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국민윤리’ 과목을 떠올린다. 물론 그때의 이미지는 ‘고루하고 잠 오는 이야기’ 자체이다. 철학을 조금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철학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학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윤리학 전공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실상이 그렇다.

그런데 1990년에 들어서면서 ‘윤리’는 종교와 항상 붙어 다니는 세트메뉴가 되었다.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늘 빠지지 않는 것이 ‘○○교의 생명윤리, 혹은 경제윤리’이다. 그래서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는 일찌감치 윤리연구소를 출범해 배아줄기세포 같은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불교 속에 이미 윤리가 다 들어있는데, 불교윤리가 왜 또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입장이 주를 이루었다. 황박사 사건이 터진 후 조계종단 차원에서 윤리연구소가 출범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되었고 지금은 종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불교계에서 윤리문제에 대해 등한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종단에서 사회적 의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필요성을 아직까지도 절감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불교학자들 사이에 정통교학을 연구하면 수승한 것이고 불교윤리나 응용불교를 연구하면 하근기라고 생각하는 풍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저 산에 꽃이 피니 이 산에도 꽃이 핀다’는 식의 구름에 달 흐르는 불교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터질 때마다 꼭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해답이라는 점이다. 2008년 범불교도대회 이후 1위로 등극했던 불교의 호감도가 이듬해 종단의 침묵모드로 바뀌면서 2위로 단번에 미끌어진 것은 대중들이 원하는 종교가 무엇인지를 가늠케 한다. 사실 불교적 윤리를 적재적소에 제시하는 것은, 종교가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수 있는 가장 수월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불교윤리학의 이론적 토대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지만, 서구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에 대한 연구가 상당한 수준으로 추적되었다. 불교윤리학의 대표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피터 하비의 『불교윤리학 입문』이 최근 동국대 허남결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 같은 책이 국역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터 하비는 영국 선더랜드대학교의 불교학 교수로, 영국에서 최초로 불교학을 전공한 교수로 명성이 높다. 또한 데미언 키온과 더불어 영국의 대표적인 불교윤리학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하비 교수는 『불교윤리학 입문』에서 현대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매우 상세하게 접근하고 있다. 환경운동, 경제윤리, 전쟁, 자살, 안락사, 낙태, 피임, 성적 평등, 동성애 등 불교윤리학의 현대적 쟁점들에 대한 논의에 착수하고 있다.

하비 교수는 경전에 나타나는 불교의 해석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남방의 여러 국가에서 벌어진 논쟁과 시위 등의 사례를 들면서 동양의 불교국가들이 각각의 사안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려놓았는지도 꼼꼼히 분석했다.

가령, 제5장 경제윤리에서는 ‘불교에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일반적 선입견이 매우 잘못됐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비 교수는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운동, 일본 카메라 제조업체 캐논의 경영철학 등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렸다.

“불교도는 자본주의가 단지 사적인 소득이 아니라 공공선에 기여하는 것일 때 자본주의에 대해 불편해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와 맹목적인 자본주의 모두 불교적 문화와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에 대한 대안으로 불교 경제학은 다양한 처방을 내놓게 되는데, 그것은 ‘올바른 기술’의 사용과 가난한 자에 대한 돌봄을 견지한 상호협력적 공동체주의와 사회주의를 겸한 모델에 광범위하게 어울리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의 문제에 대해서는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에서 일반인들 사이의 동성애 행위는 간혹 부도덕한 것으로 비난받았지만 동성애 행위를 한 사람들을 박해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무덤덤한 관용의 태도가 존재했다”고 설명함으로써 불교윤리적 관점에서 동성애가 어떻게 포용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낙태’에 대해서는 일본의 예를 들면서, 패전 직후 출산 붐과 함께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겹치면서 발생한 사회적 사건으로 설명했다. 1959년 당시 일본에서는 건강한 태아의 3분의 2가 낙태당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1975년 무렵 불교 성직자들은 낙태 여성들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을 돕기 위한 의식을 대중화하기 시작했으며, 그런 의식들은 미즈코 쿠요(水子供養) 즉 낙태아를 위한 추모식으로 표현됐다. 이에 대해 미즈코 교수는 “미국에서는 반낙태주의자들에 의해 낙태 클리닉 종사자들이 살해된 경우도 있었던 반면 불교국가에서는 낙태 클리닉 앞에서 성난 시대위를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불교에서 화를 내는 것을-설사 그것이 정당한 분노라 하더라도 파괴적이며 건전하지 못한 감정으로 본다는 사실에서 부분적인 설명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낙태에 대한 일반적인 반대윤리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설명했다.

미즈코 교수는 낙태에 대한 불교적 접근법으로 △인간 생명가치에 대한 반성의 권장 △책임감 있는 피임법 사용의 권유 △보다 효과적인 피임법 개발 권장 △입양시설을 권장하고 지지하기 △합법적인 낙태의 지지 △낙태 경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죽은 아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준비함으로써 그들을 자비심으로 감싸기 등 6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물론 피터 하비 교수의 설명이나 해석이 모두 다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불교윤리는 매우 주관적인 문제이고, 상대적 입장에서 볼 때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 하비 교수의 저술이 국내에 번역됐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불교윤리’의 해석과 논리가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는 이때, 한국식 불교윤리를 정립하는데 있어서 이 책은 매우 유용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불교윤리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보다도, 매주 불자들을 앞에 놓고 법문을 해야 하는 스님들이 우선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