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허 스님의 책 두 권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선방일기』(불광출판사)와 『사벽(四壁)의 대화』(도피안사)다.

지허 스님은 누굴까. 독자 중에는 생소하게 느끼는 분이 더 많을 것이므로 간략히 약력을 소개하면 이렇다.

“1957년부터 1958년 사이 출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전에 의하면 서울대를 졸업하고 탄허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고 한다. 1962년∼1963년 사이 1년간 강원도 정선 정암사에서 20여리 떨어진 토굴에서 수행했고, 이때의 기록이 <대한불교>에 연재된 적이 있다. 1975년 입적했다는 진술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이른봄 눈처럼 하얗고 한겨울 비처럼 시린 선승의 수행일기

두 권의 책 중 먼저 ‘선방일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법정스님의 수필과 함께 30년 넘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책이다. 이 책이 불광을 통해 새롭게 단장해 세상에 나왔다. 지허 스님이 수행했던 1960년대 당시 선방의 모습을 고증한 23컷의 일러스트와 함께 세 번째 외출을 한 것이다.

‘선방일기’는 1973년 <신동아>에 처음 연재되었던 글이다. 모두 2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선방일기’는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전개되며 철저히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선승의 존재감과 눈물 나게 인간적인 수행자의 두 모습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덕분에 ‘선방일기’는 종교와 연령을 초월한 수많은 사람들의 서재에서 잊히지 않는 책으로 남아 있다.

‘선방일기’는 이미 1993년과 2000년 각각 단행본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1993년에는 비매품으로 5천부가 인쇄되어 배포되었는데, 인기가 높아 복사본이 돌아다녔다. 2000년 출간되었을 때는 수만 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후 ‘선방일기’는 절판된 상태였다. 이번 책의 출간이 반가운 이유다. 요즘 책 잘 만들기로 소문난 불광출판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책을 만드니 책의 가치가 더해 보인다.

진정한 토굴수행의 전범, 고뇌에 찬 신앙증언

지허 스님의 또 다른 책은 ‘지허스님의 토굴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사벽(四壁)의 대화’이다. 지허스님의 고뇌에 찬 신앙증언, 진정한 토굴수행의 전범이며, 길, 스님의 길, 스님지성인의 길이 담겨 있다고 책을 출간한 도피안사 송암 스님은 강조한다.

이 책은 지허스님이 ‘선방일기’보다 먼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지허 스님이 어떤 연고로 당시 <대한불교>에 연재했던 불교신앙 수기이다. 출가자들이 토굴수행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마치 흥미진진한 한편의 마카로니 서부영화처럼 펼쳐보이고 있다.

‘선방일기’와 쌍벽을 이루는 ‘토굴일기’인 이 ‘사벽의 대화’는 불교신앙은 진리와 자신이 둘이 아님(信解不二)을 깨달아 벗어나지 않고 나아감(行證不二)의 향상일로(向上一路)를 말해주고 있다.

후학은 선학의 길을 따라야 하고, 학인은 고인의 발자국을 따라야 한다. 오늘날 불자들의 신앙행태는 출재가를 막론하고 정도에서 빗나간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현실은 보다 더 과거 사표에 의지하고 선각자의 가르침을 신봉해야 한다는 점을 일러주고 있다. 이즈음, 토굴수행의 사표가 될 문헌이 책으로 묶여 나왔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짧은 글의 모음집이다. 따라서 소책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가르침은 깊고도 넓다.

이 책은 정선 정암사에서 20여리 떨어진 토굴 ‘심적(深寂)’이라는 곳에서 1962년 봄부터 1963년 봄까지 1년간의 수행기록이다. 이 수기에는 토굴에서 범어사 출신 수좌인 석우라는 스님과 함께 수행한 내용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선방일기’가 공적인 선방에서의 일기라면, ‘사벽의 대화’는 은둔 수행처의 대명사인 토굴 공간에서의 수행기록이다. 때문에 수기에는 지허 스님과 석우 스님의 대화가 주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선방일기’ 이전의 기록인 터라, 이 글에는 ‘선방일기’ 이전의 지허 스님에 대한 행적, 고뇌, 수행에 대한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 나온다. 또한 이 책에 나온 두 스님의 대화는 아주 수준이 높은 불교철학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두 스님들의 대화에는 존재, 자연주의, 구도, 화두, 위선, 도, 양생, 여래, 그림자, 정신과 육체, 우주, 변증법,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성, 실존, 인간적, 죽음, 장자, 중론, 아트만, 열반, 반야, 마하반야바라밀, 신격화와 인격화, 휴머니즘, 성인주의, 부조리, 허무, 시간과 공간, 자연법칙, 사랑, 보살, 무와 공, 절대적인 무, 절대적인 유, 무의 자각, 완전한 긍정, 발심, 계율, 고독, 현실, 절망, 근로, 희생, 행동, 낙관, 인간고, 행동 등에 대한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다.

지허 스님이라는, 바람처럼 왔다가 작은, 그러나 아주 의미 있는 흔적 ‘선방일기’와 ‘사벽의 대화’를 남기고 간 참 수행자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두 권의 귀한 책이 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출간된 것은 바른 불교수행의 길을 찾는 이들에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