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538년부터 660년까지 123년 동안 부여는 백제의 수도였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백제문화의 진정성은 이 시기의 유물과 유적지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뤄진 백제미(百濟美)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수준 높다.

현재 부여는 여러 고도 중에서는 매우 작은 규모다. 눈에 확 띄는 유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부여는 작지만 누추하지 않다. 발굴된 유물은 화려하지만 품격이 있다. 사치스럽지 않다는 이야기다. 외려 아쉬운 것은 부여를 보는 빈한한 안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여태생 윤재환은 지난 20여 년 동안 부여의 답사와 안내를 해 왔다. 그러면서도 항상 부여를 좀 더 잘 소개하고픈 바람을 한 순간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패망한 국가의 수도인 탓에 이름 없는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유적들의 소개가 어렵게 다가왔다. 그 점이 항상 안타까웠다.

그런데, 부여에서 나고 자란 그의 눈에는 부여의 진수가 보였다. 부여만이 갖는 아름다움, 격조, 그리고 자부심이 그의 눈에는 갈수록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백제의 유물·유적지와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며 그가 생각해낸 것이 이름하여 신부여팔경이다. 한 지방의 빼어난 여덟 군데의 경치를 담은 그림인 팔경을 부여에 비추어 보기로 하니 부여에는 8경을 꼽고도 남을 아름다운 풍광과 유적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의 이런 아이디어는 빼어난 경치를 담은 생생한 그림으로 부여를 직접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면 사람들이 부여를 좀 더 잘 이해해 주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몇 년간의 사전 준비과정을 거쳐 미술가 20여 명이 모여 ‘신부여팔경’이 만들어졌다.

작가들은 함께 또는 따로 답사하며 2007년에는 부여 관련 미술 작품을 60여점 완성하였다. 이 그림들은 서울과 부여에서 전시회로 선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2009년 10월 말에는 만화가 20여명이 지난 2007년의 ‘신부여팔경’과 같은 코스로 여행을 떠나 또 다른 재미있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인 1916년 만들어진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부여의 사진, 그림 엽서 실물들을 함께 담아 부여의 생생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담았다. 이 모두가 충청도 사내 윤재환 특유의 뚝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노력을 묶어 부여사람 윤재환이 책 『윤재환의 신부여팔경』(스펙트럼북스)을 펴냈다.

이 책에는 유명 화가와 만화가가 그림으로 발굴한 백제의 모습이 함께 곁들어져 있다. 임옥상(1500년 된 주암리 은행나무, 대조사 석불, 허허부처), 오용길(금성산 조망, 낙화암, 궁남지의 연, 백화정에서 본 백마강), 권기윤(정림사지5층 석탑), 김범석(낙화암, 부소산), 김수진(낙화암 고란사), 김억(궁남지포룡정, 대조사 미륵불), 김현철(떠있는 산, 낙화암), 박방영(백제의 꿈), 송필용(흐르는 물처럼-궁남지, 백마강, 백마강 달빛), 신태수(반월루에 올라 부여를 보다, 백화정, 무량사5층석탑)

안석준(부여궁남지), 이종구(잠자는 부처, 낙화암), 임택(옮겨진 산수유람기), 정병례(신부여팔경 8점), 조병철(성흥산 느티, 백제의 미소), 조용식(낙화암의 여름, 왕릉), 허진(유목동물+인간-기억) 등 내로라하는 화가와 예술가가 함께하고 있다.

또한 박재동(낙화암과 고란사, 조룡대, 주암리 은행나무), 이희재(고란사, 백화정, 무량사 뒤뜰, 김시습 부도탑, 대조사 석불), 오세영(김시습 부도, 주암리), 김광성(고란사의 가을, 구드래 나루, 백화정, 대조사석불과 이정래, 장하리탑, 무량사 전경, 백제왕릉), 석정현(백마강, 낙화암), 김인(백마장강), 김재현(대조사 석불, 백제금동대향로), 이정율(대조사 석불), 정상명(백제왕릉), 홍일도(백화정), 한재규(능사탑), 김석훈(낙화암), 권오준 등 유명 만화가들도 이 책의 콘텐츠가 알토란이 되도록 거들었다.

저자 윤재환은 현재 현재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이사장 이어령)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아울러 경기디지로그 창조학교(명예교장 이어령) 전문위원과 민학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다. 그의 첫 책 상재에 맞춰 우리시대 대표지성이자 석학인 이어령 이사장이 추천의 글을 썼으니, 골자는 이렇다.

부여를 찾는 사람들이 늘 허전해 하는 일면을 이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진 책이 크게 채워줄 것이다. 그는 유년 시절 백제탑을 놀이터로 삼아 자라났고, 궁남지 마름을 건져 군것질 거리로 먹으며 성장하였다. 지난 20여 년 동안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데려다 부여를 소개하였다. 모처럼 부여 백제의 부활을 위한 백제문화단지 조성과 더불어 부여의 속속을 돋보기로 살피듯한 이 책이 부여의 알림꾼 역할에 일조가 되기를 빈다.

일본과 백제의 인연은 두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본인에게는 영원한 고향같은 부여, 그 부여를 새롭게 읽어낸 책의 출간에 일본인 학자 하마다 요 테이쿄대 교수(帝京大學 濱田陽)도 한 마디를 거들었다.

가을 맑은 하늘에 단풍이 춤을 춘다. 소나무의 푸르름과 향은 자연의 정기를 전해준다. <윤재환의 신부여팔경>은 이 토지의 맛나는 민속주처럼 숙성된 부여를 논하는데 있어서 뺄 수 없는 명저가 되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처음 대하는 사진이나 그림에 마음을 빼앗겨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있는 백제와 리듬을 맞추며 심호흡한다. 잃어버린 것도 많으나 이 땅에는 가장 귀중한 것들이 남아있다. 백제인이 사랑한 풍토와 그것을 이어받은 사람들. 백제시대의 오층석탑은 이 둘을 이어주는 심볼이다. 이 책을 만나면 처음으로 탑 앞에 선 듯 신비한 행복감에 젖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