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통증에 맞서 싸우려들지 말라
담마마마까에서 수행을 시작한지 3주가 지났다. 3주 동안의 수행에서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삭발하고 가사를 걸쳤던 비구생활 경험이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비구의 삶이 내게 미친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아마도 이 영향은 나의 생애 전체에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다. 귀국할 때 가사 한 벌과 발우, 부처님의 핵심교설인 12연기가 적힌 부채 등을 굳이 가지고 가기로 결정한 것도 이곳에서의 삶과 체험을 기억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다.
담마마마까의 만월. 사진으로는 잘 구분이 안 되겠지만 달이 유난히 크고 빛도 아주 밝다.
아직은 한 밤중인 월요일 새벽 3시. 담마마마까의 밤은 대낮처럼 밝다. 보름달이 그렇게 밝게 빛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보는 보름달보다 더 선명하고 크기도 더 커 보인다. 오염이 덜되고 하늘이 청명한 계절, 건기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런 밤, 아니 새벽에는 굳이 플래시가 필요하지 않다. 밤 기온이 제법 싸늘해서 잠바와 양말을 신고 법당으로 향했다. 꾸띠의 문을 여니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뜀박질을 하며 도망친다. 내 꾸띠의 문 앞에서 잠을 청했던 모양이다. 자다가 화들짝 놀랐을 녀석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새벽 정진에 들어가는 마음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지난 2~3일 수행정진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은 불청객처럼 찾아온 통증과 저림으로 여간 고생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혼침까지 더해지니 영 풀이 죽었다.
특히 등 오른쪽에 나타난 통증은 견디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극심했다. 고통을 알아차리면 통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았다. 조금 완화되나 싶다가 여지없이 통증이 다시 찾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어느 순간에는 통증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마치 한판 싸움을 벌이는 각오로 통증을 쏘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별무소용이었다. 오기로 통증을 대하는 이런 방법은, 오랜 수행 경험을 한 도반들에게 물어보니, 잘못된 방법이었다. 통증을 없애기 위하여, 그리고 통증과 한 판 겨루는 자세로 통증을 알아차림 한다면 수행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것이 한결같은 조언이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정답은 있는 법. 통증을 잘 다루는 법은 통증이 찾아왔을 때, 통증의 실제성품인 생멸을 보고 오직 무상, 고, 무아를 체험하려는 목적으로 알아차림 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막상 닥치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꼭 통증이 아니더라도 수행을 하다보면 불쾌한 감각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럴 땐 그 불쾌한 감각들의 생멸하는 성품을 관찰해야 한다. 초보자에게는 이런 시도가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차츰 알아차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벽 정진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울 정도로 잘 진행되었다. 등의 통증과 왼쪽 다리가 저리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견딜 만 했다. 특히 왼쪽 다리의 저림은 사띠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통증 부위에서 일어나는 저림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했더니, 어느 순간 매듭 풀리듯 통증이 사라져갔다. 망상도 몇 차례 찾아왔지만 바로바로 알아차리며 사띠를 챙겼다.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실망스러울 정도도 아니었다.
* 통증이 찾아왔을 땐?
수행을 하다보면 통증 등 불쾌한 감각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잘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게 되고,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자세를 오랫동안 고정시키는 시도를 반복하다보면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 고통, 곧 통증은 물론 쑤심, 저림, 찌름 등의 느낌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통증은 신수심법 가운데 수념처에 해당된다. 이렇게 통증이 느껴질 땐 그런 현상들과 싸우려 들지 말고 생멸하는 성품을 관찰해야 한다. 통증의 성품을 알고 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生滅)을 볼 수 있다. 통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이러다가 다리가 끊어지는 것은 아닐까? 등의 두려움도 생겨날 수 있는데, 그럴 때는 두려움의 마음을 내려놓고 통증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오직 관찰하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되도록 편안하게 가져야 한다. 통증을 참고 관찰해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인내가 닙바나(열반)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수행할 때 인내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마음을 밀착하여 통증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이 통증은 얼마만큼 아픈가? 살 속이 아픈가? 피부가 아픈가? 힘줄이 아픈가? 뼈가 아픈가? 골수가 아픈가? 등을 분명하게 알도록 마음을 밀착하여 관찰할 때 여러 통증들의 성품이 변화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통증의 현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이 함께 따라 붙어서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오롯이 집중해서 네다섯 번 정도 반복해서 쑤심, 저림, 찌름 등을 관찰하면 더욱 강한 쑤심, 저림, 찌름 등을 만나게 된다. 통증이 극에 이르렀을 때 통증은 그의 성품에 따라 점점 약해진다. 통증이 약해질 때 집중하던 마음도 함께 따라서 약해져서는 안 된다. 약해져 가는 통증을 더욱 분명하게 알아차림 해야 한다. 이렇게 네다섯 번 정도 알아차림 하면 하나의 통증이 사라지고 다른 하나의 통증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느낌은 마치 통증이 옮겨 다닌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통증이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라 큰 통증 때문에 느껴지지 않던 다른 통증이 차례로 사라지는 현상이다. 아무튼 통증이 옮겨 다니는 듯한 현상을 만난 수행자는 알아차림이 좋아지고 더욱 열심히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고통도 영원하지 않고 언제나 변화하는 법이다. 극에 달한 통증이라도 조건이 성숙되면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성품을 잘 이해해야 한다.
새벽 정진을 마친 후 에인다까 사야도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사야도의 법문이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수행자들을, 그것도 특히 한국인 수행자들을 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야도의 법문 주제는 ‘지혜가 있어야 도과를 성취한다.’이다. 법문 요지는 이렇다.
“수행자 여러분,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에는 지혜가 아주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8정도의 순서를 정하실 때에 계정혜 삼학의 순서에 따르지 않고, 혜학에 해당하는 정견과 정사유를 맨 앞에 위치시키셨습니다. 그 다음에 계학과 정학을 두었습니다. 이는 혜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지혜가 없다면 사띠도, 정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정견과 정사유를 앞에 놓으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발전의 절차를 설하실 때에는 계학을 앞에 두셨고, 수행주제를 설법하실 때는 지혜를 먼저 설하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성공하듯이 수행에서도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두각을 나타냅니다. 부처님께서는 출세간의 지혜를 아는 마음, 즉 사띠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수승한 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를 다 터득하기는 어렵고, 설사 다 얻었더라도 3계 윤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오직 사띠가 분명해야 세상에 살기도 좋고, 특히 3계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선천적인 지혜를 타고 난 사람을 생이지지(生而知之)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우까띠딴누’라고 부릅니다. 부처님과 같은 분은 우까띠딴누의 공덕을 완전하게 갖춘 분입니다. 반면에 타고난 지혜가 있어도 노력하지 않아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우까띠딴누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부처님은 ‘눈먼 장님과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세상의 지혜를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열반으로 가는 지혜를 갖지 못하면 우까띠딴누를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부처님처럼 스스로 열반을 성취할 수는 없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열심히 수행해 3계 윤회를 벗어난 사람, 즉 학이지지(學而知之)한 사람은 ‘우까띠딴누’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우까띠딴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우까띠딴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눈먼 장님과 같습니다. 마치 넓은 들에서 눈먼 소가 먹이도, 물도 찾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지구촌이라는 말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우주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1개의 마을로 된 우주촌 이곳저곳에 태어나 노병사를 거듭하는 중생은 윤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3계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지금 이 생에서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유산을 상속해주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의 수승한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남겨주신 유산으로 역시 열반에 드셨습니다. 우리도 부처님께서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 사띠파타나 위빠사나를 닦아서 열반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 이 생에서 눈 밝은 스승을 만났을 때 도와 과를 성취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눈먼 소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배우고 잘 실천하는 것이 눈먼 소가 되지 않는 길입니다. 그런데도 이생에서 도와 과를 성취하지 못한다면 31세계 이곳저곳을 윤회하는 고통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지혜가 있어야 수행이 발전하고 도와 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스승의 지도를 잘 따르고 수행처의 규칙을 잘 지킵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승의 지도에 따라 고쳐나갈 줄 알아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도를 해주어도 고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지켜야 할 규칙, 스승의 지도는 수행자들이 수행에 탄력을 받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입니다. 수행처에서는 가전연 존자의 게송처럼 눈이 밝을지라도 장님처럼 행동하고, 귀가 밝을지라도 귀머거리처럼 행동하며, 웅변일지라도 벙어리처럼 행동하고, 건강하더라도 환자처럼 천천히 행동해야 합니다. 잠을 잘 때에도 뒤척이지 말고 송장처럼 가만히 사띠하면서 잠들어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 규칙을 잘 지켜야 수행이 발전할 수 있고, 이 다섯 가지 규칙을 완벽하게 지켜야 도와 과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힘과 가지고 있는 정성을 모두 다 바쳐서 도와 과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네 종류의 사람들
남방불교에서는 아비담마 등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네 부류로 분류한다. 한국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근기에 따라 상근기, 하근기 등으로 분류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보다 상세하고 체계적이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우까띠딴누(Ugghatitaññū)이다. 이 부류는 아주 짧은 게송만 들어도 도의 지혜,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아사지, 사리뿟따, 목갈라나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위빤찌딴누(Vipañcitaññū)이다. 법(담마)에 대한 긴 설명을 들은 후 도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성인의 부류에 든 수많은 제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네이야뿍깔라(Neyyapuggala)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설해진대로 체계적으로 수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다.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삼학을 배우고 계율을 지키며 선정, 지혜 수행을 해야 도와 과를 이룰 수 있다.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빠다빠라마(Padaparpma)이다.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공부하고 수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금생에는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앉음수행 중인 수행자들. 겉모습은 고요하기 짝이 없으나, 수행자들의 내면은 제각각이다. 통증과 싸우는 이가 있는 반면, 사띠가 명료해 더없이 좋은 평온을 유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드물지만 어떤 수행자는 사띠가 깊어지면서 무상, 고, 무아를 체득해 반야의 지혜를 증득, 성인(아리야)의 경지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야도의 법문 내용은 절절하다 못해 처절하다. 수행자들을 향한 연민이 이 정도로 간절하다니! 선원의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수행에 게을렀던 것을 이 순간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사야도의 경책성 법문은 한국인 수행자들에게 큰 울림으로 전달된 모양이다. 공양을 마친 후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선원 경내를 산책하던 모습이 일순 사라졌다. 산책을 하더라도 서로 거리를 두고 혼자서 걷는다. 한 한국인 수행자는 ‘아마도 사야도께서 게으름을 피우는 한국인 수행자들을 보며 연목구어(緣木求魚)를 떠올리지 않았겠느냐?’며 ‘깊이 반성해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사야도로부터 따끔한 경책을 받아서 그런지, 가급적 모든 정진에 빠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강해졌다. 다른 한국인 수행자들의 좌선 정진 참여율도 부쩍 높아졌다. 보통 새벽 4시와 오전 8시, 오후 4시와 8시 네 시간 앉음수행에 참여하고 나머지 시간은 걸음수행이나 산책 등으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인데 1시와 6시, 7시 타임에도 법당을 찾는 한국인 수행자들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 역시 1시, 4시, 6시, 8시 좌선 수행 시간에 법당을 찾았다. 평소 같았으면 등의 통증으로 인해 4시와 8시 기본만 했을 것이 뻔하다. 이만큼 수행센터에서 사야도의 한 마디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오후 내내 등에서 일어나는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 아무리 사띠를 해도 이 통증은 가실 줄 모른다. 통증은 극한 상태에 이르러, 이대로 결국 조금씩 자세를 바꾸며 억지로 정진을 이어나갔다. 도반에게 파스를 얻어 등에 붙여보았지만 효과는 신통치가 않다.
경험 많은 선배 수행자에게 고충을 털어놨더니, ‘수행은 본래 잘 안 되는 것’이라며 웃는다. 나 역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우문현답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그렇지, 어려움 없이 잘 되면 그게 수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연신 터져나온다.
오늘 밤, 보름달이 참 밝다. 적도의 보름달이어서 그런지 참 크기도 하다. 선선한 공기와 달빛이 너무 좋아서 함께 온 일행 중, 조용한 수행의 오랜 경험자인 한승철 거사와 30여 분 동안 수행센터 내 한적한 길을 산책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수행을 생각하고 수행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