 연잎 조각들은 지난 여름에 연못에서 따다가 붙여놓은 듯 생동감이 넘칩니다.”<이 책 88쪽에서 인용>

저자 임연태 시인이 돌아본 부도밭은 모두 28곳이다. 그는 이 부도밭에서 강물처럼 면면히 흐르는 전등(傳燈)의 맥박 소리를 들었고 송죽처럼 푸르게 살다간 구도자의 성성한 법향을 느꼈으며, 이를 그의 섬세한 성정이 일궈내는 감상을 바탕한 글로 풀어냈다.

절 뒤켠이나, 초입에 위치한 딱딱하고 재미 없을 것 같은 부도들이 임 시인의 붓끝을 거치며 살아 춤춘다. 돌탑 그 안에 깃든 고승의 행적은 물론 사찰의 역사와 조각 수법 등의 미술적 해석까지 펄펄 살아나 실감나게 꿈틀댄다.

저자는 부도를 만날 때마다, 갖가지 감성을 드러낸다. 때론 마음이 아프고 쓸쓸했으며, 때론 가슴이 먹먹했고, 때론 행복함을 느꼈다.

이 글은 현대불교에 연재되는 동안 불교언론문화상 신문부문의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부도를 소재로 한 글이 어디 이것 하나뿐이겠냐만, 심사위원들이 이구동성 임 시인의 연재를 수작으로 선발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도밭은 그냥 스님들의 무덤만이 아니다. 부도밭은 정말로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다. 보는 이의 근기에 따라 부도밭은 설법전이 되기도 하고, 조사전이 되기도 하며, 좋은 문화재공부방이기도 하고, 또한 푸근한 쉼터가 되기도 한다.

부도밭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위대한 선각자들과 그 가르침을 떠올리고, 알토란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그곳에 살며 시공을 초월한 무언법문을 하고 있는 선지식들은 아마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출 것이다.

이제 임연태 시인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인연 있는 부도밭으로 가볼 일이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울 일이다. 아마도 임 시인의 이 책은 부도밭이 새롭게 다가오는 디딤돌 한 자락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