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인과는 엄연한 것, 공덕 쌓으라
담마마마까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오전이면 이곳을 떠난다. 살면서 마지막이라는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언제 또 이곳에 와서 수행을 할 지 알 수 없으니 모든 것이 새삼스럽다.
새벽 앉음수행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날씨가 많이 풀려서 새벽도 이전처럼 춥지는 않다.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수행이 잘 된다지만 내 마음은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여전히 망상은 찾아오고 왼쪽 다리가 저렸다가 풀리는 현상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 수행이 잘 된다는 생각도, 잘 안된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 것이 올바른 수행자의 자세이겠지만, 나 같은 초보자에게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그동안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지적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때마다 ‘그래야지’하는 다짐을 하곤 했으나 마음이 제멋대로 그런 생각을 일으키니, 이 마음이 내가 아님을 알겠다.
담마마마까에서 함께 출가해 수행을 했던 한국인 5비구의 공양 모습.
‘통증박사’ 신성조 거사의 조언대로 얇은 방석 하나만 수평으로 깔고 앉음수행을 한 이후에는 다리 저림 현상이 줄어들었다. 방석을 펼 때 엉덩이 부분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 거사의 지론을 요 며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하긴 부처님께서도 길상초를 깔고 앉으셨을 때, 뒷부분을 높였다는 기록을 본 적은 없으니 이 방법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신 거사의 말씀마따나 몸은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기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하나같이 방석을 접어서 뒷부분을 높이는 것이 일반화되었을까? 별생각 없이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해온 것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러고 보면 엄청나게 두껍고 화려하여 부담스럽기까지 한 한국 선방의 좌복 문화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 시간의 앉음수행 시간이 마무리되면 아침예불과 수계의식을 갖는다. 오늘은 어젯밤 담마마마까로 돌아온 사야도의 아침 법문이 예정되어 있어 필기구를 준비하고 아침 정진에 참여했다. 그런데 예불 시간이 지나 5분 정도가 경과되었는데도 사야도께서 입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모두들 앉아 기다리는데, 한참 후에 사야도 다음 서열의 비구, ‘세컨드 사야도’가 입장한다. 담마마마까에서 비구 서열 두 번째인 이 분은 모습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하는 강인한 인상의 소유자이지만 살펴볼수록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분이다. 탁발을 나갈 때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맨 앞에서 묵묵하게 비구들을 이끈다. 걸음의 속도를 탁발에 서툰 한국 비구들을 배려해 늦추거나 멈추는데 그 작은 모습 하나하나에 자비심이 한껏 어리어 있었다.
아무래도 사야도는 인도에서 밤늦게 돌아온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다만 이번 수행 일정에서 사야도의 법문을 한차례라도 더 듣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내일 떠나야 하는 한국인 수행자는 나를 포함해 4명이다. 네 사람 모두 떠날 채비를 하느라 조금은 바쁘다. 피다 남은 모기향은 더 머무는 수행자들에게 넘겨주고, 혹시 먹을 것이나 마실 물 등의 여분은 필요한 분들에게 모두 전달해주었다. 나보다 먼저 귀국한 분들에게 나 역시 여분의 일용품을 받아 사용했듯이.
오후 1시 모처럼 법당이 한가하다. 기침 소리 들리지 않는 모처럼의 조용한 시간인지라 만사를 뒤로하고 앉음수행 정진에 나섰다. 확실히 집중도 잘 되고, 사띠도 놓치는 빈도가 줄어든다. 왜 부처님께서 아란야, 즉 조용한 수행처를 권했는지 알 것 같다. 1시간 정진을 마치고 나니, 법당 안이 갑자기 어수선하다.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 일정이 갑자기 잡힌 것이다. 새벽 법문이 뒤로 순연된 결과다. 서둘러 꾸띠에 가서 노트와 볼펜을 챙기고 보시금을 준비했다. 한 번이라도 더 사야도의 법문을 듣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법문의 주제는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는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이다. 삼장 가운데 경장, 그 가운데 ‘꿋다까 니까야’ 중의 법구경에 나오는 ‘로히니 공주의 일생’ 편을 근거로 에인다까 사야도가 법문을 시작한다. 요지는 이렇다.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아라한과를 얻은 아루눗다 대장로가 출가 후 처음으로 고향인 카필라 국을 찾았습니다. 아루눗다 대장로가 500여 비구와 함께 고향에 도착하자 석가족 사람들은 공양과 법회 준비 등 대대적인 환영을 했습니다. 아루눗다 대장로는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도 큰 존경을 받았으며, 150세까지 살았을 정도로 법력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찾아와 아루눗다 대장로에게 인사하고 예배를 올렸으나, 이상하게도 친 여동생 로히니 공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유를 알아보니, 로히니 공주가 나병에 걸려 얼굴과 온몸이 진물과 피로 범벅이 되어 일체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만 박혀서 살고 있었습니다. 대장로는 로히니를 즉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로히니는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대장로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녀가 다가오자 대장로가 물었습니다.
“로히니야,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
“장로님, 피부에 발진이 생겨서 얼굴을 내보이기 부끄러워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공덕을 지어보지 않겠느냐?”
“어떻게 공덕을 짓습니까?”
“비구들이 모여 토론도 하고 공양도 할 수 있는 승당을 하나 지어보아라.”
“제가 무슨 돈으로 그런 건물을 짓겠습니까?”
“네게 보석 장신구가 있지 않느냐?”
“가지고 있긴 합니다.”
“그걸 팔면 얼마나 될까?”“아마 만 냥 정도 될 겁니다.”
“그러면 그 돈으로 승당을 짓도록 해라.”
“누구를 시켜 건물을 지을까요?”
대장로는 가까이 서 있는 친척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건 그대들이 할 일입니다.”
“대장로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나도 여기에 머물며 승당 짓는 일을 감독하겠습니다. 당신들은 건축 자재를 모두 가져오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대장로님.”
친척들은 그렇게 대답하고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도구와 자재들을 모두 가져왔습니다.
아루눗다 대장로는 승당을 짓는 일을 감독하며 로히니에게 말했습니다.
“승당은 2층 높이로 짖도록 하고 판자로 지붕을 완성하고 나면 너는 마루를 청소하고 의자를 준비하고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도록 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얀마 글자. 부처님의 형상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볼수록 그럴듯하다.
로히니는 그렇게 자신의 보석을 팔아서 2층 건물의 승당을 세웠습니다. 지붕이 마무리되자 그녀는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의자를 준비하고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 등 정성껏 일했습니다. 비구들이 승당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로히니는 매일 나와서 승당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그러자 피부발진도 점점 가라앉았습니다.
승당이 완공되자 그녀는 부처님과 비구들을 초청했습니다. 드디어 초청을 받은 날 이곳을 찾아온 부처님과 비구들이 자리에 앉아 승당을 가득 채우자 그녀는 여러 가지 훌륭한 음식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아루눗다 대장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건물을 누가 시주한 것인가?”
“저의 여동생 로히니가 시주한 것입니다.”
“로히니는 어디에 있는가?”
“집에 있습니다. 스승이시여.”
“로히니를 불러오너라.”
로히니는 부끄러워 가고 싶지 않았으나 부처님께서 부르시는데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와서 부처님께 3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자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물으셨습니다.
“로히니여, 왜 여기 오지 않았느냐?”
“부처님이시여, 피부에 발진이 생겨서 얼굴을 내밀기가 부끄러워 오지 않았습니다.”
“왜 온몸에 발진이 일어나 너를 괴롭히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부처님.”
“네 몸에 발진이 일어난 것은 질투와 분노 때문이니라.”
“부처님이시여, 제가 언제 질투하고 분노를 일으켰습니까?”
“이야기해 줄 테니 잘 들어라.”
부처님께서는 그녀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옛날, 베나레스를 다스리던 왕의 왕비는 왕이 총애하는 무희에 대한 질투가 극에 달하자 어떻게 그녀를 괴롭힐까 궁리하기 시작했느니라. 그녀는 온몸을 가렵게 만드는 마하깟추의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무희를 불러내고, 사람들을 시켜 무희가 사용하는 침대와 옷가지, 이불 등에 마하깟추 가루를 뿌리도록 시켰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무희는 곧 몸에 가려움이 일어나고 발진이 생기더니 곧 온몸이 발진으로 뒤덮였다. 그녀는 가려워서 마구 긁어댔기 때문에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침대에 눕자 거기에 뿌려놓은 가루 때문에 더 심하게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때의 왕비가 너 로히니였느니라.”
부처님께서 로히니의 과거생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로히니여, 그것이 그대가 저지른 악행이었다. 분노와 질투는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옳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분노와 교만을 버리고
모든 족쇄를 극복하라.
몸과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번뇌도 없는 사람에게는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
이 게송 끝에 많은 사람들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과를 성취했습니다. 로히니 공주도 수다원과를 성취함에 동시에 병이 낫고 다시 예쁜 피부를 회복했습니다. 로히니 공주는 죽은 후 33천에 더없이 완벽한 미모를 갖춘 여인으로 태어났고 하늘세계를 다스리는 삭까 천왕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로히니 공주가 전생에 지은 악업을 현생에서 받은 것처럼 자신이 지은 업은 반드시 자신에게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법석에 있는 모든 수행자들은 순간순간 선업을 짓고, 궁극적으로는 윤회의 고통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담마마마까 수행센터에서의 마지막 날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은 인과의 엄중함에 대한 것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이곳을 떠나는 한국인 수행자들에게 인과의 엄격함을 알려줘 수행의 고삐를 놓지 않게 하려는 대자비심이 담긴 설법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내게 닥친 모든 것들은 내가 그동안 알게 또는 모르게 지은 업보라는 생각을 하니, 인과의 분명함에 두려운 생각이 밀려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